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좌파 MZ, 한국 능력주의 MZ

입력
2021.12.23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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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가브리엘 보리치(오른쪽) 칠레 대통령 당선인이 20일(현지시간) 수도 산티아고에서 지지자의 포옹을 받고 있다. 그는 내년 3월 36세의 가장 어린 국가 수반으로 4년 임기를 시작한다. 산티아고 AP=연합뉴스.

가브리엘 보리치(오른쪽) 칠레 대통령 당선인이 20일(현지시간) 수도 산티아고에서 지지자의 포옹을 받고 있다. 그는 내년 3월 36세의 가장 어린 국가 수반으로 4년 임기를 시작한다. 산티아고 AP=연합뉴스.

35세 좌파 MZ, 가브리엘 보리치의 칠레 대통령 당선에는 2019년 ‘30페소(약 50원) 시위’ 영향이 컸다. 지하철 요금 30페소 인상이 100만 시위대를 불러냈고 서민만 부담을 떠안는다는 분노를 확산시켰다. 칠레는 상위 1%가 부의 49.5%를 소유(세계불평등연구소 2021년 기준)할 만큼 불평등이 심각한데 지하철 요금은 한국보다 비싸고 국공립대 등록금은 미국 주립대 수준이다. 보리치는 최저임금 인상, 국영 리튬 회사 설립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제 칠레가 신자유주의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 불평등 문제가 본격 표출된 것은 2011년 미국의 월가 점령 시위일 것이다. 상위 1%와 99% 간 불평등이 구호로 명시됐다. 2018년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도 같은 맥락에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부유세는 철폐하고 유류세를 거듭 인상하자 서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파리 시내에 사는 부유층과 달리 출퇴근과 생계를 위해 차를 몰아야 하는 외곽 거주자·서민들이 시위를 주도했다. 퇴진 요구에 직면한 마크롱은 유류세 인상을 철회했다.

□ 현실에 대한 불만은 종종 우파 포퓰리스트에게 집권 기회를 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세계화와 불평등에 대한 반감을 이민자와 소수자, 엘리트 정치인에게 돌려 2016년 승리했다. 집권 후엔 최고소득세 감세 등 부유층을 위한 정책을 폈다. 2019년 영국 총리에 오른 보리스 존슨도 브렉시트 바람을 탄 포퓰리스트 정치인이다. ‘브라질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2018년 경제 성장을 외치며 집권한 후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했다.

□ 우리나라도 남미만큼은 아니지만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상위 10%가 부의 58.5%, 소득의 46.5%를 차지하고, 정규직·비정규직 간,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며, 청년층이 체감하는 대입·취업 경쟁은 살인적이다. 이 환경에서 부상한 MZ 정치인은 능력주의와 반페미니즘을 내세운 포퓰리스트다. 이에 공감하는 MZ 세대, 보수 혁신으로 착각하는 기성 세대가 적지 않으니, 보리치 같은 정치인을 보기는 당분간 어렵겠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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