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 배우는 드라마 출연 배제”…외모로 번진 홍색 정풍운동

입력
2021.12.26 12:10
수정
2021.12.26 13:5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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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드라마협회 "탐미 풍조, 병적 성형 저지"
시진핑, 문화예술인 도덕성·사회책임 요구
성형시장 급팽창, 여배우 무면허 수술 피해
"외모는 사생활...사회적 잣대 지나쳐" 지적

중국 여배우 가오류가 2월 SNS에 올린 사진.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코끝 피부가 까맣게 괴사됐다. 웨이보 캡처

중국 여배우 가오류가 2월 SNS에 올린 사진.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코끝 피부가 까맣게 괴사됐다. 웨이보 캡처


중국에서 성형 배우의 드라마 출연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애국심과 당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며 규제를 강화하는 문화계 홍색 정풍운동의 일환이다. 이처럼 도덕적 기준을 높이려는 사회의 잣대가 외모로까지 번지는 반면, 성형수술 시장규모는 갈수록 팽창하는 추세다. 중국의 집단적 가치와 개인의 욕구 사이에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

중국드라마제작산업협회는 16일 ‘올바른 방향의 사회적 책임 이행에 관한 제안’이라는 발표를 통해 “탐미 풍조와 병적인 성형 등 기형적 미적 기준에 맞춰 성형한 배우를 캐스팅하는 행위를 단호하게 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방송규제기구인 국가광전총국이 9월 예쁘장한 남자 아이돌을 뜻하는 ‘냥파오’ 철퇴령을 내리긴 했지만, 성형 배우를 싸잡아 비난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날 협회는 △시청률 조작 △댓글 부대 △과도한 오락화 등 중국 방송의 공정성을 해치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다양한 문제점에 일침을 날렸다. 하지만 외모지상주의를 가중시키는 성형 문제에 단연 관심이 집중됐다. 신랑망 등 중국 매체들은 지난 2월 전국 대학생 2,063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 “대학생 10명 중 6명 꼴로 자신의 외모에 대해 초조함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미용업체들이 돈벌이를 위해 ‘외모가 곧 정의’라고 젊은이들을 상업적으로 세뇌시켜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특히 영화와 TV 속 스타 연예인들을 원흉으로 지목했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이들의 외모를 모방하려고 중학생 때부터 성형을 따라 하고, 심지어 성형 대출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각성을 촉구했다.

시진핑 주석이 전면에 나서면서 중국 문화예술계도 적극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시 주석은 드라마협회 발표 이틀 전인 14일 문학예술계연합회와 작가협회 전국대표대회 개막식 연설에서 △문화예술은 통속적이지만 저속하거나 세속에 영합해서는 안 되고 △실생활에 밀착하면서도 나쁜 기풍을 만들거나 부추겨서는 안 되고 △창조적이지만 기이하거나 이치에 어긋나서는 안 되고 △효과적이지만 돈 냄새에 물들어 시장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화예술인의 창작열을 중시하면서도 높은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이처럼 연예인의 과도한 성형을 배격하는 경고신호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성형 열풍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중국 미용성형서비스 애플리케이션 겅메이 이용자는 2013년 출시 당시 100만 명에서 3,600만 명으로 36배 증가했다. 중국 성형플랫폼 신양닷컴의 월별 사용자는 2018년 140만 명에서 840만 명으로 6배 늘었다. 2016년 468억 위안이던 중국 성형시장 규모는 2020년 873억 위안으로 4년 만에 87% 성장했다. 전 세계 평균 성장률의 3배에 달하는 속도다. 올해 1,049억 위안, 내년에는 1,252억 위안으로 성장세에 더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공산당 지도부와 함께 중국문학예술계연합회·중국작가협회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국가를 부르고 있다. 중국정부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공산당 지도부와 함께 중국문학예술계연합회·중국작가협회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국가를 부르고 있다. 중국정부망 캡처


성형 붐에 따른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중국 전역의 무면허 성형외과는 6만 곳이 넘는다. 하루 평균 110건, 연간 4만 건이 넘는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여배우 가오류는 성형수술 후에 코끝 피부가 까맣게 괴사한 사진을 2월 인터넷에 올려 경각심을 높이기도 했다.

중국 여론은 드라마협회의 이번 제안에 “진즉 필요한 조치”라며 적극 호응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사생활의 영역인 성형을 사회문제로 비화하는 건 지나치다는 반론도 없지 않다. 출연을 제지하는 성형 기준을 귀 끝을 뾰족하게 만드는 요정귀 수술로 할 것인지 아니면 턱 수술, 심지어 흔한 쌍꺼풀 수술까지 포함할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중국 연예인 성형은 개인의 선택보다 소속사 판단에 맡기는 경우가 많아 활동 제약에 따른 책임 소재 또한 논란거리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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