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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재생과 함께 빈집세 도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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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31> 빈집, 주택정책을 넘어 도시정책의 대상
주택 공급 확대를 앞다퉈 외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수명을 다해 철거를 앞둔 빈집의 경우는 도시 정비를 통해 새집을 공급하는 데에 집중하면 된다. 그러나 빈집이 지은 지 얼마 안 된 양호한 주택이라면 어찌해야 할까. 최근 지은 집을 부수고 다시 짓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원인이 노후도에 있지 않아 다시 짓는다 해도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 인구가 감소하는 농촌뿐 아니라 주택 수요가 풍부한 도시에서도 빈집 증가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정확한 분석을 통해 보다 정밀한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빈집은 도시의 지속 가능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사나 수리 목적으로 생긴 일시적 빈집이 아니라 장기 공가가 증가하면 여러 가지 부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버려진 빈집이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본다. 관리자나 거주자가 없으므로 무단 침입해 범죄를 저질러도 대부분의 경우 막을 방도가 없다. 얼마 전 흉가 체험을 하던 인터넷방송 진행자(BJ)가 방치된 빈집에서 시신을 발견한 사건이 비근한 예다.
특정 지역에 대량으로 발생한 빈집은 그 부정적 영향이 한층 심각하다. 미국 디트로이트는 1950년대까지 세계적인 ‘빅3’ 자동차 회사로 인해 가장 번성한 도시였으나, 가성비 좋은 일본 자동차에 밀려 대량 실업이 발생하며 쇠퇴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도시를 떠나면서 버려진 빈집이 크게 증가했는데, 미국 주거실태조사에 의하면 디트로이트시가 파산한 2013년에는 총 주택 200만 가구 중 13.8%인 28만 가구가 버려졌다. 그로 인해 도시는 슬럼화됐고, 빈집을 철거하거나 관리하는 데 막대한 행정력과 재정이 소요되며 도시의 재기를 더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고령화와 지방 쇠퇴가 심각한 일본 역시 빈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8년 주택·토지통계조사’의 결과를 보면 일본 전체 주택 6,240만 가구 중 13.6%인 849만 가구가 빈집이다. 빈집은 주거환경을 더 열악하게 만들고 지역 쇠퇴를 가속화시킨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일본의 핵심인 도쿄에도 열 가구 중 한 가구가 빈집이며, 일본에서 가장 빈집이 많은 기초자치단체가 도쿄도의 세타가야(世田谷)구라는 사실이다. 노무라연구소는 2030년, 일본 전체 주택의 3분의 1이 버려지거나 빈집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은 길고도 힘든 빈집과의 전쟁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빈집은 151만 가구다. 이는 전체 주택 1,850만 가구 중 8.2% 수준으로 일본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세계 10위 안에 드는 심각한 상황이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새집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빈집 증가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는 것이다. 지난 5년간(2015~2020) 총 주택수가 13.2% 증가한 데 비해 빈집은 무려 41.4%나 증가했다. 주택 재고가 216만 가구 느는 동안 44만 가구의 빈집이 더 생겼으니 실제 거주하는 주택수로 따지면 172만 가구만 공급된 셈이다.
주택 부족이 가장 심각한 수도권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수도권 전체 주택수가 15% 증가하는 동안 빈집은 60.3% 증가했다. 서울만 놓고 보더라도 최근 5년간 주택수가 8% 증가하는 동안 빈집은 22.2% 늘어났다. 공급 확대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구멍 난 그물로 물고기를 잡은 꼴이다.
그렇다면 어떤 해결 방안이 있어야 할까. 자연스러운 주택여과과정에서 발생하는 노후주택 중심의 공가화인지, 아니면 수급불일치나 다른 요인에 기인한 것인지에 따라 처방은 달라야 한다. 전자라면 철거나 재생을 통해 빈집을 해소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후자라면 빈집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더 근본적인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빈집 증가는 단지 노후주택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계청 빈집통계에 따르면 전체 빈집에서 20년이 안 된 비교적 젊은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47%에 이른다. 더구나 전체 빈집의 반 이상이 아파트인데, 그중의 반은 20년 이하 주택이다. 비교적 연령이 낮은 주택들이 비어 있다는 것은 수급 불일치나 투자 등의 다른 요인이 상당수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빈집이 발생한 이유를 살펴보면 ‘매매·임대·이사’가 전체의 43%로 가장 많고, ‘일시적(가끔) 이용’이 27%, ‘미분양·미입주’가 17%다. 이사를 위한 한시적 빈집인 경우가 가장 많아 주택여과과정이 빈집 발생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계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석은 달라진다. ‘이사’로 인해 잠시 빈집이 됐다면 단기적으로 해소가 돼야 하는데, 6개월 이상 빈집으로 남아 있는 주택이 전국적으로 23만 가구나 된다. 한시적 빈집이 아닌, 과잉 공급된 주택이거나 시세 차익을 노린 투자주택이 다수 존재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미분양·미입주’로 인한 빈집 21만 가구까지 합하면 철거대상이 아닌 장기 빈집은 최소 43만 가구로 전국 연평균 주택 공급량에 근접한다.
2018년 제정된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은 빈집문제 해소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 법은 노후 빈집에 집중하고 있어 여러 한계점을 노출하고 있다. 앞서 살펴봤듯 빈집의 절반이 노후하지 않은 주택이기에 철거나 보수와 같은 물리적인 해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세제 혜택 등을 통해 다수의 빈집에 입주를 유도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소유자가 사망한 후 상속받은 빈집을 3년 안에 매각하면 양도소득세를 감면해주는 등 빈집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영국은 공가율이 0.9%에 불과하지만 ‘빈집 중과세(Empty Home Premium)’를 도입해 빈집이 신속하게 저렴주택으로 전환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2년 이상 장기간 비어 있는 집에 대해서는 카운슬세(Council Tax)를 최대 300%까지 중과할 수 있다.
높은 임대 수요가 있는 캐나다 밴쿠버도 6개월 이상 비어 있는 주택에 대해 과세표준의 1%를 ‘빈집세(Empty Home Tax)’로 부과하고 있다. 디트로이트에서는 안전 문제가 있는 빈집은 철거하고 재생 가능한 빈집은 수리한 뒤 되파는 ‘재활 및 준비(Rehabbed & Ready)’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가율은 이미 높은 상태이며, 노후하지 않은 빈집이 많다는 것도 감안해 세분화된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노후 빈집에 대해서는 철거와 리모델링을 적극 지원하되 6개월 이상 빈집으로 방치된 양호한 주택에 대해서는 ‘빈집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특히 투자 목적으로 매입해 집을 비워두는 경우에는 재산세를 중과하는 캐나다의 ‘투기빈집세(Speculation and Vacancy Tax)’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보다 근본적인 빈집 정책은 정확한 수요 추정과 도시정책에 기반해야 한다. 주택수요 분석의 정확도를 높이게 되면 과잉 공급으로 인한 빈집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미분양이나 미입주로 발생한 빈집 21만 가구는 결국 수요분석의 실패에 기인한 것이다. 또한 대표적인 도시정책인 도심정비사업을 적기에 시행하면 노후 불량 빈집도 해소하면서 수요 부족에 의한 빈집도 최소화할 수 있다.
지금의 추세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공가율은 머지않아 10%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를 것이다. 애써 지은 집들이 많이 비어 있지만, 한편에서는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더 심화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빈집 발생 원인별 맟춤형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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