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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선물 뭐 받고 싶어?" "엄마가 울지 않는 거요" 엄마 눈이 벌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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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느덧 12월. 코로나 전담 병동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그날 난 평소처럼 입원 환자들의 상태를 묻고 필요한 오더를 내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코로나 병동은 일반 병동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많다. 우선 코로나 환자들은 외부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에 입원할 때 필요한 물건들을 본인이 직접 갖고 와야 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감염이 확진돼 입원할 경우, 미처 챙기지 못해 빈손으로 오는 환자가 종종 있다. 특히 코로나 병동 특성상, 식수는 병원에서 제공하기 어려워 따로 갖고 와야 하지만 생수통 사들고 입원하는 환자는 거의 없다. 따라서 대부분 환자들은 생수를 비롯해 꼭 필요한 생필품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인터넷 주문 물품이 도착하면 병원 직원들이 코로나 병동으로 옮긴다. 간호사들은 수령환자의 이름에 따라 물품을 재분류한 다음, 레벨D 방호복을 입고 하나하나 환자들에게 나눠 준다. 이런 일은 매일매일, 어떤 때에는 하루 두 차례 이어지기도 한다. 처음엔 '의료진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젠 아주 익숙한 작업이 되어 버렸다.
그날도 어김없이 환자들이 주문한 택배 물품들이 병동에 도착했다. 물품 분류와 전달은 신참 간호사가 맡았다. 환자별로 가지런히 분류작업을 하던 그 간호사는 한 택배 물품 앞에서 일을 멈추고 선배 간호사를 불렀다. 물건을 받는 사람은 6살 꼬마 코로나 환자였고, 물건을 주문한 사람은 역시 함께 입원해 있는 그 아이의 엄마였다. 아들과 엄마가 코로나에 동반 감염된 경우로, 아이의 열이 잘 떨어지지 않아 엄마까지 같은 병동, 같은 호실에 나란히 입원하게 됐다.
아이 앞으로 도착한 택배 물건은 다른 환자들이 주문한 물건과는 확실히 달랐다. 생수도 아니었고 비누, 치약, 칫솔과 같은 생필품도 아니었다. 불투명한 회색 비닐에 담겨 있어 내용물을 알 수는 없었지만, 감촉만으로도 환자들에게 일반적으로 배달되는 택배물건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장난감 같았다.
환자 앞으로 온 택배 물건은 바로 전달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담당 간호사는 뭔가 특별한 물건 같다는 직감이 들어 선배 간호사에게 물었고, 결국 아이 엄마한테 조용히 따로 물어본 후 전달하기로 하였다. 바로 며칠 후가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이다. 만약 엄마가 병원에서 성탄을 맞게 된 아들을 위해 몰래 마련한 산타의 선물이라면, 택배 봉투째로 간호사가 전달해선 안 되지 않나. 신참 간호사의 빛나는 센스였다.
그때 내 머릿속엔 3, 4년 전 병원 지하 편의점에서 만났던 한 아이 환자와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털모자를 푹 눌러쓰고 환자복을 입은 여자아이는 과자를 고르고 있었고, 아이 뒤엔 엄마가 서 있었다. 매대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아이는 아무 과자도 고르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엄마는 아이에게 물었다.
“왜? 먹고 싶은 과자가 없어?”
“산타 할아버지가 병원까지 못 오시잖아. 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선물을 못 받을 거예요."
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니야, 산타 할아버지가 꼭 선물을 주실 거야. 병원에도 오실 수 있어.”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정말이야. 산타 할아버지는 선물 주러 꼭 오신다니까.”
그제서야 아이의 얼굴엔 미소가 돌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이에게 물었다.
“올해 크리스마스엔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데?”
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울지 않는 것.”
엄마의 눈은 벌겋게 변했고 고개를 돌려 울음을 참았다. 그리곤 다시 돌아서서 아이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응, 엄마 이제 안 울어.”
그렇다. 산타는 이렇게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을 나눠 줬다. 어린 시절 그 선물은 신나는 장난감이기도 했고, 다른 갖고 싶었던 물건이기도 했다. 그리고 때론 ‘희망’이나 ‘의지’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이기도 했다.
코로나와 함께한 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정말로 산타와 산타의 선물이 절실함을 느낀다. 가장 나약하고, 가장 절실하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빛나는 그런 선물 말이다. 코로나 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 일반 병동 환자들, 그리고 함께 힘들어하는 많은 환자의 가족들, 진정 따뜻한 손길과 말 한마디가 간절한 이들에게 고통을 나누는 지혜와 온정이 산타의 선물처럼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내년 크리스마스엔 꼭 ‘코로나 종식’이라는 선물이 도착해 있기를 기대한다.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계 종사자라면 누구든 원고를 보내주세요.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페이지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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