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 무산에 ‘통신 사찰’ 논란 반복... 방치된 법안이 무더기 조회로 이어져

입력
2021.12.31 04:00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 근거
재판·수사 목적 통신자료 조회 가능
개인 기본권보다 수사 적법성 우선
인권위 삭제 권고에도 국회선 뒷짐
"영장 없으면 제한하고 고지 의무화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30일 서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공수처 해체 촉구 피켓을 들고 의원총회를 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인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사건과 수사 특성상 피의자 등 사건관계인의 통화 상대방이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기자 등 일반인의 통신자료 확인이 불가피했다

통신 조회 논란 관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입장문 중 일부

언론인과 정치인 등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대규모 통신기록 조회가 사찰 논란으로 번지면서, 통신 조회가 가능하도록 만든 근거 규정인 전기통신사업법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현행법이 수사기관의 무더기 통신조회 관행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만큼, 조회 신청 기준을 대폭 높이고 무분별한 조회를 막기 위한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통신조회 논란의 뿌리,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

공수처가 정치권과 언론인 등의 통신자료를 무더기로 제공받고도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이다. 공수처를 비롯해 검찰과 경찰은 해당 조문을 따라 재판·수사 등 목적으로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서비스 이용자의 정보를 요구한다. 통신사들은 수사기관 요청에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일 또는 해지일 등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문제는 통신자료는 영장 없이도 무차별적으로 요구할 수 있어 입법과 사법적 통제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통신자료가 법원 영장을 필요로 하는 ‘통신사실확인자료’와 결합되면 무더기 조회가 가능해진다. ‘고발 사주’ 의혹 수사를 위해 카카오톡 통신영장 집행을 통해 단체 대화방에 속한 국민의힘 의원 통신기록 조회와 이성윤 고검장의 '황제 조사' 관련 폐쇄회로(CC)TV 영상 보도 기자를 통한 대규모 통신조회가 가능했던 것도 이 같은 맹점 때문이다. 여기에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통신조회 규모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시대 변화 담지 못한 법안이 '사찰' 논란으로

하지만 수사기관의 통신조회가 용이해지면서, 시민들의 기본권은 심각하게 침해됐다. 수사기관이 당사자에게 통보하지 않고도 무분별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전기통신사업법이 보장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가 2010년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이 헌법상 영장주의를 위반해 위헌이라며 청구한 헌법소원은 각하 결정이 내려졌지만, 김종대·송두환·이정미 재판관은 '통신자료 취득행위는 수사기관이 우월적 지위에서 일방적으로 서비스 이용자의 통신자료에 대해 행하는 수사행위로서 권력적 행위'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현행법이 개인의 기본권 보장보다 수사기관의 적법성을 우선하고 있어, 사찰 등 정치적 색깔이 덧씌워지는 구조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무분별한 조회의 근거가 되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의 삭제를 권고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통신조회를 당한 당사자에게 사유를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수사기관은 통제장치 없이 무분별한 조회를 하게 되고 정치적 논란으로도 번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수사 필요성과 개인의 기본권을 모두 충족시키는 법안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 영장 발부가 통신자료 조회의 필수조건이 되도록 못 박고, 수사기관은 조회를 당한 당사자에게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고지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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