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구성주의? 아니, 구축주의!

입력
2022.01.04 04:30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展’ 특집 <12>

예술이 새로운 시대의 생활과 물질문화의 기반이 돼야 한다고 봤던 러시아 구축주의는 특히 디자인과 건축에서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구축주의를 주도한 바르바라 스테파노바의 직물 디자인(1920년대). togdazine.ru 제공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했듯 우리가 지닌 언어의 한계는 우리가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로 직결된다. 따라서 섬세하고 정확한 용어의 사용은 비단 학술적 이유만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인식과 이해의 정도를 더욱 깊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1990년 당시 우리가 모르던 세계인 소련이 개방되고 어느새 한러수교 30주년을 훌쩍 넘어섰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말로 된 러시아에 관한 신뢰성 있는 지식과 정보는 극히 제한적인 실정이다. 대표적 예로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 조류 중 하나를 지칭하는 'constructivism'이라는 용어의 번역이 구성주의와 구축주의 사이에서 계속 표류하는 문제를 들 수 있다.


니콜라이 라도프스키가 1935년 디자인한 모스크바 지하철 제르진스키 광장역(현 루뱐카역) 내부. typical-moscow.ru 제공

1921년 알렉산드르 로드첸코, 바르바라 스테파노바, 류보프 포포바, 알렉세이 간, 니콜라이 라도프스키 등 러시아의 젊은 미술가들과 예술이론가, 건축가들은 시각예술이 혁명 이후 열린 새로운 시대의 생활 및 물질문화의 기반이 될 것을 주장했다. 이들이 탄생시킨 디자인과 건축에서의 특정한 흐름은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이를 현재 국내에서는 러시아 구성주의, 또는 구축주의로 부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구성(構成)은 여러 부분 요소들을 짜맞추어 전체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며, 구축(構築)은 어떠한 체제나 체계, 시설 등의 기초를 세우는 것으로서 두 용어는 서로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알렉산드르 로드첸코의 렌기즈 출판사 광고 포스터 디자인(1925년작). artchive.ru 제공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구성주의가 아닌 구축주의가 원래의 용어가 지닌 의미를 보다 정확하고 충실하게 전달하는 번역이므로 이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 구성주의는 사회학과 심리학, 교육학에서도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러나 이를 20세기 초 러시아 시각문화에서의 특정 흐름에 관해 사용한다면 완전히 틀린 용어가 된다. 애초에 두 용어의 어원이 되는 러시아어 단어 'конструкция'가 구성과 구축이라는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으므로 무엇을 사용하든 상관없다는 주장도 있을 법하나 원래 용어의 형성 배경을 고려해 엄정히 따진다면 구축주의만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1921년 러시아 미술계의 중요 사건 중 하나인 '구성 대 구축 논쟁'을 살펴봐야 한다.


이반 모로조프가 1926년 선보인 조립식 책상 디자인. tehne.com 제공

'구성 대 구축 논쟁'의 기원은 칸딘스키와 일군의 젊은 예술가들 사이의 대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 당시 칸딘스키는 예술문화연구소(인후크)의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칸딘스키 자신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그의 연구계획은 창작자와 감상자의 정신성 및 감정 등 비물질적이고 주관적인 방법론에 기반했고 이는 곧 유물론적 사고와 객관성을 중시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그 결과 1920~1921년 사이 인후크는 회화예술에서의 물질성을 배격하고 정신적 구성 실험을 이어가려는 이들, 물질적 현실에 기반한 회화에서의 구성·구축 실험을 통해 새로운 현실을 구축하려는 이들, 회화는 본질적으로 구축이 아닌 구성만이 가능하므로 조각과 건축에서의 구축을 추구하는 이들, 그리고 순수미술을 폐기하고 물질적 생산을 통해 현실을 구축하려는 이들로 다양하게 분화돼갔다.

이들 중 첫 번째 그룹이 1921년 초 칸딘스키와 함께 인후크에서 사직하고, 두 번째 그룹과 세 번째 그룹이 그해 1월부터 4월까지 아홉 차례에 걸친 '구성 대 구축 논쟁'을 통해 자신들이 지향하는 바를 정리해 구축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들은 네 번째 그룹과 함께 같은 해 가을 '생산적 예술'로서의 구축주의의 실제적 실천 방향을 확립했다. 결국 구성주의라는 용어는 현실에서 벗어난 순수회화에서의 시각요소들의 배치를 통한 정신적·심리적 효과를 탐구하는 실험이었던 '구성'에서 탈피해 실제 현실의 기반을 스스로 만들어내고자 했던, 즉 혁명 이후 도래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삶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구축'하고자 했던 젊은 러시아 미술가들의 지향점과 완전히 상반되는 잘못된 용어인 셈이다.


콘스탄틴 멜니코프가 1925년 디자인한 파리 장식미술전에서의 소련 파빌리온. wikimedia.org 제공

국내에서 구성주의와 구축주의라는 용어가 혼용되는 문제는 앞 세대가 걸어간 길과 그 권위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고 답습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의 오랜 학습풍토가 그 근본적 원인일 것이다. 이는 기초적 지식 습득을 위해서는 분명 효과적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에 기반한 문제 제기와 토론이 필수 불가결하다. 칸딘스키라고 하는 거대한 권위에 대한 젊은 예술가들의 도전과 비판을 통해 현대적 디자인과 건축의 탄생을 촉진한 구축주의의 형성과정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훈석 전시기획자·러시아미술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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