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소시지에서 발견된 맹독… '젊음의 묘약' 보톡스가 되다

입력
2021.12.28 07:40
'보툴리눔' 1g에 150만 명 살상 가능한 맹독
사시 환자 치료 목적 FDA 승인 후
치료·피부미용 등 사용…미래 먹거리로 부상

게티이미지뱅크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했다. 나이 들수록 주름은 깊어지고 살은 처지며 피부는 탄력을 잃어 시간의 흐름을 여실히 드러낸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환갑을 맞는 미국의 록커 존 본 조비는 “내 아이들을 걸고 보톡스나 필러 같은 시술을 일절 받지 않았다”며 “(시술을 받았다면) 그건 내가 아니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일명 ‘보톡스’로 불리는 바이오의약품이 우리 일상 속으로 파고든지 오래다. 뼈를 깎는 수술도 아니고, 간단히 주사로 피부에 보톡스를 주입하는 시술만으로 주름을 펴 젊고 예뻐 보이려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안티에이징’의 첨병이라 부를 만하다.

1g으로 150만 명 살상 가능한 맹독

사실 ‘보톡스’(Botox)는 다국적제약사인 엘러간의 상표 이름이다. 일본의 소니가 발매한 ‘워크맨’이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의 대명사가 된 것과 마찬가지다.

보톡스는 ‘보툴리눔 독소(Botulinum Toxin)'를 주성분으로 하는 의약품이다. 보툴리눔은 순대나 검은 소시지를 의미하는 라틴어 ‘보툴루스(Botulus)'에서 유래한 단어로, 상한 소시지나 육류를 섭취한 후 생긴 식중독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보툴리눔 독소는 소시지 식중독균인 것이다.

연구 결과, 이 독소는 운동신경과 자율신경계를 마비시키고 자극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진 맹독으로 드러났다. 1g이 공중에 살포되면 150만 명을 살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군사 전문가들이 이 맹독을 세균전에 사용할 ‘대량 살상무기’로 개발하려고 시도했지만 다행히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의료계의 관심을 받아 연구와 실험 끝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1979년 사시 환자 치료를 대상으로만 한정해 승인한 이후 치료 목적으로 점차 범위가 늘어나게 된다. 보톡스를 주사해 일시적으로 근육을 마비시키는 효과를 이용, 눈꺼풀 경련이나 근육경직, 손발이 떨리고 뻣뻣해지는 증세가 대표적인 파킨슨 병 등의 치료에 사용됐다.

사시 치료에서 시작해 주름 제거까지

보툴리눔 독소는 1946년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의 에드워드 샨츠 박사가 결정 분리에 성공해 체계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주로 치료 목적으로 사용됐다. 주름 제거에 사용될 수 있게 된 건 1980년대 캐나다인 안과의사(Jean Carruthers) 덕분이다. 그는 눈 경련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보툴리눔 독소를 눈 주위와 이마에 주사했는데, 눈 주변 주름이 없어져 눈이 잘 떠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피부과 의사였던 그의 남편은 미용 목적으로 연구 및 임상실험을 지속했다. 이후 1991년 다국적제약사인 앨러간이 ‘보톡스’라는 제품을 탄생시켰다.

보툴리눔 독소는 뇌로부터 특정 근육으로 전달되는 신경자극을 일정 기간 정지시킨다. 신체에 유입돼 신경세포 내로 들어가면 근육수축 작용을 조절하는 아세틸콜린의 분비 작용을 방해해서 신경자극을 받지 못한 근육이 마비되는 셈이다. 인체에 유입된 보툴리눔 독소는 6~36시간 지나 효과를 보이기 시작하고, 1~2주 지나면 최고 효과가 나타난다. 근육이 이완된 상태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까지 지속된다.

의학계에선 이런 효능을 이용해 사시나 눈꺼풀 경련, 사각턱과 이갈이 교정, 다한증, 소아 뇌성마비, 뇌졸중 후 근육강직, 식도 근육 경련, 편두통, 전립선 비대증, 요실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

2019년 글로벌 시장 규모 약 6조원

의학 발전에 힘입어 보툴리눔 독소는 주름 제거뿐 아니라 안면윤곽 성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보툴리눔 독소는 치료에 약 55%가 쓰이고 있고, 나머지는 피부미용에 쓰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ISAPS)에 따르면 2019년 미용ㆍ성형 시술이 전 세계적으로 2,498만2,304건 이뤄졌고, 이 중 보툴리눔 독소를 이용한 시술이 627만1,488건이었다. 전 세계 보툴리눔 독소 시장은 2019년 기준으로 50억 달러(약 5조9,300억 원)를 넘어섰고, 연 평균 13%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시장 규모도 약 1,400억 원(2019년 기준)으로 추정되고, 2023년에는 2,000억 원을 뛰어넘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과거 여성 중심이던 안티에이징에 남성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영화배우 가수 등 연예인 중심에서 최근 사업가나 전문직 등 외모 경쟁력을 갖추려는 일반인층까지 확대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툴리눔 독소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소수 회사가 과점하고 있다. 보툴리눔 독소 의약품의 핵심원천기술을 가진 엘러간, 솔스티스 뉴로사이언스, 입센, 멀츠, 란저우 생물제품연구소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선 휴젤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선두에 있고, 메디톡스, 대웅제약, 휴온스 등이 경쟁하고 있다. 휴젤 제품을 판매해왔던 종근당도 최근 직접 개발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충북 청주시 오송생명과학단지에 보툴리눔 독소 전용 생산시설인 ‘오송공장’ 준공식을 개최하며 경쟁에 가세했다.

인구의 고령화, 소득 증가와 더불어 급증한 안티에이징 수요가 바이오헬스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지원하고 있는 정부 정책 등과 맞물리면서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대웅제약과 메디톡스 간 소송전이나, 신규 시장 진입을 선언하는 업체들이 늘어나는 것도 안티에이징 시장의 성장 잠재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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