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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세계유산 추진 日 향한 일침… “독일 람멜스베르크 광산박물관을 보라”

입력
2021.12.29 18: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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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인터뷰]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사도광산은 군함도와 달라...
국제 외교전서 쓸 자료도,
시간도, 원군도 부족” 위기감 호소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佐渡)광산이 27일 일본 문화심의회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추천 후보로 선정됐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한 추천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할지 여부를 내년 2월 1일까지 검토할 예정이다. 사도광산 유적 중 하나인 도유(道遊)갱 내부 모습.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佐渡)광산이 27일 일본 문화심의회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추천 후보로 선정됐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한 추천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할지 여부를 내년 2월 1일까지 검토할 예정이다. 사도광산 유적 중 하나인 도유(道遊)갱 내부 모습.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이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메이지시대 산업유산’은 중국인이나 호주 등 연합군 포로까지 강제노역에 동원한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佐渡)광산에서 일본인 외에 동원된 것은 조선인뿐이라 국제사회 ‘원군’을 기대하기 쉽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의 현장인 니가타현 소재 사도광산이 일본 정부 문화심의회에서 세계문화유산 추천 후보로 선정되자,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은 29일 이렇게 위기감을 호소했다.

전날 우리 정부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으로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5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한일 간 외교전이 벌어졌던 메이지 산업유산과 달리 사도광산은 일제의 강제동원 역사를 부각시키기 위한 한국의 대응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본인 제공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본인 제공


정 위원은 2019년 ‘일본지역 탄광·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미쓰비시광업㈜ 사도광산을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를 냈고, 다음 주에는 ‘탐욕의 땅, 미쓰비시 사도광산과 조선인 강제동원’을 출간한다. 사도광산만 다룬 국내 저작물은 이게 전부고, 일본 학자의 연구 논문도 한 편밖에 없다. 생존자 육성기록과 조선인 명부 같은 1차 자료가 풍부해 한수산의 ‘군함도’ 등 창작물까지 존재하는 메이지 산업유산과는 상황이 다르다.

사도광산 1차 문서자료는 ‘조선인연초배급명부’와 ‘지정연령자연명부’ 등 2건과 일본 국립공문서관 쓰쿠바분관에 보관된 ‘귀국 조선인 미불임금 채무 등에 관한 조사’라는 니가타노동기준국 공문서가 전부다. 모두 2019년 정 위원의 보고서에서 처음 소개됐다. 이 중 미불임금 공문서는 1949년 2월 25일 1,140명에 대한 미지급 임금 23만1,059엔59전이 공탁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조선인의 최소 규모를 추측할 수는 있겠지만 명단 등 구체사항이 없다.

일본 국립공문서관 쓰쿠바분관에 보관된 ‘귀국 조선인에 대한 미불임금 채무 등에 관한 조사에 관해’라는 제목의 니가타노동기준국이 작성한 공문서. 오른쪽은 표지, 왼쪽은 이 중 사도광산 조선인 미불임금에 대한 부분이다. 1949년 2월 25일 1,140명에 대한 미지급 임금으로 23만1,059엔59전이 공탁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정혜경 연구위원 작성 ‘일본지역 탄광·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미쓰비시광업㈜ 사도광산을 중심으로’에 수록.

일본 국립공문서관 쓰쿠바분관에 보관된 ‘귀국 조선인에 대한 미불임금 채무 등에 관한 조사에 관해’라는 제목의 니가타노동기준국이 작성한 공문서. 오른쪽은 표지, 왼쪽은 이 중 사도광산 조선인 미불임금에 대한 부분이다. 1949년 2월 25일 1,140명에 대한 미지급 임금으로 23만1,059엔59전이 공탁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정혜경 연구위원 작성 ‘일본지역 탄광·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미쓰비시광업㈜ 사도광산을 중심으로’에 수록.


정 위원은 “메이지 유산은 ‘나가사키 재일조선인 모임’을 결성해 활동한 오카 마사하루 목사가 회원들과 1970~80년대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는 등 피해 상황을 알 수 있었다”며 “반면 사도광산은 연구한 일본 시민단체도 없고 피해자는 진폐증 등으로 대부분 사망하고 유족 조사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동북아역사재단에서 3년간 자료를 수집·연구하겠다고 밝혔지만, 일본 측이 2월 1일 유네스코 등재를 신청하면 2023년 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밖에 없다. 정 위원은 “시간이 부족하니 피해자와 유족 현황에 대해 행정안전부 등 모든 부처가 연계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빨리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가사키시 소재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의 신카이 도모히로 부이사장이 일제의 강제동원에 대한 전시 중 군함도(하시마섬)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평화자료관을 운영하는 ‘나가시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은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자료를 일찍부터 모아 연구하고 알려 왔다. 나가사키=최진주 특파원

나가사키시 소재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의 신카이 도모히로 부이사장이 일제의 강제동원에 대한 전시 중 군함도(하시마섬)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평화자료관을 운영하는 ‘나가시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은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자료를 일찍부터 모아 연구하고 알려 왔다. 나가사키=최진주 특파원


해외 광산전문가 등을 콘퍼런스에 초빙해 강제동원 사실을 알리거나, 피해국이 참고할 국제 사례를 조사하는 것은 필수다. 정 위원은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때 주변국 민중을 동원한 강제노동 현장 가운데 세계유산 등재 사례가 있다”며 “람멜스베르크 광산 박물관은 채광 및 광물 전시품뿐 아니라 전체 공간의 20%를 할애해 외국인 강제노동 사실을 비중 있게 전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반면 일본은 메이지 산업유산에 대해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알리라는 유네스코의 뜻에 따라 전시관을 만들었지만, 정작 군함도에서 조선인에게 가혹한 노동을 하도록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실정이다. 정 위원은 “독일 모범사례 등을 국제사회에 홍보하고, 한일 갈등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문제임을 절실하게 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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