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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숟가락

입력
2021.12.24 04:30
25면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 스틸컷.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이언픽쳐스 제공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 스틸컷.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이언픽쳐스 제공

얼마 전, 2001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드라마로 다시 만들 제작 계획이 무산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종교적 가치관이나 사회적 통념 등에서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 주인공이 맞춤법 관련해 나눈 재미있는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새롭게 다시 볼 수 없다니 조금은 아쉽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은 국어 교사를 준비하는 국문과 학생이다. 여자 주인공은 식탁에 수저를 놓으면서, '숟가락'은 'ㄷ' 받침인데, '젓가락'은 왜 'ㅅ' 받침이냐고 묻는다. 젓가락은 'ㅅ' 모양으로 놓을 수 있으니 'ㅅ' 받침이고, 숟가락은 밥을 퍼서 먹을 수 있는 모양으로 'ㄷ'과 닮았다 하여 'ㄷ' 받침으로 적는다고 남자 주인공은 답한다. 현문우답(賢問愚答)이 아닐 수 없다.

'숟가락'은 단어 '술'과 '가락'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합성어인데, 한글맞춤법 제29항의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적에 ㄹ 소리가 ㄷ 소리로 나는 것은 ㄷ으로 적는다'와 같이 두 단어가 결합하여 앞말의 받침이 변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순우리말인 '술'이란 단어는 낯선 듯하지만, '밥 따위의 음식물을 숟가락으로 떠 그 분량을 세는 단위'란 의미로, "밥 한술 더 뜨고 가"와 같이 사용하는 예가 있다. '술'에 '가늘고 길게 토막이 난 물건의 낱개'를 의미하는 '가락'이 어울렸고, 이후 역사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술'의 받침 'ㄹ' 소리가 'ㄷ' 소리로 나는 과정을 반영하여 표기에 적게 된 것이다. 설이 있는 달을 의미하는 '섣달'과 여름에 생풀만 먹고 사는 소를 뜻하는 '푿소' 등이 같은 변화를 겪은 예이다.

박미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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