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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가 우리 소프트웨어로 작품 만들기를" 김용관 스케치소프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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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이용한 그림 작업은 크게 평면(2D)과 입체(3D)로 나뉜다. 2D 작업을 주로 하는 화가, 만화가, 삽화가 등은 코렐의 '페인터', 3D 작업을 많이 하는 애니메이터나 건축가 설계사 디자이너 등은 오토데스크의 '마야'나 '오토캐드', 다쏘시스템의 '카티아' 등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그만큼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2D와 3D를 병행하기 힘들다. 또 전문적인 3D 소프트웨어는 개인이 사기에 부담스러울 만큼 비싸다. 따라서 개인이 2D 그림을 그리며 간단하게 3D까지 해보기에는 여러모로 어렵다.
신생기업(스타트업) 스케치소프트의 김용관(31) 대표는 이 틈을 파고 들었다. 그는 태블릿으로 간편하게 그린 2D 그림을 알아서 3D로 만들어 주는 혁신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사용법도 간단하고 이용료도 없어서 누구나 손쉽게 2D와 3D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이름을 깃털처럼 가벼우면서 손쉽게 3D 형상을 만들어 준다는 뜻에서 ‘페더’라고 붙였다. 이를 눈여겨 본 소프트뱅크벤처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에스브이인베스트먼트 등 투자사들은 갓 태동한 이 업체에 38억 원을 투자했다.
실제로 페더를 사용해 보니 너무 쉬웠다. 태블릿에서 페더를 실행하면 3분할 된 화면이 나온다. 각각 옆과 위, 아래에서 본 모습을 그리는 공간이다.
이때 일반 그림과 달리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테두리 선들을 그린다. 예를 들어 책을 그릴 경우 책등과 모서리에 해당하는 선들을 그어준다. 그러면 소프트웨어가 선과 선이 만나는 지점들을 계산해 자동으로 면을 생성한다.
이렇게 생성된 그림은 손가락으로 360도 회전시키며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용자가 머리 속으로 3차원 형상을 생각하며 선을 그리면 소프트웨어에서 면을 채워줘요. 그림 솜씨가 뛰어나지 않아도 선만 잘 그으면 3D 형상을 만들 수 있죠. 물론 미술 전공자들처럼 선을 잘 그리면 좀 더 정교한 3D 형상이 나와요."
원리는 단순해 보이지만 페더는 미술에 적용되는 원근법, 투시법 등 각종 공간 표현 방법들을 정교하고 빠르게 계산한다. "3차원 형상을 소프트웨어가 해석해서 만들어주는 것이 핵심이죠. 창작자들은 3차원으로 만들 형상만 구상하면 돼요."
이용자 환경(UI)이 '포토샵'이나 '페인터'와 비슷해서 이를 다뤄 봤다면 손쉽게 조작할 수 있다. "따로 배우지 않아도 금방 다룰 수 있도록 UI를 간단하게 만들어서 초보자들도 5분이면 사용할 수 있어요."
데이터 호환성이 뛰어난 것도 장점이다. 페더에서 그린 그림을 오토캐드나 카티아 , 마야 등으로 손쉽게 옮길 수 있다. "많이 쓰는 3D 소프트웨어들과 데이터가 호환돼 서로 작업물을 보내거나 불러올 수 있어요."
지난해 2월 창업한 김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산업디자인 박사과정을 밟으며 연구하던 주제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3D 스케치 기술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을 이용해 그림 그리는 기술을 연구했어요."
처음에는 자동차 디자이너를 도와주려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자동차 디자인이 복잡한 3차원 작업이어서 어렵고 돈이 많이 들어요.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힘들게 디자인했는데 경영진이 특정 부분을 고치라고 하면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중노동을 해요. 이를 간편하게 도우려고 소프트웨어 개발을 시작했죠."
그렇게 김 대표는 1년 7개월에 걸쳐 페더를 개발해 지난 9월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시험판을 공개했다. 정식판은 안정성을 강화해 내년 상반기 중 출시 예정이다.
이용방법은 간단하다. 페더 홈페이지(feather.art)에 접속해 앱을 내려받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설치한 뒤 실행하면 된다. 다만 터치펜 입력 방식이어서 손가락으로 그릴 수 없고 반드시 펜이 필요하다. 컴퓨터에서도 ‘와콤’ 같은 태블릿을 연결하면 이용할 수 있다. "클라우드와 프로그레시브 웹앱 기술을 이용해서 인터넷 공간을 그림판처럼 활용하고 저장도 인터넷에 해요. 따라서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 접속만 하면 작업하던 것을 불러올 수 있죠."
