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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리스크, '영부인 없는 청와대'로 돌파?... 전문가들 '갸웃'

입력
2021.12.28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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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국내외 주요 행사서 '대통령 동반자'
제2부속실 폐지해도 보좌 업무는 남아있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26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허위 이력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후 당사를 떠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26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허위 이력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후 당사를 떠나고 있다. 뉴스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영부인'(令夫人)을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라 정의한다. 최근 들어선 '대통령의 여성 배우자'를 영부인이라 부른다. 대선후보 가족 검증이 본격화하면서 '바람직한 대통령 영부인'에 대한 갑론을박이 뜨겁다. 여성을 남편의 삶에 종속된 객체로 보던 시절엔 영부인의 역할을 '그림자 내조'로 봤다. 성평등 시대의 영부인은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 혹은 '러닝메이트'로 위상이 올라갔다.

'김건희 리스크'를 만난 국민의힘은 영부인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지우려 한다. 윤석열 대선후보는 "대선에서 승리하면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을 없애겠다"고 공언했고, 김씨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했다. '영부인이 있긴 있지만 없는 청와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27일 정치 전문가와 전·현직 정치인 11명에게 그 실현 가능성을 물어봤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대통령 배우자'

대통령과 달리 영부인은 선출직이 아니다. 대통령 배우자에 관한 법률도 따로 없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서 경호 대상에 배우자가 포함되지만, 의무, 책임, 보수 등에 관한 규정은 전혀 없다.

현실 정치에서 영부인은 사실상 공직자 역할을 한다. 국내외 주요 행사에 대통령의 파트너로 참석하고, 대통령을 대신해 대외 활동도 한다. 해외 순방도 함께 다닌다.

영부인 활동엔 세금이 쓰인다. 청와대 제2부속실 비서관(1급)이 보좌를 전담한다. 영부인이 '선출되지 않은 안방 권력'으로 불리는 이유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2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본시장 공정회복 정책공약을 발표하고 있다.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2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본시장 공정회복 정책공약을 발표하고 있다.뉴스1


영부인의 비리, 정권 도덕성과 직결

여론이 영부인 검증에 민감한 건 역대 영부인마다 '권력형 비리 스캔들'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순자 여사는 200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의혹을 받아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옥숙 여사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권양숙 여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윤옥 여사도 내곡동 사저 특혜 논란에 휘말렸다.

영부인들은 왜 이런 수모를 당했을까. 한국식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은 막강한 힘에 비례하는 감시를 받지만, 영부인은 감시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영부인과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로비는 적발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영부인은 대통령의 약한 고리인 셈"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인사는 "영부인이 대통령 업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이다 보니, 대통령과 통하는 청탁 통로로 영부인이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역대 주요 대통령 영부인 유형별 분류. 한국일보

역대 주요 대통령 영부인 유형별 분류. 한국일보


'직장인' 질 바이든도 영부인 역할은 수행 중

외국에도 대통령 배우자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배우자 질 바이든이 '내조형 퍼스트레이디'를 거부하고 '일하는 배우자'의 길을 택한 건 미국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그는 노던 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 교수다.

질 바이든은 영부인 역할도 병행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외교 무대에서 '배우자 외교'를 담당한다. 최근엔 미국 전역을 돌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설득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영부인은 대통령의 업무를 상호 보완하기 때문에 역할을 마냥 축소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대대로 영부인이 수행한 업무를 단번에 없앨 순 없다는 것이다. 비혼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외교 행사 때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영부인 영접 등을 맡겼다.

지난 10월 31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이탈리아에서 김정숙 여사가 질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 부인과 마리아 세레넬라 카펠로(가운데) 이탈리아 총리 부인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뉴스1

지난 10월 31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이탈리아에서 김정숙 여사가 질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 부인과 마리아 세레넬라 카펠로(가운데) 이탈리아 총리 부인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뉴스1


"영부인 있는데 제2부속실 폐지는 어려워"

윤 후보 측은 최근 김건희씨의 정치적 역할을 최소화하고, 예산 지원도 줄이는 방향을 논의하면서 '질 바이든 모델'을 검토했다고 한다. 윤 후보가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 배우자의 법 외적인 지위를 관행화시키는 건 맞지 않는다"며 사실상 '영부인 없는 청와대'를 띄운 배경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대통령의 배우자가 청와대 밖에 있어도 안전을 위해 경호 인력 상주 배치는 불가피하다"면서 "부부가 5년간 생이별을 하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국민의힘 한 여성 의원도 "질 바이든은 일도 열심히 하고, 영부인 역할도 열심히 하는 모델"이라며 "영부인을 안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전문가들도 청와대 제2부속실 폐지 공약은 '이름만 폐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봤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제2부속실을 없애더라도 영부인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과 경호는 있어야 한다"며 "사실상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제2부속실이라는 부서가 사라질 뿐, 영부인 보좌라는 고유 업무는 제1부속실에 편입되거나 새로운 부서가 맡게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영부인 역할과 기능을 아예 폐지하면 오히려 '비선 정치'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공식 직함을 줬다면 '비선 실세'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영부인은 '문고리 권력'도 아닌 '안방 권력'인데 공적 보좌를 받지 않는 게 오히려 비선 논란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지현 기자
박재연 기자
손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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