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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조서 증거능력 제한… 법정 풍경 대변화 예고에 긴장하는 법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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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A씨와 B씨는 검찰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 총책으로 지목된 C씨는 혐의를 계속 부인하고 있다. 이럴 경우 검찰은 A씨와 B씨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C씨가 총책이 맞다"고 진술한 내용을 담은 '피의자 신문조서(피신조서)'를 법정에서 증거로 제시한 뒤, 이를 토대로 C씨 주장을 반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피고인이 부인한 피신조서는 증거로 인정받지 못해 법정 풍경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검찰은 피신조서를 중심으로 논리를 풀어가는 대신, A씨와 B씨를 C씨의 재판에 불러 신문하는 방법 등으로 공범 관계를 밝혀내야 한다.
②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D씨는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피신조서를 보고 조사 때와는 달라진 내용을 발견했다. 조서를 열람하고 내용이 맞다는 서명도 했지만, 장시간 검찰 조사를 받고 진을 뺀 뒤 열람한 탓인지 당시 인식하지 못한 허점이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는 D씨가 이런 점을 문제 삼아 피신조서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검찰은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피고인이 조서 내용을 부인하면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없기에, D씨는 법정 진술과 반대 신문 등을 통해 법원 판단을 받아야 된다.
①과 ②는 내년부터 바뀌는 법정 풍경을 검찰과 피고인 입장에서 풀어낸 사례다.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내년 1월 1일부터 기소된 사건에선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법정에서 검찰 피신조서가 증거로 사용되지 못한다. '조서 재판'이라 불릴 정도로 법정에서 영향력이 막강했던 피신조사의 증거 능력이 제한되면서, 검찰과 피고인은 물론 피해자와 재판부, 변호인 모두에게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형사소송법 제정 이래 수십 년간 증거로 인정됐던 검찰 피신조서의 증거 능력을 제한하게 된 배경에는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공소장과 피신조서를 중심으로 알게 모르게 검찰 시각에서 진행됐던 재판을 바로잡아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고 법정에서 실체를 가리자는 것이다. 국회도 이런 취지에 동의해 지난 9일 관련 부칙을 통과시켜 최종 기준을 확정했다.
큰 변화를 앞둔 법조계 곳곳에선 난감해하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법원은 기존에도 피고인이 부인하면 신문 등을 강화해 재판을 해왔다는 입장이지만, 재판 진행 방식은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공소장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의 세부 쟁점을 주로 검찰 피신조서를 통해 파악해왔는데, 피신조서 자체를 보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재경지법의 한 형사단독 판사는 "피신조서가 증거로 제출되지 않을 경우 신문이 상세해질 수밖에 없다"며 "재판이 효율적으로 진행되려면 운영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
변호사들은 재판 지연을 우려하고 있다. 법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판사들에게 여러 사건이 몰린 상황에서, 신문 대상이 많아지고 물어볼 내용도 많아지면 선고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판사 한 명이 매년 담당하는 사건은 464건에 달해, 우리와 사법시스템이 비슷한 독일과 일본의 각각 5배와 3배에 달한다. 내년부터는 재판까지 길어져 판사들의 업무 부담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서초동의 한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는 "검찰이 법정에서 사실상 다시 수사해야 하는 일이 생기고 재판부는 이를 검증해야 하기 때문에 재판이 길어질 것을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재판 지연으로 사건 의뢰인이 감당해야 할 변호사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검찰은 피의자 진술이 중요한 사건의 경우 범죄 대응능력이 약화할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뇌물 등의 부패범죄, 당사자 간 은밀하게 이뤄지는 범죄,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불법도박 등 공범이 가담하는 복잡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다수 공범이 있을 경우 피신조서가 인정되지 않을 때 한번에 기소해야 할지 분리해 대응해야 할지 고심할 것 같다"며 "공범이라도 조서 인정 여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서초동 법조타운에선 의뢰인 사건이 내년에 기소될 수 있도록 변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성폭력 사건을 주로 담당해온 한 변호사는 "올해 하반기부터 일부 변호사들은 표정 관리를 하고 있다"며 "수사기관에 참고인을 여럿 내세워 조사받게 하거나 피의자 조사 날짜를 미루는 방식으로 내년에 기소되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례는 피신조서를 대체할 수 있는 검찰의 영상녹화물(피의자 진술 내용 녹화)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피신조서를 부인하고 입을 닫는 피고인을 대신해 애꿎은 피해자가 여러 차례 법정에 불려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 등 2차 가해 우려가 있거나, 장애인 등 진술 자체를 힘들어하는 이들에겐 더욱 불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자세히 진술했더라도 피고인이 피신조서를 부인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면 피해자가 거듭 소환될 가능성이 높다"며 "진술에 어려움이 있는 피해자의 경우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는 일이 많아질까 걱정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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