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30대·자영업자...‘적극적 부동층’ 대선 열쇠 거머쥐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송용창의 정치행간’은 의회와 정당, 청와대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과거에는 부동층이 지지 후보가 없으면 투표를 안 할 가능성이 컸어요. 하지만 지금 부동층은 달라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자기 이해관계와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투표장에 나옵니다. 그래서 무서운 거예요.”
부동층이 내년 대선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여론조사 전문가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의 진단이다. 과거의 부동층은 “그놈이 그놈”이라며 냉소적이거나 선거에 무관심해 투표를 포기하는 성향이 짙었기 때문에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면 선거판에서 멀어지기 쉽다. 이 때문에 네거티브전이 부동층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이념과 지역의 전통적 구도를 부각하는 선거 전략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에다 네거티브전까지 격렬해지고 있는데도 후보 간 지지율 변화 폭이 상당해 판세의 유동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 부동층이 적극적으로 선거에 관심을 갖고 개입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홍 소장은 이를 ‘적극적 부동층’이라고 불렀다. 과거 경계가 모호했던 부동층과 기권층이 확연하게 갈라졌다는 얘기다. 이번 대선은 어쩌면 정당과 이념, 지역에 구애 받지 않는 적극적 부동층이 ‘합리적 유권자’로서 선거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최초의 대선이 될지 모른다. 이 부동층은 누구이며, 어떤 기준으로 후보를 선택하게 될까.
2012·2017년 대선과 비교하면 이번 선거의 특징은 더욱 두드러진다. 2012년 대선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총결집된, 기존 선거 구도의 완결판이었다. 당시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은 초기 38~41%를 오르내리다 선거 한 달여를 앞두고 진영 결집으로 45~47%의 안정적 흐름을 유지했다. 문재인 후보는 22~24%선이다가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후 42~44%로 올라섰으나 결국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 단일화 이벤트를 제외하면 지지율 변동 계기는 거의 없었고 대선 주자 간 순위 변동도 없었다. 민주화 이후 각축전을 벌였던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진영의 역량을 총동원해 벌인, 어쩌면 마지막 결전이었다.
2017년 대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보수 진영 자체가 붕괴된 채 치러진 선거였다. 문재인 후보가 1위 주자를 굳건히 유지한 상황에서 안철수, 홍준표 등 2위권 주자들의 등락 폭이 컸다. 선거 두 달여를 앞두고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는 유권자들도 60대 이상의 보수층에서 가장 많았다. 진영에 구애 받지 않는 부동층의 영향력보다는 보수 지지층이 무너진 게 결정적 변수였다.
반면 이번 선거 양상은 전혀 다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12월 3주차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36%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35%)를 1%포인트 차로 앞서며 불과 한 달 전 (11월 3주차) 9%포인트나 뒤졌던 판세를 뒤집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자체 대선 후보를 선출한 이후에도 판세가 안정되기는커녕 끊임없이 요동치는 것이다. 여론조사 기관과 방법마다 결과가 매우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판세 불안정에 기인한 결과다.
후보 단일화 이벤트 없이도 선두 주자 순위가 변동하는 이례적 현상이 바로 이번 선거의 특징적 면모다. 전형적인 진영 대결이 아니라 선거 운동 기간에도 이해관계나 관심에 따라 지지 후보를 바꾸는 적극적 부동층이 결정적 키를 쥐고 판세를 흔들고 있다는 얘기다.
12월 3주차 한국갤럽조사에서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의견 유보’는 16%로, 세분하면 20대(34%)와 30대(27%), 무당층(43%), 대전·충청·세종(26%)에서 두드러진다. 이념과 정당, 지역 구도에서 벗어난 부동층의 일단을 보여주는 지표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최근 한 달 사이 지지 후보마저 바꾼 경우다. 20대에선 한 달 전에 비해 이재명 대 윤석열 지지 비율이 비슷하고 의견 유보만 29%에서 34%로 더 늘어난 반면, 30대에선 이재명 대 윤석열 지지율이 28%대 38%에서 35%대 21%로 흐름 자체가 뒤집혔다.
직업별로 보면 자영업자의 변심은 더 극적이다. 의견 유보는 비교적 적은 데 반해 이재명 대 윤석열 지지율이 30%대 54%에서 45%대 35%로 역전된 것이다. 한국리서치‧KBS 조사에서도 자영업자는 11월 5~7일 이 후보(32.2%)보다 윤 후보(39.6%)를 더 지지했으나 12월 17~19일 조사에선 43.4% 대 31.1%로 1위 주자 순위를 교체했다.
30대와 자영업자는 이념과 지역을 떠나 주택, 일자리, 경기 등 민생 문제에 가장 민감한 층위이다. 이들이 의견 유보가 아니라 표심을 드러내는 것도 선거 결과가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선거에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무관심층이나 기권층과 구별되는 적극적 부동층의 존재감이 이들을 통해 유감 없이 발현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추세는 선거의 중요 변수였던 구도의 힘이 약화하는 것과도 맞물려 있다. 정권심판 여론으로 인해 해보나마나라던 선거 판세가 요동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적극적 부동층에겐 과거 심판보다 미래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한 까닭이다. ‘충청 후보론’을 내세운 윤 후보가 충청권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도 전통적 변수였던 지역 구도의 영향력이 그만큼 줄었다는 방증이다.
30대·자영업자들의 변심에 민주당은 반색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재명은 합니다’가 표방하는 추진력,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시리즈를 통한 다양한 정책 공약과 지원책, 실용적이고 유연한 태도 등이 후보의 유능한 역량으로 평가돼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적극적 부동층을 잡기 위해선 공허하고 추상적인 담론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이고 정교한 공약이 중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다만 적극적 부동층이 자기 이해에 민감해 이익 투표 성향을 보인다 하더라도 이를 포퓰리즘 전략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홍 소장은 “MZ세대는 자기주도학습으로 성장해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세대다. 합리성을 결여한 포퓰리즘 정책은 더 싫어한다. 기본소득 같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라고 말했다. 이 후보가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하지만 기본소득 등을 고집하거나 현금 뿌리기로 쏠리면 적극적 부동층의 민심이 다시 등을 돌릴지 모른다. 윤석열 후보 역시 정권심판론이나 ‘정권교체에 동의하는 세력은 모두 모여라’는 식의 전략에만 의존해서는 적극적 부동층 잡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공약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후보 역량에 대한 평가라는 의견도 나온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모두 부동층을 잡기 위해 비슷한 공약이나 지원책을 내놓기 마련이어서 결국 ‘어떤 후보가 내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느냐’는 유권자 각자의 평가가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이전 대선은 이념과 진영 대결이었으나, 탈이념적인 부동층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후보 자체를 실질적으로 평가하는 최초의 후보 품평회 선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이번 대선은 후보를 원점에서 낱낱이 평가하는 선거다. 그간 후보의 행동이나 말실수가 지지율에 그대로 반영됐던 대로 남은 두 달여 동안에도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적극적 부동층이 실시간 평점을 내려 지지율 등락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유권자들마다 후보 역량을 평가하는 잣대는 천차만별이다. 가족 문제를 두고 도덕성 자체보다 내로남불하지 않거나 솔직한 태도를 더 중시할 수 있다. 추진력을 놓고도 이 후보나 윤 후보를 평가하는 시각이 다를지 모른다. 이 때문에 선거 예측은 더 어려워진 셈이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 유권자의 등장으로 이념과 진영 등 전통적인 구도에 올라타기만 해도 당선되던 시대는 지났다는 점이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