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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수표·위조지폐 같은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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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현대사에서 가장 큰 금융위기의 시작은 1929년 10월 하순 미국 뉴욕 월가의 붕괴였다. 1930년대를 덮친 대공황을 예고한 사건으로 평가하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의 진정한 바닥은 3년 뒤인 1932년 7월에 나타났다. 상당 기간 사람들은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말처럼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 대공황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 1929년 송년호에서 뉴욕타임스는 한 해를 뒤돌아보며 최대 뉴스로 리처드 버드 제독의 남극 대륙 비행을 꼽았다. 1930년 신년호에선 정상적 성장이 예상되는 한 해를 예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전문기관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전년에 증시는 상승세로 끝났고 신년에도 강세가 예상된다고들 낙관했다. 내로라하는 우수한 두뇌들도 당시 벌어진 금융시장의 파장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 월가 붕괴가 시작되기 5일 전에 공개된 하버드대 경제학회의 판단은 의심의 여지마저 없앴다. 경기후퇴가 온다고 해도 정부 당국이 돈을 풀어 방어할 것이란 믿음의 보험을 시장에 팔았다. 비관을 모르던 사람들이 위기를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은 이후 1년 내내 금융시장이 회복되지 못하고 은행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였다. 대비책을 강구하기에는 늦은 때였다. 주목할 사실은 그들의 손자 손녀들이 움직이는 지금 세상이라고 더 나아졌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 대공황기에 세워진 워싱턴 국립문서보관소 입구를 지키고 선 석상 하나에는 ‘옛 것을 익혀라(Study the past)’는 경구가 새겨져 있다. 공자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영어식 표현이다. ‘지난 과거는 서두에 불과하다(What is past is prologue)’는 셰익스피어 ‘템페스트’에 나온 문구를 음각한 석상도 있다. 지나온 과거를 고찰하고 미래에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문일 것이다. 며칠 남지 않은 한 해를 돌아보며 새겨볼 말이다. 그런데 시선을 안으로 돌려 보면, 부도수표 위조지폐 같은 당국자, 정치인들이 쏟아낸 이 말 저 말을 떠올릴수록 궁금해진다.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킨다’는 말씀은 실현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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