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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이면 뭐 어때"… 새해엔 '갓생' 살자는 Z세대

입력
2022.01.01 04: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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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해시태그 '오늘 하루 이룬 것' 인증
소소한 목표 조금씩 달성하며 자기 만족
'물 많이' '라면 참기' 등 "70%만 해도 갓생"
"일상서 위로 받지만 지나치면 강박 우려"

'갓생' 살기에 도전하고 있는 대학생 한지혜(22)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업로드한 사진. 독자제공

'갓생' 살기에 도전하고 있는 대학생 한지혜(22)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업로드한 사진. 독자제공

#갓생 살기 #내가 해냄

대학생 한지혜(22)씨는 매일 하루를 마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이 오늘 해낸 일들을 이런 해시태그와 함께 인증한다. 대단한 목표는 없다. 라면 먹지 않기, 건강을 위해 운동하기, 물 많이 마시기 같은 소소한 것이 전부다. 최근엔 코로나19 유행 와중에 줄어든 야외활동을 늘리고자 '하루 20분 산책'을 추가했다.

새해를 앞두고 한씨를 포함한 Z세대(10대 후반~20대 중반) 사이에서 '갓생(God+인생)' 살기가 인기다. 이 신조어는 '실천 가능한 범위에서 열심히 살자'는 의미로 통용되며, 어려운 목표 대신 일상에서 소소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실천된다. 신(god)까지 끌어들인 거창한 표현은 일종의 반어법인 셈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제약이 많아진 상황에서 갓생은 이들 세대에 성취감과 위로를 동시에 얻는 방법으로 각광받는 분위기다.

"일찍 안 일어나도 괜찮아" Z세대, 내 계획은 내가 짠다

고등학생 송예원(17)씨는 '갓생' 살기에 도전하는 게시글을 SNS에 업로드하고 있다. 시간 단위로 나눠서 계획을 짜고 하나씩 실천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고등학생 송예원(17)씨는 '갓생' 살기에 도전하는 게시글을 SNS에 업로드하고 있다. 시간 단위로 나눠서 계획을 짜고 하나씩 실천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갓생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다. 이른 새벽 기상하지 않아도,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갓생을 살 수 있다. 올해 초 유행한 '미라클 모닝(miracle morning·새벽시간 활용)' 챌린지와는 결이 사뭇 다르다. 한씨는 "미라클 모닝은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인데 갓생은 그렇지 않다"면서 “갓생 살기에 도전 중인 지인은 야행성인 특성을 살려 '미라클 올빼미'를 자처했다"고 말했다. 늦게 일어나더라도 자기 방식대로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겠다는 것이다.

휴식이 필요하면 무리하지 않고 쉰다. 경찰공무원을 꿈꾸는 고등학생 송예원(17)씨는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친구들과 함께 갓생을 다짐했다. 그는 "갓생을 산다고 해서 '하루에 13시간 공부하기' 이러면 너무 힘들지 않겠냐"며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계획을 작게 나눠서 짠다"고 말했다. 평일엔 요일을 쪼개 공부와 운동에 매진하되 일요일은 푹 쉬기로 했다. 휴식도 계획이 된 셈이다.

갓생을 사는 서로의 모습을 공유하며 격려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갓생' 해시태그 게시글은 5,000개가 넘는다. SNS 계정명에 '갓생'을 넣어 운영하거나, 일면식도 없는 이들과 오픈채팅방에 모여 '갓생 꿀팁'을 나눈다. 이는 동기 부여로 이어져 또 다른 갓생을 낳는 선순환을 만든다.

"성취에만 집중하면 부작용… 70%만 달성해도 '갓생'"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갓생을 '자기 만족을 중시하는 Z세대 특성이 반영된 흐름'으로 분석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들은 결과보다 일상에 대한 만족감에 가치를 두고 판단하는 편"이라며 "다른 사람이 볼 때 소소한 일도 본인이 성취감을 얻으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현재를 중시하는 욜로(YOLO) 문화와 마찬가지로 성취에서도 당장 실현 가능한 걸 설정하는 것이 Z세대의 경향성"이라고 말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래들에게 위로를 구하는 행위로 갓생을 보는 시각도 있다. 구 교수는 "Z세대는 일상의 성취를 공유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갓생이라도 강박적으로 추구하면 실패에 따른 무력감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계획을 100%가 아니라 70%만 달성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본인이 노력한 것에 대해선 타인과의 비교 없이 충분한 크레딧을 줬으면 좋겠다"며 '70% 룰'을 강조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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