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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 휴가 전날 "꼭 가야 해?"... 상무의 앙갚음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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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A씨, 그 휴가 꼭 가야 돼?"
금요일 저녁 퇴근을 하려는데 직속 상관인 상무가 던진 말입니다. 다음 주 월·화요일에 연차 휴가를 쓰겠다고 한 달 전에 승인을 받았는데, 갑자기 연기하는 게 어떠냐고 한 것입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중요한 회의가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미 가족들과 여행을 가기로 한 터라 휴가를 미루긴 어려웠습니다. 결국 여행지에서 온종일 온라인 회의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화상회의 도중 상무는 저를 몇 차례 '강퇴'시켰습니다. 동료들은 "너가 휴가를 간 것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날 이후 상무의 '갑질'이 시작됐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이메일을 보내 "월요일 오전 9시에 신입사원 2명에게 업무 교육을 할 테니 자료를 준비해오라"고 통보한 적도 있었습니다. 출근하자마자 교육을 해야 하니, 주말 내내 자료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상무는 교육을 하는 도중 자료가 형편없다며 1시간 넘게 격앙된 목소리로 화를 내며 책임감 없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매도를 했습니다. 신입사원이 보는 앞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참기 힘든 모욕감이 들더군요.
상무는 △바쁘다고 말하지 말 것 △야근수당 올리지 말 것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시한 일을 가장 먼저 해낼 것을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날 이후로 야근수당을 한 번도 신청하지 못했습니다. 본인 지시를 가장 먼저 하라는 지시 때문에 본래 업무가 아닌데도 이틀 동안 잠을 못 자고 식사까지 거르며 야근을 한 적도 있습니다.
상무는 "지금 하는 업무가 적성에 안 맞는 거 같다"며 다른 부서로 갈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고 싶은 부서를 말했는데, 며칠 후 "그 부서엔 자리가 없다는데 어떡할 거야?"라고 하더군요. 그냥 회사를 나가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고민 끝에 퇴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당장 해야 할 일이 많다며 사직서를 반려했습니다.
그 사이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져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물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심장이 답답하고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습니다. 입원 사실을 알리자 상무는 곧바로 전화를 해서 "그때 그만뒀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다. 왜 말을 바꿨냐"며 15분간 화를 내더군요. 자신의 잘못으로 병을 얻은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병원에선 최소 한 달 정도 안정을 취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4주간 병가를 내겠다고 신청했는데 이것마저 거부를 당했습니다. 담당하는 일이 너무 많이 밀려 있고, 대체할 인력이 없는 상황이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장 이틀 만이라도 휴가를 내면 안 되냐고 했지만 이 역시 같은 이유로 거부를 당했습니다. 이런 회사, 계속 다녀야 하는 걸까요. 상무의 이런 행동들이 정당한 것인지,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지 궁금합니다.
A씨(30대 여성·유통업체 직원)
지적하신 상무의 언행은 크게 6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이 위법하다고 볼 수 있는지와 신고를 할 경우 추가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연차 사용 취소'입니다. 상무의 말이 연차 사용을 취소하라고 제안을 한 것이었다면 그 자체를 부당하다 지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해당 발언이 강압적이었거나 제안보다는 명령에 가까웠다면, 부당한 지시이자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합니다. 다만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한다면 당시의 구체적 발언이나 분위기 등을 상세히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온라인 회의방에서 강퇴를 시킨 것은 '특별한 이유 없이 업무에서 배제하는 행위'에 해당되는 만큼 이 역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 경우에도 당시에 어떤 상황에서 퇴장을 시킨 것인지, A씨가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는지, 주변 동료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등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 중에 나온 상무의 발언이 인격적인 모독에 해당되는지는 구체적인 내용과 발언의 맥락을 알 수 없어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1시간 이상 상무가 어떤 발언을 했고, 인격적인 모독을 느낀 것이 어떤 발언이었는지 정확히 복기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다른 계약직들이 함께 있는 상황에서 질책이 이뤄졌다는 점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은 행위로 해석될 가능성이 큰 정황입니다.
바쁘다는 말을 하지 말라, 본인이 지시한 일을 가장 먼저 해내라는 말은 부당한 지시에 해당됩니다. 야근 수당 올리지 말라는 것이 야근을 했음에도 야근 결재 신청을 하지 말라는 명령이라면, 이는 명백히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부당한 지시이며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입니다. 그런 지시가 있었던 날짜(행위가 여러 차례 있었다면 최대한 많이 정리), 행위가 발생한 장소, 구체적인 발언의 내용, 함께 있었던 근로자, 행위의 앞뒤 맥락 등을 정리해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과도한 업무를 부여한 부분에 대해선 추가적인 입증이 필요해 보입니다. 업무상 불가피한 사정이 없음에도 해당 업무에 대해 물리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마저 허락하지 않았다면 이는 적정 범위를 넘어선 행위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다만 해당 업무가 A씨가 담당하는 업무가 아니었다거나, 업무상 필요하지 않음에도 A씨에게 업무를 맡긴 것이라는 점 등이 명확해야 합니다. 해당 자료를 첨부하거나 A씨가 업무를 배당받았을 때 기존 담당자의 반응 등이 있다면 입증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병가의 경우에는 근로기준법 등의 관련 법령에서 사용자가 지급해야 할 의무를 지우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자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근로자에게 정신질환이 발병한 경우 이는 산업재해로 보고 있습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2호 다목). 나아가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경우 업무상 사유로 질병에 걸린 근로자에게 요양으로 취업하지 못한 기간에 대해서는 휴업 급여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내에 신고를 하시고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된 후에 산재로 처리하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 치료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신고 후 산재 처리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어 적절한 방법은 아닐 수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면서 동시에 상무의 행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이로 인해 질병이 발생했다는 내용이 담긴 진단서, 소견서 등을 회사에 제출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병가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정리하면 A씨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를 인정받기 위해선 관련 증거를 충분히 확보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각의 행위에 대해 날짜와 장소, 행위자, 행위자와의 관계,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 행위의 앞뒤 맥락, 함께 행위를 목격한 근로자 등을 표 등의 형식으로 시기별로 자세히 정리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현재도 상무와 함께 일하고 있는 상황이니 통화나 대화를 할 때 녹음을 하거나 카카오톡이나 메일, 문자 등으로 인격 모독 발언이나 강압적인 명령을 하였다면 캡처해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상무의 행위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이를 다시 복기하고 증거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모쪼록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아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회사 생활을 하며 말 못 할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해결책이 궁금하시다면 누구라도 제보를 해주세요. 이메일(119@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직장갑질119 최연재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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