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관심은 대만인데, 북한 얘기만 해서야

입력
2022.01.04 00:00
27면
5명의 미국 하원 의원단이 지난해 11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의 총통부를 예방해 차이잉원 총통을 면담하는 가운데 마크 타카노 의원이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5명의 미국 하원 의원단이 지난해 11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의 총통부를 예방해 차이잉원 총통을 면담하는 가운데 마크 타카노 의원이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한국은 정치 자체가 한편의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잔인하면서도 오락성 짙은 드라마다. 그래서일까, 국민들이 '한가하게' 바깥 세상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말로는 '한국은 외교가 중요한 나라'라고 하면서도 이번 대선에서도 외교 문제는 뒷전이다.

그러니 외교 뒷담화가 미주알고주알 많이 나오는 미국 언론과 견주어, 한국 언론에서는 깊은 외교의 맥락과 행간을 짚어주는 기사도 별로 없다. 특종도 다 북한 관련 특종이다. '덩샤오핑 사망' 같은 세계적 특종은 다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고스란히 대한민국의 손해로 귀결된다..

다들 외교에 별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도, 늘 외교는 쉽다. 오직 말로서. 사우나에 가도 '트럼프'와 '바이든' 심지어 문재인 정부가 상대하기 어려워하는 '시진핑'마저도 한 방에 훅훅 보내 버린다. '김정은'은 말할 것도 없다. 사우나탕에 30분 몸을 담그고 귀를 열어놓으면 세상에서 북한문제 해결하는 것만큼 쉬운 것도 없을 것 같다. 미국도 중국도 다 대한민국에는 손든다. 결국, 이는 대한민국을 손들게 할 것이다. 사우나탕 밖에서.

그러나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우나 담화에선 아직 다루어지지 않는 이슈가 있다. 바로 대만 문제다. 대한민국은 지금 대만 문제에 너무도 관심이 없다. 대만 문제는 지난 1년여 동안 진화 과정을 거쳤고, 특히 지난 9월부터는 미국 정치권에서 폭발적 변이 과정을 통해, 현재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로 부상했다. 한국 언론이 일부를 퍼다 나르고 있지만, 정치권과 학문 제도권에서는 이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전혀 전개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만 문제 대응과 관련해 기시감이 드는 것은 미중 갈등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다가, 막상 동네 떡볶이집 사장님까지도 미중 갈등을 논평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자, 그제서야 부랴부랴 국회의원들이 미중 관계 세미나를 열던 것과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오늘 아주 시의적절한 미중 관계 주제에 대해서 강연해 주실 분을 모셨습니다." 당시 사회를 봤던 국회의원은 이렇게 필자를 소개했다. "시의적절한 것이 아니라 조금 늦었지요." 나는 최대한 겸손하게 말했다. 혹시 다음에 안 부를까 봐.

여태껏 한국 정부는 워싱턴에서 정책회의를 할 때 거의 북한 전문가들로 채워서 보냈다. 오로지 한국 측 관심의 대변이다. 그러다 무언가를 깨닫고는 근년 들어 중국 전문가를 한 명씩 끼워서 보내기 시작했다. 새해부터는 대만 문제 전문가를 꼭 끼워서 보내길 바란다.

대만 문제는 현재 워싱턴에서 그 구체적 토의가 상당히 진전된 상태다. 대만해협에서 군사 충돌이 있을 때 한국 정부의 대응, 주한미군의 개입 여부, 심지어 국내 정책 모임에서 아직 상상 밖의 영역인 한국군의 투입 여부까지, 우리도 가설적인 상황에 대한 아이디어까지 준비하고 가야 한다. 앉아서 '북한 문제 언제 나오지? 그때 말해야지'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차례 안 온다.

지금 발밑에서는 큰 지정학적 지각 변동이 태동하고 있다. 다시 만 문제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민감한 안보 문제가 되었다. 한국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북한 문제는 현재 미국의 '11번째 의제'가 되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의제가 10개 있을 때 말이다.


이성현 하버드대 페어뱅크센터 방문학자·前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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