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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음 커지는 中 일대일로… 빚 못 갚으면 통제권 가져간다?

입력
2021.12.28 20: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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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中 우간다 공항 자금 통제권 행사 가능"
중국이 차관 대신 공항 인수할 수 있다는 설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29일(이하 현지시간), 우간다 민간항공청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거짓(fake)’이라고 박힌 사진 한 장을 게재했다. 여기에는 이 나라 유일한 국제공항인 ‘엔테베’ 국제공항 입구 모습이 담겼다. 눈에 띄는 부분은 ‘엔테베 국제공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현판 앞에 그려진 붉은 오성홍기(중국 국기)다. “중국이 차관을 갚지 못한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을 인수한다”는 설(設)과 함께 조작된 해당 이미지가 SNS를 떠돌자, 관계 기관이 나서 부인한 것이다. 온라인상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 우간다 현지 일간 데일리모니터는 “정부가 중국에서 빌린 대출금을 갚지 못해 중국 당국에 공항 통제권을 넘겨야 할 처지가 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중국이 신흥국과 저개발 국가의 교역ㆍ물류 등 사회간접자본(SOC)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정책에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수혜 국가들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중국에 자산 통제권을 넘길 우려에 곳곳에서 불만이 제기되면서다. 아프리카 우간다 역시 ‘부채 함정’이 코앞에 닥친 나라 중 한 곳이다. 우간다는 2015년 중국 수출입은행에서 2억 달러(약 2,377억 원)를 빌려, 엔테베 공항 활주로를 추가로 건설하고 수도 캄팔라와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에 투입했다. 확장 공사는 중국 국영 기업 ‘중국교통건설’이 진행하고 있다.

파열음은 우간다 정부가 올해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로 대출금을 갚지 못할 처지에 놓이면서 커졌다. 중국이 엔테베 공항을 가로채기로 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진 것이다. 중국과 우간다 정부 모두 해당 내용을 부인했지만, 되레 의혹이 제기돼 우간다 국민들의 불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 “현지 정부가 중국과 체결한 계약에는 중국 국영 금융기관이 엔테베 공항에 상당한 자금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지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우간다 민간항공청이 지난달 29일 트위터에 게재한 사진. 중국의 엔테베 공항 인수설이 '거짓'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우간다 민간항공청 트위터 캡처

우간다 민간항공청이 지난달 29일 트위터에 게재한 사진. 중국의 엔테베 공항 인수설이 '거짓'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우간다 민간항공청 트위터 캡처

실제 우간다 야당 정치인들이 중심이 된 의회 위원회는 양국의 대출 계약에 독소조항이 포함됐다고 주장한다. 엔테베 공항 운영사인 우간다 민간항공청 수익이 아프리카 ‘스탠더드은행그룹’ 캄팔라 지점의 중국 수출입은행 에스크로 계정(특정 조건을 충족할 때까지 결제 금액을 제3자에게 예치하는 방식)에 예치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대출을 상환하기 전까지 우간다 민간항공청 수익을 사용하려면 중국 당국의 승인이 필수라는 의미다. 게다가 스탠더드은행그룹의 지분 20%는 중국 최대 은행인 공상은행이 소유하고 있다. 결국 애초 계약부터 공항 운영 전반에 중국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구조였다는 얘기다. WSJ는 “당장 중국 국영은행이 공항 지분을 가져간다거나 운영에 영향을 미친다는 신호는 없지만, 외국 대출기관이 이 정도 지배력을 갖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우간다 정부가 공항 운영권을 되찾기 위해 올해 중국 측에 대출 조건 재협상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주장은 반발을 더욱 키웠다.

아직은 ‘우려’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실제 우간다가 공항 통제권을 뺏길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부채난에 허덕이는 일대일로 연관 국가들이 자국 핵심 사업권을 중국에 통째로 넘긴 사례도 이미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스리랑카는 중국 차관을 통해 남부 해안가에 대형 항구를 건설했지만 사업 부진으로 빚더미에 올랐고, 빌린 돈조차 제대로 갚지 못하면서 2017년 항구 운영권을 사실상 중국 기업에 넘겨야 했다.

이처럼 중국이 자본을 무기로 개발도상국 등에 정치ㆍ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은 일대일로 시작 때부터 제기됐다. 그러나 일부 국가에선 이런 ‘차이나 머니’에 대한 경각심이 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우간다 정치분석가 카롤리 세모게레는 “수년간 ‘중국 자본은 공짜 돈’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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