매출은 그림을 보관하는 클라우드 저장 용량과 협업 인원에 따라 과금하는 방식을 통해 올릴 방침이다. "그림은 무료로 그리지만 대용량 데이터를 저장하려면 저렴한 금액의 월 구독료를 내야 하는 방안을 생각 중입니다. 여기에 여러 명이 함께 작업할 수 있으니 동시 접속 인원에 따라 과금하는 방식도 고려 중이죠."
전문가들의 반응은 좋다. "자동차 디자이너들, 게임 아티스트, 건축가 등 전문 3D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전문가들에게 사용 후기를 받았어요. 가볍게 들고 다니며 작업하기 좋고 3차원 모델링 시간이 대폭 줄었다는 반응들이에요."
그만큼 쓰임새가 다양하다. 각종 제품 디자인부터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작업에 활용할 수 있다. "2차원 그림으로만 작업하던 웹툰 작가들도 3D까지 만들 수 있어요. 특히 영화감독들은 3차원 형상의 입체적인 콘티를 만들 수 있죠."
무엇보다 김 대표는 요즘 각광받는 메타버스 콘텐츠를 눈여겨 본다. "메타버스에 필요한 3차원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도구가 부족한데 페더가 이를 대신할 수 있어요. 굳이 3차원 모델링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페더를 이용하면 메타버스에 필요한 3차원 콘텐츠를 만들 수 있죠."
또 페더에서 그린 것을 3D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어서 창작자들이 콘텐츠를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 "3D 프린터는 출력물을 만들어줄 대중적인 소프트웨어, 즉 창작도구가 없어서 널리 쓰이지 못해요. 페더에서 그린 것을 3D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어서 창작자들이 작품을 소량 상품으로 만들 수 있죠."
김 대표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어려서 예고 진학을 고민할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고민 끝에 과학고에 진학했지만 카이스트에 가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학사부터 박사까지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어요. 페더를 개발할 때도 직접 그림을 그리며 개발했죠.”
그는 컴퓨터와 인간의 연결을 다루는 휴먼컴퓨터인터페이스(HCI) 분야에서 손꼽히는 인재다. 그는 2017년 미국컴퓨터학회가 주최하는 세계 최대의 컴퓨팅시스템 휴먼팩터(CHI) 학술대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상까지 받은 논문을 아무도 제품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속상했어요. 그래서 연구 내용을 살릴 방법을 찾다가 창업했죠."
창업 멤버들도 그런 김 대표의 열정과 실력에 반해서 합류했다. 홍익대에서 제품디자인을 전공한 양준원 디자인총괄 이사는 우연히 스케치소프트 사무실에 들렸다가 직원이 됐다. "양 이사가 처음 방문한 날 페더를 보여줬더니 잠시 사용해 보고 한 번에 고쳐야 할 부분들을 쭉 나열하더군요. 너무 놀라서 이 사람을 꼭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주일 동안 밤새워 작업하며 양 이사가 지적한 것들을 수정했어요.”
당시 양 이사는 이를 보고 스케치소프트로 옮겼다. 그는 "일주일 뒤 문제점들을 모두 고친 것을 보고 이 정도 열정이 있는 회사라면 인생을 걸어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 카이스트에서 함께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홍규형 제품총괄 이사도 프리랜서 개발자로 일하다가 김 대표를 만나 합류했다.
김 대표는 페더를 교육에 활용하는 방안도 시험 중이다.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교과과정에 페더를 적용해 교육 시장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있어요. 교육용 소프트웨어도 만들면 시장이 넓어지죠. 대신 개발력이 필요해요. 교육용 소프트웨어는 겉보기에 간단하지만 속에 복잡한 기술이 필요해요."
그래서 요즘 개발자 영입에 적극적이다. "창업 당시 5명이었던 직원이 15명까지 늘었어요. 직원의 절반 이상이 개발자에요. 직접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개발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에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도 직원으로 뽑았어요. 이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죠."
페더를 이용한 대규모 전시회도 고려 중이다. "컴퓨터그래픽스 학회처럼 페더로 창작물을 만든 사람들이 모여서 작품을 공개하는 장을 만들고 싶어요."
그의 꿈은 페더로 만든 작품들이 세상에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5,10분 분량의 단편 애니메이션은 페더로 충분히 만들 수 있어요. 그림은 언어의 장벽이 없는 글로벌 상품이에요. 세계가 시장이죠. 세계적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에서 페더로 작품을 만드는 상상을 해요. 그런 날이 현실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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