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석탄발전소' 표현, 왜 제재하지 않나

입력
2022.01.05 11:00
수정
2022.01.05 14:2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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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공정위 제재 권한 있지만
전문가들 "정부가 소극적 단속" 비판
환경부, 과징금 부과도 안 해 봐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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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병들어 가는데, 주변에는 친환경이 넘칩니다. 이 제품도, 이 기업도, 이 서비스도 친환경이라고 홍보를 하지요. 한국일보는 우리 주변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추적하고 정부와 기업의 대응을 촉구하는 시리즈를 4주에 한번 연재합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시내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 뉴시스

지난달 26일 서울 시내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 뉴시스

국내에도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제재하는 법률이 있다. 표시광고법과 환경기술산업법이다. 공정거래위원회와 환경부가 각각 집행한다. 그런데도 그린워싱이 일상화된 데는 정부의 의지 부족이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주방용품ㆍ요가매트 등 소비재에 국한

환경산업기술법(16조의10)은 '제조업자, 제조판매업자 또는 판매자는 제품의 환경성과 관련해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자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인한 결과, 환경부는 최근 3년(2019년 1월~2021년 10월)간 총 208건의 환경성 표시ㆍ광고 위반제품을 적발했다.

적발된 제품은 △요가매트 51건 △주방용품 50건 △가구 31건 △페인트 20건 등이었다. 근거 없이 '친환경' 표현을 사용한 경우가 190건(중복 포함)으로 가장 많았고, '유해물질 불검출(20건)' '자연분해(9건)' 등도 있었다. 주방용품 제품 5개는 '탄소배출 감소' 표현을 써서 적발됐다.

같은 기간 공정위의 표시광고법 위반 사례는 총 48건이었다. 그중 8건이 환경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었다. 창호 제품의 냉난방비 저감 효과를 과장한 사례가 4건이었다. "연간 에너지 절감량 40~57%" "에너지 절감 비용 140만 원" 등의 표현이 실제 성능을 과장해 문제가 됐다. 이 밖에 김치냉장고에 사용하는 김치통에 근거 없이 ‘친환경’ 문구를 사용하거나, 자동차의 연비ㆍ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허위 기재한 경우도 포함됐다.

시정권고만? 적발돼도 남는 장사

환경부는 적발 기업에 관련 매출액의 2%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208건 중 요가매트 1건에 시정명령을 내렸고 나머지는 전부 시정권고에 그쳤다. 소비자 기만으로 벌어들인 매출은 그대로 기업 몫이 되니 기업으로서는 적발돼도 남는 장사다.

그나마 공정위는 8건에 모두 과징금(3,200만~9억 원)을 부과했고 고발도 한 건 있었다. 공정위는 시정조치를 내리거나 관련 매출액의 2%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고발해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다.

'제품' 아닌 '기업' 홍보는 제재 안 된다?

환경부는 제제 대상이 '제품'에 한정돼 있어, '제품'이 아닌 '기업'을 친환경으로 홍보하는 경우 제재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석탄발전·정유사 같은 기업들이 스스로를 친환경으로 칭하는 것이 방치되고 있는 이유이다.

공정위 관계자도 "광고가 어디까지가 적절하고 어디부터가 과장인지 평가할 기준이 필요한데 현재는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현영 법무법인 지평 ESG센터 변호사는 “세부적인 업종별 표시 기준이 미진한 부분은 있지만 포괄적인 원칙과 규제 수단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며 "세부 기준은 규제를 해 나가면서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환경부 고시에는 '실제 개선한 정도보다 과장하여 소비자를 기만할 우려가 없어야 한다' '법률에 따라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사항을 자발적으로 개선한 것처럼 광고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정보를 누락ㆍ은폐 또는 축소함으로써 소비자를 오인시킬 우려가 없어야 한다' 등 8가지 원칙이 담겨 있다.

공정위의 표시광고법 예규인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에도 '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인정되는 사항이 적절한 표현과 수단을 통하여 제시되어야 하며, 소비자가 이를 실제보다 과장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지현영 변호사는 "전체 배출량에 비해 극미한 탄소만을 저감하고 이를 홍보하며 ‘친환경 에너지기업’ 등 표현을 쓰는 것은 환경기술산업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며 “결국 제재의 근거 법률이 아닌, 관리 감독 의무가 있는 정부 당국의 의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의 기업 제소, 새 기준 마련될까

호주 북서부 해상의 바로사 가스전 전경(왼쪽 사진)과 위치(오른쪽 사진). SK E&S 제공

호주 북서부 해상의 바로사 가스전 전경(왼쪽 사진)과 위치(오른쪽 사진). SK E&S 제공

실제 현행법을 근거로 에너지기업의 광고를 문제 삼은 사례도 있다. 지난달 22일 시민단체 기후솔루션은 SK E&S가 부당한 표시광고를 했다며 공정위에 제소하고 환경부에 신고했다.

SK E&S는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유통·발전 기업으로, 호주 북서부 해상에서 ‘바로사 LNG전 개발 사업’을 진행해 2025년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매장량은 약 7,000만 톤으로 SK E&S는 20년 동안 연간 130만 톤의 LNG를 국내로 가져올 예정이다.

문제는 SK E&S가 이를 친환경 사업으로 광고하며 발생했다. 홈페이지와 유튜브 영상에 “탄소 없는(CO₂ Free) 친환경 LNG 시대를 연다” 등의 표현을 했다. SK E&S는 탄소포집ㆍ제거(CCS) 기술을 활용해 LNG 생산 과정의 탄소를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SK E&S 관계자는 "생산·액화 단계에서 연간 약 400만톤의 탄소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CCS기술로 240만톤을 제거하고, 나머지 160만톤은 탄소배출권 거래 등을 통해 상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400만톤이라는 배출량이 과소 평가됐고, CCS의 포집량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기후솔루션의 설명이다. 생산·액화뿐 아니라 LNG를 연소할때 배출될 탄소까지 계산에 포함하면 배출량이 연간 약 1,35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또 SK E&S가 밝힌 CCS 포집 계획량은 200만여톤에 그쳐서 전체 탄소 배출량의 약 15%만 포집할 뿐 ‘탄소가 없다’는 표현은 허위ㆍ과장 광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하지현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CCS의 탄소포집량을 과장하여 가스전 사업이 친환경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광고로 명백한 표시광고법 위반”이라며 "법을 넓게 해석한다면 지금 법으로도 충분히 제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후솔루션 측에 실증 자료를 요구해 검토한 후 공정위와 협의 하에 판단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현종 기자
장상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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