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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귀환 140일… 20년 만에 돌아온 정권의 모습은?

입력
2022.01.01 05:30
23면

탈레반 정권 탈환 후 '정상국가' 의지 내비쳐
실상은 여전한 '여성인권 탄압'과 '마약 경제'
국가 건설 과정서 '국내·국제법 충돌' 불가피

지난달 17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옛 미국대사관 건물 앞에서 총기로 무장한 탈레반 대원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카불=EPA 연합뉴스

지난달 17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옛 미국대사관 건물 앞에서 총기로 무장한 탈레반 대원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카불=EPA 연합뉴스

2022년 1월 1일은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재점령한 지 140일,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지 20년 110여 일이 되는 날이다. 탈레반 정권 초기, 국제사회는 테러와 폭력 심화, 여성 억압으로 대변되는 인권문제, 식량부족 문제와 양귀비 재배 및 마약 밀매 문제를 우려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을 지키는 ‘건설적 역할’도 기대했다. 아프간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불안한 ‘대전환’ 시기를 맞았고, 짧은 기간 동안의 탈레반 정권 정책은 현재 애매한 중간지대, ‘회색지대’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방의 만삭 여경을 가족 면전에서 살해하거나 투항한 과거 정부군을 처형하는 등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테러와 내전 같은 폭력 부분은 아직까지 우려했던 것만큼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국제사회로부터 “정상국가로 인정받겠다”는 의지를 조금이나마 보여주기도 했다.

겉으론 ‘평화’ 외치지만… 이어지는 ‘탈레반 본색’

탈레반과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는 모두 이슬람 율법(샤리아) 기반의 칼리파제 국가(신정일치 체제의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 그룹이긴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에서 차이를 보인다. IS는 일종의 이슬람 코즈모폴리턴(세계 시민) 또는 이슬람제국 건설을 최종 목표로 하는 살라피스트(이슬람 원리주의) 조직이다. 이를 위해 극단적 폭력을 자행해 왔다. 반면 탈레반은 IS에 비해 좀 더 온건한 모습을 보여주며, ‘새로운 국가건설’에 집중한다. 아프간 장악 이후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평화롭게 살기 원한다. 어떤 국내외 적을 원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하고, 국내외 평화 공존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경험적으로 보면, 어느 국가나 건설 초기에는 권력 투쟁으로 극심한 혼란이 발생한다. 그러나 아프간의 현재 상황은 예상과 달리 겉으로는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처럼 보인다. 탈레반이 사회를 장악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2차 탈레반 정권 140일간의 정책과 그들의 언행을 보면, 그들의 정책은 ‘포용적’이라기보다는 ‘배타적’이다. 일단 정부 구성이 그렇다. 지난해 9월 7일, 이들은 탈레반 최고지도자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와 정부 수반(총리) 물라 모하마드 하산 아쿤드 등이 포함된 33인의 임시 내각을 발표했다. 대다수가 아프간 주류 민족이자 탈레반이 다수 속한 ‘파슈툰’ 부족이며 소수민족인 비(非)파슈툰은 3명에 불과했다. 특히 내각 구성원 상당수는 1차 탈레반 정권 시기(1996~2001년) 지도자였다. 아쿤드 총리와 시라주딘 하카니 내무장관 등은 유엔과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이다.

지난해 9월 탈레반이 발표한 아프가니스탄 새 정부 내각 조직도. 그래픽=신동준 기자

지난해 9월 탈레반이 발표한 아프가니스탄 새 정부 내각 조직도. 그래픽=신동준 기자


허울뿐인 “여성 인권 존중”

“여성 인권도 존중하겠다”는 공언도 허울뿐이다. 국제사회가 탈레반의 ‘포용’ 여부를 가늠하기 위해 여성 장관 임명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내각에는 여성이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오히려 탈레반 정권은 TV 드라마에 여성이 나오는 것을 금지시켰다. “여성 저널리스트나 뉴스진행자는 베일을 써야 한다”는 지침도 내렸다. 다만, 베일 종류에 대한 별도의 지침은 없었다. 여성들이 히잡(머리에 두르는 스카프)을 착용해야 한다고 발표했지만, 부르카(눈 부위의 망사를 제외하고 머리부터 발목까지 덮는 의상) 착용을 강제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애매한 발표로 신체를 가리는 정도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를 수 있게 한 셈이다. 과거와 같은 가혹한 통제는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국제사회의 요구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 즉 자신들의 이슬람 율법과 국제사회의 인권보호 요구 사이 ‘회색지대 수준’의 지침인 것이다.

