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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독립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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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독립운동의 세 영웅으로 간디(1869~1948), 자와할랄 네루1889~1964), 무함마드 알리 진나(1876~1948)가 있다. 셋 다 민족주의자이면서 영국서 법학을 공부한 법률가지만 간디가 종교적 비폭력운동(사티아그라하)의 카리스마적 구루였다면, 네루는 사회주의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제국주의의 모순과 불의에 주목한 좌파 정치인이었다. 한편 진나는 간디의 국민회의로 대표되는 힌두 주류 민족주의자와 무슬림 인도인들의 통합과 단결을 추구했던 의회주의자였다. 그는 간디를 비롯한 인도 힌두 민족주의자들로부터 견제, 배제당했고, 합법적 독립을 추구하면서 좌파로부터도 외면당했다. 결국 그는 파키스탄 분리독립 노선을 택했고, 인도 영웅의 목록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진나는 시아파 이슬람 신자였지만, 종교적 파벌보다 민족 독립을 중시한 세속주의자였고, 의회민주주의자였다. 그는 인도 자치, 독립이 모든 민족·종교 분파의 단결을 통해 합법적으로 가능하다고 여겼다.
영국 유학 후 1896년 귀국한 그는 국민회의에 가담해 1930년대 말까지 힌두·이슬람 합작운동을 추진했지만, 힌두 주류의 무슬림 배척으로 점차 주변으로 밀려났다. 간디 역시 진나를 견제하며 종파적 무슬림 광신집단과 손잡고(킬라파트운동) 무슬림의 협력을 얻고자 했다.
진나는 1930년대 이후 인도 무슬림연맹을 이끌며 이슬람교도만의 분리 독립정부 수립의 불가피성을 인식했고, 1940년 전인도무슬림연맹대회의 이른바 '라호르 결의(Lahore Resolution)'로 독립국가 건국안을 선포, 1947년 인도 독립 과정에 영국 인도총독부와 영국 정부를 설득해 파키스탄 분할 자치권을 획득했다. 국민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분열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독립 후 그는 영국령 자치 파키스탄의 초대 총독과 제헌의회 의장을 역임했고, 1948년 9월 지병으로 숨졌다. 파키스탄의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그의 생일이어서 국가공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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