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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목소리 외면한 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

입력
2021.12.30 04:30
25면
경북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에서 방사성폐기물이 담긴 드럼이 지하 처분시설로 옮겨지기 전 방사성물질 누출 여부 검사를 받고 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경북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에서 방사성폐기물이 담긴 드럼이 지하 처분시설로 옮겨지기 전 방사성물질 누출 여부 검사를 받고 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경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도시다. 도시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문화재의 보물창고다. 이런 고도(古都)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경주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6기의 원전이 있다.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도 있어 전국의 핵폐기물이 이곳에서 보관, 처리되고 있다.

세계의 이름난 역사 고도에 원전, 방폐장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값싼 전력공급을 위해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치더라도 하필이면 왜 경주였을까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나라 원전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폐기물처리대책을 전혀 세우지 않고 추진한 데 있다. 건물을 지으면서 화장실을 짓지 않은 셈이다. 뒤늦게 처분장 확보에 나섰지만 극심한 난항을 겪었다. 급기야 2004년 정부는 중저준위와 고준위를 분리하기로 결정하였고, 공모결과 경주가 주민투표 89.2%의 찬성으로 확정되었다.

이때 경주는 고준위 관련시설을 경주에 짓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중저준위 방폐장을 유치하였고, 그 내용이 방폐장 특별법에 규정되어 있다. 2016년까지 고준위 방폐물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원전에서 발생한 고준위 폐기물은 원전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에 보관되고 있다. 정부정책이 표류하는 사이 장갑, 의류 같은 저준위 폐기물은 지하 130m의 처분장에 안전하게 저장되고 있는 반면 그보다 독성이 수십만 배나 강한 고준위 폐기물은 노천의 콘크리트통 속에 임시로 보관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마련한 관리기본계획은 사실 박근혜 정부 때 발표한 기본계획보다 훨씬 후퇴한 것이다. 이런 미온적인 정책을 내놓으려고 지난 4년을 허비했는지 허탈할 따름이다. 경주시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정부의 약속 불이행에 대한 사과조차 한마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29년간 임시건식저장 시설에 보관되어 온, 어쩌면 준영구적으로 임시보관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보상책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경북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에 방사성폐기물이 담긴 드럼이 쌓여 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경북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에 방사성폐기물이 담긴 드럼이 쌓여 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임시저장시설의 설계수명은 50년으로 20, 30년 후면 수명이 다한다. 그때까지 중간 또는 영구처분장이 건설될 가능성은 희박한데 그 이후의 대책은 무엇인가. 우리 시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의 장기화, 준영구화에 따르는 후속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더구나 정부는 최근 사용후핵연료 임시보관에 따른 '지역자원시설세 개정안'에 반대하며 법안상정을 보류시켰다. 관리기본계획에서는 합리적 보상을 권고하면서 실제로는 이를 저지한 것이다.

정부의 미온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는 원전소재 주민들의 저항을 불러와 향후 원전관련 정책수행에 큰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지역주민들의 절규에 귀기울이길 촉구한다.


주낙영 경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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