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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어선 급습하니, 대게 '비밀 어창'까지... "이러니 씨가 마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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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칠흑 같은 새벽 시간, 경북 포항의 한 포구로 어선 한 척이 엔진 소리와 조명을 낮추며 들어왔다. 부두에 밧줄을 묶어 배를 고정시킨 선장 H씨는 선원들과 한마디 말도 없이 손짓으로만 플라스틱 상자를 나르기 시작했다.
항구 근처에서 이들의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던 경북 포항해양경찰서 형사들은 어선을 급습했다. 해경은 H씨 등이 ‘불법으로 대게를 잡아 시중에 유통시킨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일간 잠복한 끝에 이날 일당과 마주했다. 예상대로 어선에는 조업이 금지된 구역에서 잡은 대게가 가득했다. 갑판 아래에는 몰래 잡은 게만 따로 보관하는 수족관까지 설치돼 있었다.
포항해경 관계자는 “불법 대게잡이 어선을 많이 적발했지만 해경 눈을 따돌리기 위해 비밀 어창을 갖춘 배는 처음”이라며 “범행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동해 특산물인 대게 자원이 급감하는데도 씨를 말리는 불법 조업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환경 오염과 지구 온난화에 따른 수온 상승으로 대게 서식처마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일부 어민들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탈피가 끝나지 않은 어린 대게와 수십만 개의 알을 품은 암컷 대게를 마구 잡아들이고 있다.
27일 대게잡이 배가 가장 많이 등록된 경북 포항 구룡포수협에 따르면, 대게 금어기가 끝나 본격 조업에 들어가는 지난달부터 이달 23일까지 대게 위판량은 17만1,853마리로, 지난해 같은 기간 26만7,885마리의 3분의 2 수준에 그쳤다.
구룡포수협 관계자는 “예년보다 기상 여건이 안 좋아 조업일수가 줄어든 점을 감안해도 눈에 띄게 줄었다”며 “유가와 인건비는 뛰는데 어획량은 급감해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지난달과 이달 23일까지 구룡포수협에 위판된 대게 가격은 1마리에 1만5,61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473원보다 1.5배 뛰었다. 실제로 대게 산지인 구룡포읍 일대에선 몸통과 다리에 살이 꽉 찬 대게를 작년 겨울 3만 원에 맛볼 수 있었지만, 올해는 5만 원을 주고도 구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단맛이 떨어져 외면받던 붉은대게(홍게) 어획량도 급감하고 있다. 경북도에 따르면 동해안 홍게 어획량은 2017년 1만6,830톤에서 2018년 1만2,077톤, 2019년 1만572톤으로 줄어들다가, 지난해 1만650톤으로 조금 늘어나는 듯했지만 올해 9,726톤으로 다시 감소 추세다.
대게 자원 급감은 수온 상승과 환경오염, 바다 사막화로 인한 서식지 감소와 무관하지 않지만, 무분별한 남획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대게 자원 보호를 위해 몸길이 9㎝ 이하 어린 대게와 수십만 개의 알을 품은 암컷은 연중 포획이 금지되지만, 해경과 자치단체의 강력한 단속에도 불법 조업은 매년 활개를 치고 있다. 특히 산란철인 6월부터 10월 말까지는 대게잡이가 금지돼 있는데도, 무분별한 남획은 계속되고 있다.
경북 울진해양경찰서가 이달 10일과 11일 이틀간 예고 없이 어선 77척에 올라 검문검색을 벌인 결과 불법으로 대게를 잡은 5척의 어선을 적발했다. 단속에 걸린 어선들은 어업 면허가 없는데도 200마리 가까이 대게를 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포획이 금지된 구역에서 조업하거나 암컷과 어린 대게를 싹쓸이한 선박도 적발됐다.
박성환 경북도 해양수산과장은 “대게는 태어난 지 8년이 지나야 먹을 만한 크기가 될 만큼 성어로 성장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한 번 고갈되면 복원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민이나 소비자 모두 불법으로 대게를 잡거나 사먹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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