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가수 이랑이 치른 특별한 장례식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자전거 짐칸엔 저녁 찬거리 몇이 있었고, 호주머니엔 아들 내외의 고장 난 선풍기를 고치려 가지고 다니던 낡은 부품이 있었다. 한산도의 푸른 바다가 그리울 8월의 한여름, 병상에서 2주간의 사투를 끝내고 한 마리 새처럼 훌쩍 날아올랐다. 여든 두 해의 긴 여정이었다. 향기 성할 봉(䭰), 윤택할 윤(潤). 그 이름만큼 아름다운 일생이었다. 당신이 태어난 그 섬의 바람처럼,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
6년 전 아버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내가 썼던 조사의 일부다. 조문객들이 볼 수 있게, 빈소 입구에 글을 크게 확대해 두었다. 아버지 삶의 약사(略史)가 조문객들의 마음에 가 닿아, 작은 파장이라도 일으키길 바랐다. 그 파장으로 인해 아버지의 장례가 일상성에 묻히지 않고, 어떤 특별함을 얻길 원했다.
장례식은 삶의 마지막 사건이다. 이야기가 천차만별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 장례식장의 표정은 전국 어디를 가든 똑같다. 늘어선 조화의 수만 가세(家勢)에 따라 다를 뿐이다. 국화로 덮인 제단은 너무 무겁고, 그 속에 있는 영정 사진은 한결같이 엄숙하다. 조문객을 맞는 상차림 역시 표준화된 지 오래다. 요즘엔 조의금도 온라인으로 받는다. 삶의 마지막 서사치고는 너무 단조롭다.
최근 여성 싱어송라이터 이랑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른 언니의 장례식이 화제가 됐다. 여자는 상주가 될 수 없다는 성차별적 전통에 반기를 들고, 자신이 상주를 맡았다. 그리고 언니가 반려견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썼다. 생전에 '예쁘고 반짝이는 것'을 좋아했던 언니를 위해 제단에 귀걸이와 금색 술이 달린 무대 의상을 올렸다. 언니가 멤버로 있던 댄스 팀이 빈소에서 군무도 췄다. 이랑은 사회의 통념에 균열을 냈다. 평소 음악에서도 지적 문제의식을 보여주던 그답다 생각했다. 고인의 마지막 이야기를 관행의 무덤 안에 넣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전통주의자는 "그래도 상주는 남자"라며 눈을 흘겼을 테고, 어떤 엄숙주의자는 반려견이 등장한 영정 사진과 장례식장에서 춤까지 추는 유별남에 혀를 끌끌 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랑이 치른 이 특별하고도 주체적인 장례식이 좋았다. 애도의 방식이 전통을 답습하거나 남들과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유족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이야기를 독자적으로 쓸 권리가 있다. 이별에도 다양한 표정이 있어야 한다.
몇 해 전 아프리카 가나의 장례식에서 운구하던 사람들이 흥겹게 춤을 추는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삶의 행복과 흥겨움을 고인과 마지막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춤춘다고 왜 슬픔이 없으랴. 댄스 팀이 이랑 언니의 빈소에서 춤을 췄다고 경건함이 훼손되지 않는다. 경건함은 전시된 태도가 아니라, 죽음을 대하는 극진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전시하지 않았다고 사별의 고통과 슬픔이 없는 것이 되겠는가?
생전에 자신의 장례식을 어떻게 치를지 생각해, 미리 유언으로 남기는 것도 좋겠다. 유행하는 작은 결혼식처럼, 작은 장례식도 좋을 것이다. 삶의 처음은 내가 정할 수 없으나, 마지막은 정할 수 있다. 허례의 거품을 빼고, 긴 생애의 마침표를 나답게 찍는다면 좋지 않겠는가.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