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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인종차별 철폐 주역...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 선종

입력
2021.12.26 16:36
수정
2021.12.26 16:4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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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즈먼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데즈먼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 철폐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데즈먼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가 선종했다. 향년 90세.

남아공 대통령실이 26일(현지시간) 투투 대주교의 별세를 발표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투투 대주교는 1931년 10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인근 빈민촌에서 태어났다. 1950년 고등학교를 줄업했고 이후 대학 과정을 수료했다.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남아공에서 당시 몇 명 되지 않은 고등교육을 받은 흑인이었다. 이후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신학대학에 다시 입학해 신부가 되는 길을 걸었다. 1961년 성공회 교구 사제가 된 투투 대주교는 이후 런던 킹스칼리지런던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한 후 1970년 레소토에서 대학 강사가 됐다.

투투 대주교는 1975년에는 44세 나이로 요하네스버그 대성당의 주임 사제에 올랐다. 당시까지만 해도 남아공 흑인으로는 가장 높은 성직에 임명된 것이다. 이후 투투 대주교는 남아프리카 교회협의회 책임자로 일하는 등 명성을 떨쳤고, 인종차별 철폐 운동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남아공 백인 정권은 투투 대주교를 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올렸다. 1979년에는 투투 대주교의 여권을 압수했으며 남아공 교회협의회를 표적조사하며 투투 대주교 압박을 펼쳤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위한 이 모든 노력은 1984년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결실을 맺었다. 노벨위원회는 투투 대주교에게 노벨평화상 수여를 결정하면서 “인간의 존엄과 우애,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남아프리카의 모든 개인과 단체에게 보내는 세계의 격려”라고 밝혔다. 이후 투투 대주교는 1986년 케이프타운 대주교로 선출됐다. 이후 1996년 은퇴했고 전립선암 등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로이터통신은 투투 대주교의 마지막 공개 행사는 지난 2019년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한 자선재단 행사에서 해리 영국 왕손과 메건 마클 왕손빈 가족을 만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투투 대주교의 선종으로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큰 획을 새긴 인사들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평가다. 지난달 11일에는 프레데리크 빌럼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이 악성 중피종 투병 끝에 숨졌다. 남아공 흑인 인권투쟁의 상징 격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도 앞서 지난 2013년 서거한 바 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투투 대주교의 선종으로 우리에게 해방된 남아공을 물려준 훌륭한 세대와의 작별의 새 장이 다가왔다”고 애도했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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