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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린듯 도장에 사람을 새긴 45년 "단 하나도 똑같은 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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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이 나한테 손짓을 하는 것 같습니다.”
4일 오후 부산 중구 중앙동 대로변에 자리 잡은 ‘해인당'. 정천석(72)씨가 조각 일에 홀린 듯, 몸을 구겨넣고 45년 동안 도장을 파고 있는 곳이다. 점포에 들어서면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통로가 있고, 그 끄트머리에 작업대가 하나 박혀 있다. 해인당을 찾은 이날에도 정씨는 노란 불빛 아래서 손끝으로 '싹, 싹, 싹'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요즘 도장집들은 컴퓨터, 기계를 이용해 도장을 깎아내지만, 정씨는 손으로만 새긴다.
그의 연장은 비교적 단출하다. 작업대에 가지런히 놓인 크고 작은 조각도가 전부다. 간단한 도구들이되, 밴 땀으로 고스란히 묻어나는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기품이 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품을 만드는 도구다.
정씨는 도장을 인장(印章)이라고 불렀다. 인장은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마무리하는 도구 성격이 짙다. “손가락만 한 물건이지만,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물건이에요. 계약서, 공증 서류에 사용하는 자신의 대리인 격이니 얼마나 소중한 물건입니까." 도장이 단순한 도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때문에 남의 도장을 파는 일이지만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자신의 이름과 인장의 성격이 맞아야 재산이나 건강뿐만 아니라 좋은 운명까지 지킬 수 있어요. 손님에게 인장을 어떻게 만들어 줄 것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하죠." 손님의 주문을 받으면 그냥 도장 하나 팔아먹기 위해 손톱만 한 판 위에 글자를 새기는 게 아니다.
정씨는 “하나의 작품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보고 또 보고 또 판다, 그래서 시간도 많이 걸린다”며 “인장에 손님을 위한 길한 운수나 부귀와 강녕이 깃들게 한다는 자세로 혼신을 다해 한 자 한 자를 새긴다”고 했다.
정씨가 처음 도장을 파기 시작한 것은 60년 전인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남 거제가 고향인 그는 졸업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자신의 통장과 단체로 주문한 개인 도장을 받았다. 평소 손재주가 있었던 그는 그때 받은 도장을 보고 흉내를 내서 팠다. 잘 파기도 했지만 뭔가 끌리는 느낌을 받았다.
정씨는 “중학교에 들어가 공부는 안 하고 계속 도장을 팠다”면서 “학교 친구들이나 동네분들에게 10원, 20원씩 받고 도장을 만들어 주는 보람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군대에 가서도 도장을 팠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연필 깎는 칼 하나로 길거리에 서서 즉석에서 만들어 주기도 했다. 제대 후 서울에서 도장 가게 점원으로 잠시 일하다가 20대 후반 부산으로 내려와 지금의 점포를 열었다.
당시 여러 학교에서 학생들의 도장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이어져 연말이면 몇 날 며칠을 밤낮으로 도장에 이름을 새기고 또 새겼다. 목도장 100개를 두 시간 만에 만들어낸 적도 있다. 문패도 많이 만들었다. 그는 “칼만 한번 지나가면 도장에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지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작업을 수행과 같이 여겨 만드는 도장마다 혼을 담기 위해 항상 맑은 정신과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한다. 젊은 시절 그렇게도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나이 50에 끊었다. 그는 술과 담배를 ‘던져 버렸다’고 했다. 보다 더 배우고, 건강하게 자신의 일을 죽는 날까지 해야 한다는 깨우침 때문이었다.
도장을 자신만의 예술이라고 여겨왔던 정씨는 서예를 공부하고 성명학도 익혔다. 남다른 노력을 통해 도장을 작품으로 만들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었다. 정씨는 “내 공부가 우선이라 생각해 붓글씨를 익히고, 한문, 고사성어 등을 공부하면서 마음의 소양과 수양을 쌓았다”면서 “서예로 익힌 붓글씨가 도장을 팔 때 그대로 전달돼 나타난다”고 했다.
그가 만드는 도장은 성명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손님 이름의 한자 획수를 기준으로 초년, 중년, 말년의 운세를 알아본다. 이름이 좋지 않을 경우 인(印), 신(信), 장(章) 중 하나를 도장에 새기거나 복(福), 점(点)자를 넣기도 한다. 이름 획수를 달리해 이름의 뜻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그 이름에 복을 북돋우고, 모자라는 기운을 채우는 것이다.
도장 겉면에는 부귀강녕(富貴康寧)이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같은 길한 운수를 기원하거나 좌우명으로 삼을 수 있는 문구를 새겨준다. 도장에 새겨진 문구를 보면서 삶의 목표나 지향점을 잊지 말라는 의미다.
그동안 만든 도장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렇지만 정씨가 새긴 손님들의 이름 모양은 같은 게 하나도 없다. 그는 “사람마다 다른 이름과 인생을 갖고 있는 만큼 도장도 그 사람에 맞게 만들어야 세상에 오직 한 사람을 위한 것이 된다”고 말했다.
작업대 왼쪽 아래 서랍에서 꺼낸 낡은 종이 묶음에는 인주(印朱)로 찍은 각양각색의 도장 모양들이 있었다. 도장 문양에 이름은 기본이고, 별이나 무당벌레, 잠자리, 카메라, 달마도, 팔괘 등 ‘기발한’ 문양들이 새겨진 것도 많았다. 정씨는 “손님들이 원하면서 뭔가 기존의 것과 다른 것을 끊임없이 생각한다”면서 “상상력을 계속해서 반영하는 것도 오랜 경험과 고민의 결과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도장을 새기는 틈틈이 여유 시간을 이용해 서예를 하기도 하고 돌이나 나무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전각(篆刻),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는 서각(書刻) 작품을 만드는 데도 열심이다. 아예 자신의 점포와 안으로 연결되는 있는 작은 공간에 ‘부산인각연구소’를 차렸다. 기와와 목판, 돌 등 각종 재료에 새긴 작품들이 선반에, 벽에, 진열대에 가득 차 있었다. 십이지신을 깎은 나무판 12개에는 단순히 십이지신을 새긴 것이 아니라 암수 한 쌍을 새겨 세상의 음양의 이치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쥐 한 쌍을 조각하면서 암컷 쥐 꼬리에 리본을 살짝 넣는 등 재치도 넘쳤다. 반야심경 내용을 낙관으로 만들고, 바닷가에서 주운 차돌에 글과 그림을 새기고 색깔도 넣었다. 새기고 깎을 수 있는 재료 중 안 해 본 게 없다고 했다.
이렇게 만든 작품들은 점포 ‘해인당’ 바깥에서 볼 수 있는 진열장에도 빼곡하다. 정씨는 “동네분들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고, 부산과 인근 지역은 물론 서울, 제주에서도 주문이 온다”면서 “지나가던 외국인들도 가게 진열장에 있는 ‘작품’들을 보고 들어와 주문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 새긴 도장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버린다고 했다. 손과 몸으로 새기는 사람은 기능인일 뿐, 마음을 다해 의미를 담아야 진정한 장인이 된다고 믿는다 했다. 도장에 새기는 것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이기에 장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도 했다.
정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계속하면서 스스로 마음 공부와 수련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그는 오늘도 도장에 홀려조각도를 잡는다. 이곳에서 45년 동안 '싹, 싹, 싹' 소리를 내고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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