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이름' 많았던 대통령 임기 말 사면...'정치 사면' 논란은 늘 꼬리표처럼

입력
2022.01.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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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사면' 계기로 돌아온 대통령 사면권 논란
1980년대 이래 취임 직후·임기 말 사면 되풀이
정치인·기업인 사면에 늘 이목 집중돼
신중하던 미국서도 최근 '사면권 남용' 논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대 등 참석자들이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 사면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대 등 참석자들이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 사면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막바지에 진행한 '2022 신년 특별사면' 명단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시키자, 비판이 쏟아졌다. 시민단체들은 이를 '정치적 사면'이라 규정했다. 여권에서도 "역사적으로 잘못된 결정"(안민석 의원)이라는 말이 나왔고 국민의힘에서도 "선택적 사면으로 야권 분열을 노린 갈라치기"라는 논평이 나왔다.

반면 각종 여론조사는 대체로 문 대통령의 사면 조치에 긍정적이다. 데이터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달 27일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다. 응답자의 65.2%는 사면을 '잘했다'고 평가했고, 31.8%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오차범위는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데이터리서치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렇듯 이번 박 전 대통령 사면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의 사면은 늘 논란거리였다. 이런저런 절차가 있기는 하지만 사면권 자체가 사실상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임기 말에는 특히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한 사면이 많았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사면권이 대통령에게 부여된 미국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처럼 대통령 사면이 많지 않다.



한국 대통령 사면의 역사


역대 대통령 특별사면 건수자료=법무부


횟수 인원
노태우 7 3,268
김영삼 9 4만3,805
김대중 8 7만6,527
노무현 8 4만893
이명박 7 2만5,438
박근혜 3 1만7,328
문재인 5 2만2,114


특별사면이란 판결이 확정된 형을 선고받은 개인에 대해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면을 하는 것을 뜻한다.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행정부의 사법부 견제 수단'이고, 나쁘게 말하면 '정치적 판단으로 법의 판단을 꺾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사면법에 따라 형식상으로는 법무장관이 사면심사위원회를 거쳐 어느 정도 인정된 대상자를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사면 결정을 내리게 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의 필요에 의해 대상자가 선정돼 왔다.

법무부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역대 대통령은 건국 이후 박정희 때 25회, 전두환 때 18회 등 총 101회 특별사면을 진행했다. 대통령의 임기가 5년 단임으로 고정된 1988년 이후로는 김영삼 대통령이 9회에 걸쳐 사면을 진행해 가장 많았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8회, 이명박 대통령은 7회, 박근혜 대통령은 3회 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까지 5회에 걸쳐 특별사면을 진행했다.

1988년 이후 기준으로, 인원수로 보면 김대중 정부 때 가장 많은 7만6,527명에게 특별사면 혜택이 돌아갔고 김영삼·노무현 정부가 뒤를 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횟수에 비해 사면 대상자 수는 많지 않은데, 2009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1명만을 대상으로 한 특별사면처럼 사면의 규모가 크지 않은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는 상대적으로 횟수가 적은 대신 매 회마다 5,000여 명 안팎의 규모로 사면이 이뤄졌다.

또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모두 '취임 기념' 사면과 임기 말 사면(주로 '신년 사면')을 진행했다. 바로 이런 시점의 특징 때문에 대통령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사면을 진행한다는 해석이 있었다. 이를 염두에 둔 듯 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기념 사면이 없었다. 박 대통령의 경우 탄핵으로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임기 말 사면 역시 있을 여지 자체가 없었다.



임기 말 사면은 정치 사면?


6월 민중항쟁의 여파로 전두환 정권이 결행한 '시국사범'의 대대적 사면을 알리는 1987년 7월 10일자 한국일보 1면.

6월 민중항쟁의 여파로 전두환 정권이 결행한 '시국사범'의 대대적 사면을 알리는 1987년 7월 10일자 한국일보 1면.

역대 정부는 특별사면 때마다 '국민 통합' 혹은 '경제 활성화' 등을 명목으로 내세웠다. 특사 때마다 강력범죄를 제외하고 일반 형사범 중 '서민·생계형 사범'을 중심으로 사면했다고 밝혀 왔으며 실제 사면 대상의 대부분은 이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매번 사면 여부가 주목되는 이들은 주로 부패 사건에 연루된 기업인과 정치인들이었다.

특히 '레임덕'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되는 대통령의 임기 말 사면은 정치적 부담을 털고 가겠다는 함의가 짙다. 김영삼 대통령이 임기 말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혐의로 복역하던 전두환·노태우 두 전 대통령을 비롯해 당시 실세들을 대거 사면한 것이 대표 예시로 지목된다.

이를 전후해서도 임기 말 사면은 늘 정치적 고려가 뒤따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임기가 사실상 막바지로 치달은 전두환 대통령은 김대중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대표를 비롯해 '시국사범'을 대규모로 사면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2년 12월 밀입북 사건에 연루된 임수경(훗날 국회의원)씨와 문규현 신부를 특별사면했다. 동시에 5공 새마을 비리사건에 연루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 중앙본부장도 사면 대상에 포함시켰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말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 제공자 중 하나로 지목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과 김선홍 전 기아그룹 회장 등을 사면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현 국가정보원장),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임동원·신건 전 국가정보원장 등을 임기 말 사면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직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등 본인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와 '친박계'인 서청원 전 의원 등을 사면했다.



대통령 사면권 행사 '신중'하던 미국도 '셀프 사면' 논란까지


2020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추수감사절 칠면조를 사면하는 모습. 미국 대통령의 사면권도 한국처럼 뚜렷한 제한이 없는 상태라 최근 남용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0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추수감사절 칠면조를 사면하는 모습. 미국 대통령의 사면권도 한국처럼 뚜렷한 제한이 없는 상태라 최근 남용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AP 연합뉴스

특별사면이 온전히 대통령의 권한으로 남아있다는 점, 그리고 사면 시점과 대상 때문에 특별사면은 늘 논란거리로 잔존해 왔다. 정부 쪽에서는 "사면권을 남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면면을 보면 지켜지지 않았고 야당에서는 늘 '코드 사면' '보은 사면' 등의 키워드로 비판을 가했다.

미국의 경우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막판 백악관 보좌진이었던 스티브 배넌과 마이클 플린, 선거운동 본부장 폴 매너포트, 사위의 부친인 찰스 쿠슈너 등을 사면했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 스스로를 사면하겠다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면서 '셀프 사면' 논란마저 일었다.

이에 앞서 국회입법조사처는 2015년 펴낸 보고서에서 "미국은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자중하는 분위기지만 최근 행사 남용이 문제된 몇몇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면서 사례를 들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기 직전 마약 혐의로 복역하던 이복동생 로저 클린턴의 사면 기회를 줬고, 조지 워커 부시 전 대통령은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 스쿠터 리비를 사면해 격렬한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다만 규모로 보면 미국 대통령의 사면은 주법과 무관한 연방법 관련 사면만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의 사면처럼 대대적 규모로 진행할 수가 없다. 최근의 예를 보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두 번의 임기에 걸쳐 1,927건을 사면 또는 감형한 것이 예외일 뿐 모두 임기 중 사면 건수가 1,000건 이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사면 사례는 대부분 '마약과의 전쟁'에서 마약 사용으로 중형을 받은 마약사범에 집중돼 있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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