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외교 유산

입력
2021.12.23 04: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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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확대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확대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다섯 달가량 남았다. 훗날 어떤 외교적 레거시(유산)를 남긴 정부로 기억될지 전망해 볼 만한 시점이다.

먼저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임기 내내 사활을 걸었지만 결실을 맺진 못했다. 3번의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는 화려한 전적은 남겠지만, 3번의 회담을 열고도 남북관계를 되레 후퇴시켰다는 평가는 아프도록 문재인 정부를 따라 다닐 것이다.

종전선언이라는 막판 뒤집기가 남아 있긴 하다. 단, 어째서인지 종전선언의 당위성을 강조하던 현 정부 당국자들의 목소리는 최근 급격히 잦아들고 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최종건 외교부 1차관 11월 15일)"이라고 했지만, 이후로는 감감무소식이다. "연말 연초가 남북대화 불씨를 살릴 소중한 시간(이인영 통일부 장관 11월 6일)"이라고 했지만 세밑을 맞은 지금 북한이 대화에 복귀할 것이라는 기대를 걸 만한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종전선언 역시 문재인 정부의 외교 유산 목록에서 이미 멀어진 듯하다.

현 정부의 외교적 유산은 '동맹 외교'에서 찾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중국 견제 요구에 의외로 충실히 호응해온 게 문재인 정부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열린 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 간 한미정상회담장으로 되돌아가보자.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 역사상 처음으로 정상 간 공동성명에 "대만해협에서의 평화 유지 중요성을 확인했다"고 적시하는 크나큰 선물을 미국에 안겼다. 당시 공동성명에서 두 정상은 한미동맹의 역할 범위를 동북아는 물론 아세안(ASEAN)을 넘어 중남미까지 전 세계로 확대하기로 했다. 미국이 가는 곳에 한국도 따라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대만 해협 유사 시 주한미군 전력을 빼다가 대만에 투입하겠다는 외교적 근거를 마련해준 셈이다.

대만 문제는 한미 간 주요 군사 이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협의체인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도 명시됐다. 우리 국방부는 한미 군 당국 간 '대만해협' 문제를 언급한 배경에 "군사적 함의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사적 함의도 없는 말을 미국 국방부 장관이 굳이 공동성명에 담을 리 없다.

대만 문제뿐인가. 과거 미국이 한미동맹의 역할을 규정할 때 주로 써왔던 '동북아 평화의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란 표현은 현 정부 들어 시나브로 '인도·태평양 지역평화의 린치핀'으로 대체됐다. 5G·반도체·배터리 등 미중 간 공급망 패권의 핵심 기술에 대한 협력에 속도가 붙은 것도 현 정부 임기 하반기에서다. "미국과 중국은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며 미중 갈등 속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겠다고 했지만 실상은 미국이 앞장선 중국 견제 대오에 그럭저럭 발을 맞추고 있었던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반미(反美)"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러니다. 염원하고 염원했던 '한반도 평화'는 이뤄내지 못했지만, 피하고 싶었던 반중 노선에는 결국 발을 담갔다.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고들 한다. 상대가 있기에 내 뜻과 소신대로만 풀리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에선 유독 더 그랬던 것 같다.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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