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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재판 지연, 법관 늘리는 게 다는 아니다

입력
2021.12.29 00:00
27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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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당사자나 변호사들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재판 지연 문제가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법원 민사 합의부 1심 미제분포지수가 올해 10월 말을 기준으로 역대 가장 나쁜 12.8을 기록했다고 한다. 미제분포지수는 법원 미제사건의 분포 현황을 나타내는 지수로, 오래된 장기 미제사건 비율이 높을수록 낮은 수치를 보이는데 10년 전인 2010년 12월 말 66.4였던 전국 법원 민사 합의부 1심 미제분포지수가 2018년 36.4, 2020년 23.3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는 급기야 10점대로 진입한 것이다. 특히 전국 최대 규모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미제분포지수가 '마이너스(-)'대로 추락해 법원도 이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일은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경향이 있기에 장기미제사건의 급증추세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최근 대법원은 내년 3월부터 민사소송 단독재판과 합의재판 사물관할 구분을 소가 2억에서 5년으로 높이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민사단독의 미제분포지수까지 나빠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미봉책일 뿐이라는 지적이 더 설득력 있다.

재판 지연에 대한 근본 대책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법관 증원이다. 사건의 난이도와 복잡성이 높아지면서 재판업무 부담은 점점 늘어나지만 법관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난 9월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민형사 본안 접수 건수는 137만6438건으로, 법관 1명이 연간 담당하는 사건은 464.07건에 달하는데 이는 독일의 약 5.17배, 프랑스의 약 2.36배, 일본의 3.05배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탄희 의원 등이 지난달 초 법관 정원을 1,000명 늘리는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도 판사 수가 법상 정원인 3214명에 크게 못 미치는 2800~2900명 수준인데 판사정원법상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충분한 역량을 갖춘 법관을 대규모로 선발할 수 있을지, 다소간의 증원으로 사건 적체가 해소될지 의문이다. 법관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면서도 신속·적정한 민사재판이 가능하려면 민사재판 시스템의 일대개혁이 필요하다. 최근 법원행정처가 변론기일 전 사실 확인 및 증거수집절차를 당사자들 주도하에 실시하도록 하는 '디스커버리제도' 도입을 본격 추진키로 한 것은 고무적이다. 법관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업무는 사실관계 다툼을 가리기 위한 각종 증거조사와 판결문 작성인데 법적 또는 사실적 근거가 없는 소송을 변론기일 전에 기각시킬 수 있는 소송기각신청제도를 도입하고 이후에 이루어지는 증거조사 과정은 당사자들이 주도하도록 하면 법관의 업무 부담은 줄어들고, 화해, 조정이 활성화되어 신속하면서도 적정한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근거 없는 제소, 부당한 응소, 재판 지연을 야기하는 당사자에게 실제 소송비용을 부담시키는 소송비용 부담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 우리 민사소송제도는 당사자가 공격·방어를 주도하고 법원은 이를 감독하는 당사자주의를 근간으로 하지만 실제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 신속하면서도 적정한 민사재판을 위해서는 법관의 증원과 더불어 당사자주의를 강화하는 시스템 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김주영 변호사·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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