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분 중에 간혹 학력의 진위 문제가 벌어지곤 한다. 대개는 우리와 학제가 다르고 학위 통과 방식이 다름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학력 인정이 안 되는 교육기관도 외국에서는 석·박사 진학이 가능하며, 때론 졸업논문 없이 지도교수의 승인을 통해 학위가 취득되는 일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 같은 꼰대로서는 까맣고 두툼한 논문이 아니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서 원효와 더불어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의상의 졸업논문(?) 역시 불과 210자에 불과하다. 특히 의상이 새로 시작한 해동화엄종은 공부를 중심으로 하는 교종이라는 점에서, 이는 매우 아이러니하다.
사연은 이렇다. 의상은 스승인 지엄의 문하에서 60권으로 된 '화엄경'을 약 7년(661∼668)간 수학한다. 그리고 지엄이 입적하는 668년 '화엄경'에 대한 두툼한 책을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
그런데 지엄은 이를 보지도 않고 '진실한 것은 불에 타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아궁이에 던져 버렸다. 실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PC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학위논문은 손글씨로 작성됐다. 핸드메이드인 셈이다. 그런데 별난 교수님은 논문심사 중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장을 찢어서 버리는 일도 존재했다. 그런데 심사받는 사람은 교수의 권위에 눌려 이것을 가져오지 못하며, 이후 수정에서 엄청난 고초를 겪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실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엄은 한술 더 떠 불에 태운 것이다. 진실한 것에는 신묘한 힘이 있어, 불에 타지 않는다는 전설은 인도와 중국에서 모두 확인된다. 라마의 부인 시타가 정절을 의심받자 불 속을 걸어서 통과했다는 '라마야나'의 이야기, 또 불교와 도교의 우위를 경전에 불을 질러 평가했다는 '비법분경(非法焚經)'의 내용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설일 뿐이고, 의상의 졸업논문은 불길에 홀라당 타버렸다. 확실히 현실과 이상의 온도 차는 막심한 것이다.
그런데 의상이 실망하고 있을 때, 뜻밖의 반전이 일어난다. 이게 책이다 보니, 불이 꺼지고 나서도 군데군데 종이가 뭉쳐 덜 탄 곳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한자는 글자 자체가 단어이다 보니, 의상은 이렇게 남은 글자로 퍼즐 맞추기를 해 문장을 완성했다. 이것이 바로 7글자 30행으로 된 210자의 '법성게(法性偈)'다.
의상은 '법성게'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글자가 타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무튼 의상은 210자로 신묘한 글자도상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화엄일승법계도'다. 즉 글자도상이라는 하나의 창조적 문화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이 문화는 이후 명효의 '해인도'로 계승되고, 불교를 넘어 권근의 '입학도설'과 퇴계의 '성학십도' 등으로까지 이어진다.
'삼국유사'의 일연은 의상의 졸업논문을 평가하여, "솥의 국 맛은 한 숟가락만으로 충분하다"라고 했다. 이처럼 60권 '화엄경'의 엑기스가 210자에 온전히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논문을 쓰는 사람들은 '내용을 늘리는 것보다 줄이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의상의 축약은 실로 대단했으며, 학제가 다른 측면은 과거에도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학위도 중요하지만 '어떤 관점을 가졌느냐'가 더 본질이며, 이를 통해서 '행복한가'가 더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의상의 충격적인 학위 통과 과정과 짧은 논문은 현대인들에게도 자못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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