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바꾸기’ ‘퍼주기’ 일색 대선 캠페인
국민 속이는 방자함에 양대 후보 신뢰 잃어
연금개혁 등 미래 위한 ‘진심 공약’ 절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새해 첫날 급기야 신발 벗고 넙죽 큰절을 했다. 오만함에 대한 비판이 빗발치고 지지율이 급락하자, 겸허히 국민을 섬기겠다는 뜻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 옛날 노인정도 아니고, 요즘 어떤 국민이 그런 절 받고 기분이 좋아져 돌아선 마음을 돌리겠는가. 절박한 마음을 옛날 식으로라도 표현해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바로 윤 후보의 시대지체다.
비단 윤 후보의 큰절뿐만 아니다. 여기저기 함부로 ‘국민의 뜻’을 팔면서 되레 국민을 ‘핫바지’ 취급하는 방자함이 대선 캠페인 현장에 만연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보니, 새해 전야부터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비롯한 제3지대 후보 지지율이 약진하는 심상찮은 민심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더는 양당 후보들에게 농락당하며 ‘핫바지’로 전락하지는 않겠다는 민심 저류의 흐름이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교언(巧言)으로 대중을 현혹하는 건 정치의 오랜 기술 중 하나다. 그래도 금도는 있었다. 추구하는 바를 멋있게 포장하되, 얄팍한 속임수는 쓰지 않는 것. 국민도 그런 속임수에는 결코 속지 않을 것이라는 민심에 대한 경외감 같은 걸 유지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대선 캠페인에서의 레토릭은 그런 금도를 넘어섰다.
일례로 이재명 후보는 그린벨트 해제 문제에 대해 최근 “지금은 시장이 너무 강력한 요구를 하기 때문에 일부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택지 공급도 유연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냈다.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해온 기존 입장을 뒤집은 얘기다. 하지만 ‘시장이 요구하기 때문에’ ‘일부 해제’ ‘유연하게 해야’ ‘생각한다’ 등 추후 달리 해석할 여지를 곳곳에 박아 놓음으로써 ‘공약’ 아닌 ‘의향’만으로 민심을 낚으려는 뻔한 속내를 보인다. 선거공약은 재판정의 변론과 다르다. 교묘한 말재주가 아닌 정정당당한 약속으로 국민의 선택을 바라는 계약이다. 그런 점에서 교언과 말 바꾸기를 국민은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후보가 변호사 출신다운 현란한 말재주로 되레 신망을 잃는 경우라면, 윤석열 후보는 아예 국민의 판단력을 무시하는 어불성설로 빈축을 사고 있다. 이준석 당 대표에 대한 조수진 의원의 공개 항명에 대해 “그게 바로 민주주의”라며 삼척동자도 웃을 엉뚱한 비유로 상황을 얼버무리려 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말로써 대중을 기망할 수 있다고 보는 후보들의 잘못된 인식은 고무신짝으로 표를 사던 구태의연한 ‘퍼주기 공약’이 활개치는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코로나19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비상한 지원이나, 부동산시장 활로가 절실한 건 맞다. 하지만 정부를 아예 제쳐놓고 50조 원, 100조 원의 추경 구상이나, 250만 채 주택공급 또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같은 예민한 공약을 멋대로 남발하는 건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행태일 뿐이다.
가장 납득이 어려운 건 두 후보가 앞다퉈 청년 선심공약을 뿌려대면서 정작 청년세대의 미래에 엄청난 부담을 떠넘길 공적연금 위기와 관련해서는 일절 입을 다무는 행태다. 그렇다 보니 국민연금과 공무원·군인연금의 실질 통합을 공약한 안철수 후보의 진심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정치의 최대 목표는 집권이겠지만, '정치적 진심'은 정권을 초월해 역사에 남는다. 연금개혁을 위해 대통령 연금을 포기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나, 노동시장 혁신을 위한 ‘하르츠 개혁’을 감행하고 낙선을 감당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같은 정치적 진심을 우리 국민이 모를 리 없다. 맑은 기운으로 시작된 새해, 대선후보들의 멋진 경쟁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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