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편줌마’ 선행의 돋보임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주말 새벽 한 편의점에 학생으로 보이는 이가 들어와 빵과 초코우유를 계산대에 놓으면서 계좌 이체는 안 되느냐고 묻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나온 중년 아줌마가 안 된다고 하자 학생은 좀 더 싼 빵으로 바꿔 가져온 뒤 카드를 내민다. 그러나 잔고부족이란 메시지가 뜬다. 다시 다른 걸 살피는 학생이 안쓰러워진 ‘편줌마’(편의점 알바 아줌마)가 돈은 나중에 가져다 달라며 자신의 카드로 대신 결제를 해 준다. 그런데 학생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다. 방역수칙까지 어겨가며 편의점 안에서 토스트를 먹은 뒤 인사도 없이 그냥 나가 버린다. 그럼에도 편줌마는 “큰돈 쓴 것도 아니고 배고픈 학생 토스트 사 준 거라 호구여도 괜찮다”는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편줌마는 “감사의 표현이 없었다고 마음의 상처를 입지도 않았다”며 “오히려 힘들지 않게 좋은 일 했다고 스스로 기분 좋아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 이달 초 전북 부안군청에선 한 젊은이가 ‘김달봉’씨의 심부름을 왔다며 1억2,000만 원을 이웃돕기성금으로 내고 갔다. 얼굴 없는 천사 김달봉씨는 지난 3년간 부안군청과 전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6억 원도 넘게 기부했다. 그런데 인천과 다른 구호 단체 몇 곳의 기부자 명단에도 김달봉씨가 있다고 한다. 동일인일 수도 있지만 이름이 알려지길 꺼리는 전국의 ‘기부 홍길동’들이 편의상 김달봉이란 공동 가명을 쓰며 생긴 현상일 수도 있다.
□ 23년간 대구에서 장애인 휠체어를 수리하고 기증해온 신동욱(68)씨 등 코오롱그룹의 ‘우정선행상’ 수상자들도 세상을 따뜻하게 해 준다. 54년째 형편이 어려운 부부들을 위해 무료 예식을 지원한 백낙삼(89) 신신예식장 대표 등 LG의인상 사연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었던 2021년에도 우리 주변 보이지 않는 곳에선 작은 선행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런 분들로 세상은 살 만한 곳이었고, 그러한 온기로 어려움도 이길 수 있었다. 돋보이고 싶어서 허위 경력과 거짓 이력서도 아랑곳하지 않은 이로 시끄러운 연말, 마땅히 돋보이는 일을 하고도 돋보이는 건 한사코 피해 더 돋보였던 모든 착한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정말 고맙습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