‘여성 복지’보다 ‘여성 통제’를 시도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정권을 재탈환한 탈레반은 여성부를 폐지하고 대신에 ‘권선징악부’를 부활시켰다. 1990년대 말 집권 당시 이슬람 율법을 잣대로 여성과 주민을 가혹하게 탄압했던 종교경찰을 되살린 것이다. 지난해 12월 12일, 압둘 바키 하카니 고등교육부 장관은 “여성이 교육받고 직업을 가지는 것을 막지 않지만, 남성과 함께 교육받는 것은 안 된다”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여성 교사나 교수가 부족하고, 남녀 학생이 분리되어 교육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내려진 이 같은 지침은 결국 여성 교육을 통제하는 꼴이 된다. 여성은 가족 남성이나 가까운 친척 남성을 동행하지 않고서는 공공장소 출입이나 72㎞ 이상의 여행을 할 수도 없다. 여성의 이동권까지 제한하고 나선 셈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여성들이 탈레반 정권의 잔혹한 학살과 여성 인권 탄압을 비판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카불=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8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여성들이 탈레반 정권의 잔혹한 학살과 여성 인권 탄압을 비판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카불=로이터 연합뉴스

사실 2021년 탈레반의 샤리아 해석은 1990년대 말 1차 집권 시와 비교해 거의 변하지 않았다. 당시에도 “여성을 위한 안전한 환경 만들기를 원한다”면서도 학교와 일터에서는 이들을 배제했다. 지금도 “여성에 대한 노동과 등교 금지는 일시적”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사회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것이 여성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돈줄 막히면 ‘양귀비 경제’ 회귀 가능성

경제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아프간 경제 체제는 마약(양귀비)과 파키스탄과의 불법적 상품교류를 통한 수익이 결합된 구조다. 1차 탈레반 정권은 1990년대(1994년 말~1995년 초) 양귀비 재배 및 마약 생산, 유통, 소비를 비이슬람적이란 명분으로 공식적으로는 금지했다. 그러나 어느 정권도 양귀비 생산을 완전 통제하지는 못했다. 안보, 정치권력 조정, 경제적 대안 부족 등 아프간 정치·경제의 구조적 문제 탓이다. 결국 1차 탈레반 정권은 1996년부터 양귀비 재배를 묵인했다. 심지어 1999년에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마약 재배 허가증을 부여하고, 양귀비 재배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2020년 아프간 양귀비 재배 면적은 약 22만4,000헥타르(약 2,240㎢)였다.

2차 탈레반 정권도 지난해 8월 “마약에 의존한 지하 경제와는 거리를 둘 것”이라고 공언하며 양귀비 재배 금지를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탈레반 점령 이후 국제사회의 ‘돈줄’이 마르면서, 경제 난에 직면한 아프간 농부들이 밭을 뒤엎고 양귀비 재배에 나서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만일 양귀비 재배와 마약 생산을 강하게 옥죄면 통치자금이 고갈되면서 탈레반 정권 유지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결국 국제사회의 경제적 지원이 제공되지 않으면, 탈레반 정권이 언제든 ‘양귀비 경제’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아프가니스탄 헬만드주 세레슈크 지역에서 현지 농부들이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다. 세레슈크=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프가니스탄 헬만드주 세레슈크 지역에서 현지 농부들이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다. 세레슈크=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앞으로 탈레반은 국제사회로부터 ‘정상국가’로 인정받은 이란을 모델 삼아 ‘탈레반식 아프간 이슬람공화국’을 건설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니파가 주류인 아프간에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식 정치체제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이슬람 법원도 창설할 전망이다. 근본주의 정치이슬람 그룹 탈레반이 창설한 아프간 이슬람공화국의 이슬람법정에서, 종교범죄와 여성 범죄, 마약범죄, 성범죄 등을 판결할 것이다. 당연히 탈레반의 이념·이상이 반영되고, 그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인권 요구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판결이 나올 수 있다. 국내법과 국제법 간 충돌이 불가피하다.

아프간 내 분쟁(내전)과 이웃 국가와의 분쟁(국제전)은 소강 국면으로 보이지만, 테러와 내전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알려지지 않고 보도되지 않은 협박·구금, 구타와 고문, 살해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IS-K나 민족저항전선(NRF) 같은 반(反)탈레반 세력이 호시탐탐 탈레반 정권의 몰락을 노리고 있다. 탈레반 정권의 여성관은 국제사회의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서 양귀비 경제로의 회귀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테러와 폭력이 사라지고, 여성 인권이 보장되며, 양귀비 경제로부터 탈피한 평화로운 아프간은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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