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제로의 2022년

입력
2022.01.04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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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국 연방 하원의원 5명이 작년 11월 25일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착륙한 전용기 보잉 C-40C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의원들의 방문은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로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뤄졌다. 그러나 미국의 글로벌 위기컨설팅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은 대만해협 갈등은 과장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EPA=연합뉴스

미국 연방 하원의원 5명이 작년 11월 25일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착륙한 전용기 보잉 C-40C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의원들의 방문은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로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뤄졌다. 그러나 미국의 글로벌 위기컨설팅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은 대만해협 갈등은 과장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EPA=연합뉴스

글로벌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이 2022년 세계 10대 지정학 리스크 보고서를 발표했다. 최근까지 긴장감이 높았던 대만해협 위기, 미중 신냉전 문제는 리스크에서 제외됐다. 과장됐거나 올해는 그 강도가 약해질 것이란 예상이다. 지정학 위험의 근저에 놓인 문제는 누구도 이끌지 못하는 지도력의 공백, 이른바 G-제로(0) 문제라고 했다. 국제 현안을 이끌 글로벌 리더십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 10대 리스크 중 먼저는 ‘코로나 제로는 없다’는 현실이다. 3년째인 팬데믹은 많은 국가를 괴롭히겠지만 특히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실패할 걸로 봤다. 대량 확진으로 지역들이 폐쇄되면 경제 타격으로 이어지게 된다. 미국에선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해 바이든 탄핵, 트럼프 복귀 추진 같은 극단적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 이란의 핵개발 진전과 높아진 이스라엘의 공습 가능성, 증폭되는 터키 위기, 러시아 긴장 도발도 주요 리스크에 꼽혔다.

□ 글로벌 리스크를 확산시킬 악재는 미중의 지도력 부재다. 공교로운 점은 미중 두 강대국이 동시에 국내 문제로 빨려 들고 있는 점이다. 세계에 축복일 수도, 재앙일 수도 있지만 전망은 후자에 가깝다.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나 정치는 갈등 조정 기능을 상실했고 경제적 불평등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다. 중국은 G1을 넘보지만 수십 년 고속성장에 따른 과도한 부채, 출산율 저하, 경제 불평등으로 인해 국가발전을 견인해온 모멘텀들이 사라지고 있다.

□ 만만치 않은 국내 문제로 인해 미중의 직접 대립은 완화되겠지만 지구촌 곳곳에서의 갈등은 커지게 된다. 한때 지경학에 대체됐다고 믿었던 지정학이 마치 20세기 초처럼 빠르게 귀환하고 있는 양상이다. 예멘 미얀마 에티오피아의 내전, 베네수엘라 아이티의 난민 문제, 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테러리즘은 여전히 지역 세계를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역내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한 동아시아는 어느 곳보다 지정학의 각축이 벌어지는 현장이다. G-제로 세계에서는 한국의 성장과 발전을 가능케 한 그간의 질서들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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