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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1월 3일 대통령을 향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경영 은퇴 선언

입력
2022.01.0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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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월 3일
통일국민당 창당과 대통령 선거 출마로 이어져
낙선 후 비자금 수사 고초, 1년 만에 정계 은퇴 선언

편집자주

한국일보 DB 속 그날의 이야기. 1954년 6월 9일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일보 신문과 자료 사진을 통해 '과거의 오늘'을 돌아봅니다.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선거 벽보. 1992.11.25.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선거 벽보. 1992.11.25.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2년 1월 4일 새벽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에서 신당 창당 계획을 밝힌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웃음을 머금으며 집을 나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2년 1월 4일 새벽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에서 신당 창당 계획을 밝힌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웃음을 머금으며 집을 나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1년 12월 31일 자로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떠나 새로운 일을 하겠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 1992년 1월 3일 현대그룹사장단 시무식

1992년 1월 3일 현대그룹사장단 시무식에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그룹 경영 완전 은퇴를 선언했다. 신당 창당설이 돌던 와중에 정치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임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이날 한국일보 기자와의 일문일답에서 총선과 대통령 선거에 직접 나서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Q. 은퇴하고 새 일을 하겠다고 했는데 새 일이란 구체적으로 뭔가.

"은퇴라는 말은 적합지 않다. 경제에서 정치로 활동영역을 바꾸는 것뿐이다. 그룹경영에는 전혀 관여치 않겠다. 그럴 시간도 없다."

Q. 총선과 대통령선거 등에 직접 나설 생각은 없는가.

"앞서 말한 대로 양성적으로 정치에 나서 참신한 인물들을 지원할 생각이다. 총선후 각 도지사 등 지자체 선거에도 후보를 낼 생각이며 대통령선거 후보는 당이 국민의 여론에 따라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선택할 생각이다. 나는 총선과 대선에 직접 나서지도 않을 것이며 총재직도 맡을 뜻이 없다."

(※ 1992년 1월 4일 자 한국일보 지면 보러 가기 ☞ www.hankookilbo.com/paoin?SearchDate=19920104 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주소창에 URL을 넣으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 말은 그해 5월 15일 뒤집혔다. 정 명예회장은 통일국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돼 그해 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창당 → 대선 출마 → 낙선 → 기소 → 정계 은퇴, 1년간의 롤러코스터 정치 역정

1992년 5월 15일 정주영 통일국민당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직후 김동길, 김광일 최고위원 등 당직자들과 함께 손을 들어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2년 5월 15일 정주영 통일국민당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직후 김동길, 김광일 최고위원 등 당직자들과 함께 손을 들어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 명예회장은 1991년 7월 중국을 함께 다녀온 민간사절단 63명으로 '천지동우회'를 11월 말에 결성, 신당 모체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해 12월에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신당 창당 의사를 표명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2년 1월 3일 그룹 경영 은퇴를 전격 발표하며 정치활동을 가시화했다.

그의 정치 활동은 속도전으로 진행됐다. 같은 달 10일 152명의 발기인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종로구 평동 서진빌딩에서 통일국민당의 창당발기인대회가 열렸다. 3월에 열린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31석의 의석을 얻어 국회교섭단체를 구성해 여당인 민주자유당과 야당인 민주당에 이어 제3당으로 부상한다. 이어서 5월 15일 통일국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돼 12월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

1992년 4월 10일 민자당의 김영삼, 민주당의 김대중, 국민당의 정주영 대표가 한국일보 주관 행사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2년 4월 10일 민자당의 김영삼, 민주당의 김대중, 국민당의 정주영 대표가 한국일보 주관 행사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러나 그의 거침없던 정치 행보는 대통령 낙선과 함께 멈춘다. 대선이 끝난 뒤 선거운동을 도왔던 아들 고 정몽헌, 정몽준 회장과 함께 비자금 사건 때문에 수사를 받으며 모진 고초를 겪고 난 후 정치에서 손을 뗀다.

결국 그는 '정치인 정주영'이기보다는 '위대한 경제인' '재계의 큰 별' 등의 수식어를 단 '기업인 정주영'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1993년 1월 15일 정주영 국민당 대표가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청사에 선거법 위반 혐의로 출석하던 중 입구에서 취재 중인 기자의 카메라에 부딪혀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3년 1월 15일 정주영 국민당 대표가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청사에 선거법 위반 혐의로 출석하던 중 입구에서 취재 중인 기자의 카메라에 부딪혀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정주영 정치 1년

1991년 12월 24일 한국일보 기자회견에서 신당 창당 의사 표명

1992년 1월 10일 통일국민당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창당준비위원장 피선

1992년 2월 8일 통일국민당 창당대회에서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

1992년 3월 24일 14대 총선에서 31석 획득(지역구 24, 전국구 7석)으로 제3당 부상

1992년 4월 3일 국민당창당발기인초청 만찬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 의사 첫 공언

1992년 4월 4일 현대그룹에 대한 주주권 행사 포기 공증

1992년 4월 17일 신문편집인협회 조찬간담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도덕성 문제없다"

1992년 5월 15일 국민당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

1992년 6월 8일 시사저널 초청 토론회에서 "공산당 결성 막을 수 없다" 발언 파문

1992년 11월 16일 정 대표, 채문식 새한국당창당준비위원장과 합당 선언

1992년 12월 5일 현대중공업 직원 국민당 비자금 폭로

1992년 12월 17일 한은, 정 후보의 "3천억 원 발권" 발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

1992년 12월 18일 14대 대통령 선거 3위 득표 낙선

1993년 1월 13일 검찰 현대비자금 관련, 정 대표 소환

1993년 1월 24일 정 대표 출국 금지, 김해 공항에서 일본행 시도

1993년 2월 76일 검찰, 정 대표 불구속 기소

1993년 2월 9일 정 대표 정계 은퇴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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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기자
자료조사= 김지오 DB콘텐츠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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