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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불판 갈아엎을 때다

입력
2021.12.2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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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2022학년도 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 II 20번 문항에 대해 정답결정처분 취소 판결을 내린 15일 소송을 제기한 수험생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법원이 2022학년도 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 II 20번 문항에 대해 정답결정처분 취소 판결을 내린 15일 소송을 제기한 수험생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이 오류라는 결론이 나면서 애꿎은 수험생들이 한바탕 혼선을 겪었다. 강태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으나 이번 사안이 출제 오류를 걸러내지 못한 평가원의 책임 추궁만으로 끝날 일인가 싶다.

출제 오류가 인정된 수능은 올해로 벌써 7번째다. 이번에는 세계적 석학이 가세했다는 뉴스로 더욱 화제가 됐다. 해당 문항을 제자 연구원에게 풀어보라고 했던 조너선 프리처드 미국 스탠퍼드대 집단유전학 석좌교수가 트위터에 올린 글의 결론은 “터무니없이 어렵고 사실은 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의사이자 프로그래머 출신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도 문항을 직접 풀어보고는 수험생 커뮤니티에 “정말 기가 막혔다”는 글을 올렸다. 세계적 석학도, 국내의 내로라하는 지성도 풀기 어렵다는 문제를 과연 수험생에게 내는 게 맞는가.

암기 위주였던 학력고사를 탈피해 사고력을 측정하겠다며 1994년 도입한 게 수능이다. 제도의 순기능도 많지만 그간 쌓인 폐단과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게 기출 문제를 피하기 위해 문제를 배배 꼬아 내는 출제 경향이다. 30년 가까이 축적된 기출 유형을 피해 고교 교육과정 수준에 맞는 새로운 문제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영역을 연계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거나 지엽적인 내용에서 출제하게 된다. 주당 3시간씩 1년 배우는 게 전부인 탐구영역에서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역대 수능 출제 오류 문항 9개 중 6개가 탐구영역에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상위권 수험생 간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난도 킬러 문항을 넣는 출제 경향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과도한 입시경쟁 속에 출제 기관의 최대 고민은 변별력 확보다. 조금만 시험이 쉬워져도 1·2등급 간 차이가 없어지고 한 문제만 틀려도 3등급으로 내려갈 수 있어서다. 매번 차질 없이 수험생 줄세우기를 해야 하는 고난도 목표를 짊어지고 '불수능'과 '물수능'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게 지금 수능의 운명이다.

기출 문제 피하기, 변별력 확보 등 원인이 무엇이든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했는데도 정답을 맞히기 어려워 사교육 시장으로 몰려가고, 재수가 필수가 되어가는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올해 수능만 해도 재학생 32만 명과 졸업생 13만 명이 신청했다. N수생을 감안하더라도 30% 가까운 학생이 재수를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 석학도 이해 못 하는 수능 문제 몇 개 더 맞히겠다고 수많은 학생들이 고교 교육과정에 1년 더 영혼을 갈아 넣는 부조리극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다.

불수능에 출제 오류 논란까지 생겨나자 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낸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가 “교과 중심만으로 못 푸는 수능은 수명이 다했다”며 수능 종말론을 꺼내 들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시기적으로도 곧 학령 인구가 확 줄어 대학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고교 교육과정을 성실히 이수한 학생이라면 원하는 대학을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4차 산업 시대와 공정이 키워드로 부상한 대선에서 대학서열화 문제를 완화하고 입시 적폐에 관한 근원적 해법을 모색하는 후보가 없다는 게 의아할 따름이다. 내년은 수능 도입 30년이 되는 해다. 불판을 갈아엎을 때가 됐다.

김영화 뉴스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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