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판결은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판결이 쌓여 역사가 만들어진다. 판결에는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다. 주목해야 할 판결들과 그 깊은 의미를 살펴본다.
울산지방검찰청의 한 수사관은 피의자를 고소인과 대질조사할 계획이었음에도, "조서에 기재한 숫자를 수정하여야 하니 도장을 들고 잠깐 조사실에 나와 달라"는 핑계를 들어 피의자의 출석을 요구하였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피의자가 혼자 출석하자, 출석한 기회에 조사를 하자고 하여 피의자 동의를 받아 그간 조사과정에 참여해왔던 변호인 참여를 배제한 채 고소인과 대질조사를 하였다. 변호인은 이미 검사에게 피의자 신문조사 과정에서 나타난 담당 수사관의 조사방식을 문제 삼는 내용과 함께, 이 사건을 부산으로 이송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지난 11월 25일 검찰청 수사관의 위와 같은 행위는 변호인의 충분한 조력을 받을 피의자의 권리를 침해하였고, 피의자 신문에 참여할 변호인의 권리도 침해한 불법행위라고 판시하였다. 따라서 국가는 원고들(피의자와 변호인)에게 그로 인한 정신적 손해배상으로 100만 원씩 지급하라고 했다(대법원 2019다235450). 위자료가 지나치게 소액이지만, 불법성은 인정된 것이다.
범죄혐의를 받는 사람이 거대한 국가권력의 대표자인 검사와 맞설 수 없다. 그래서 헌법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여, 피의자·피고인과 국가권력 사이의 실질적 대등을 이루고 이로써 공정한 형사절차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변호사가 자유롭게 형사사건을 선임하여 변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파렴치한 범죄자를 변호하였다는 이유로 공격당하기 일쑤다. 미국 애리조나 주 앨빈 무어 변호사는 1963년 18세 피해자를 성폭행한 미란다의 국선변호인이 되었다. 그 변호사는 경찰이 미란다를 조사할 때 진술거부권과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알리지 않고 받은 자백은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연방대법원은 1966년 변호인의 주장대로 미란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 변호사는 인간쓰레기 같은 강간범을 무죄로 석방시켰다고 비난을 받아야 했다.
1974년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후 열린 형사재판의 재판부는 일본어가 통하는 차 모 변호사를 국선변호인으로 선정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반공단체 회원들은 국모(國母)를 살해한 자를 변호한다고 국선변호사에 대한 위협과 비난을 퍼부었다. 그 국선변호사는 재판부를 찾아가 사람들의 분노와 협박으로 변호인을 할 수 없다고 국선변호인 선정을 취소해 달라고 간청했다. 재판부는 변호인 없이는 재판할 수 없던 사건이라서 그 변호사를 간신히 설득하여 변호를 맡도록 하였다. 이 사건의 주심판사로부터 위 사실을 전해 듣고, 문세광 판결문을 검색해 보았으나 이상하게 존재하지 않았다.
최근 변호사인 이재명 후보가 과거에 흉악범을 변호하였다고 논란이 일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선국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공방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런 현상은 국민의 변호사 조력권을 인정하는 헌법과 변호사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측면이 있다. 변호사가 변호하는 피고인은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는다. 그럼에도 변호사에게 그런 사람을 조력하도록 한 것은 혹시라도 죄 없는 자가 처벌받을까 우려해서다. 피고인이 억울함을 풀려면 유능한 변호사를 만나는 행운이 있어야 한다. 피해자가 많은 사건의 피고인을 변호하는 로펌은 피해자들의 사임 요구에 굴복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변호사가 범죄자를 변론한다고 비난하는 풍토에서는 국민의 변호사 선택권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수고롭게 일하고도 나쁜 놈 감싸준다고 손가락질당하는 것이 변호사의 일상이다. 변호사가 각종 흉악범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새로운 사건을 수임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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