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증가는 환상?... "감소 저지가 현실적 대안"

입력
2021.12.21 04:30
14면

인구 감소를 증가로 돌린 선진국 하나도 없어
인구 증가보다는 감소 저지가 현실적 대안
현실과 타협한 일본 사례 살펴볼 만

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 단위로 화요일 연재합니다.


<30> 증가 대신 감소로... 현실적 인구 목표 필요

가장 시급한 이슈인 '인구병' 문제가 팬데믹 사태로 우리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코로나 사태가 워낙 대형이슈라 인구문제도 덮으며 비켜설 수 있었다. 팬데믹이 아니면 인구변화는 지금도 압도적 핫이슈가 됐을 것이다.

관심사에서 멀어졌을 뿐, 인구병은 막강한 파괴력과 후폭풍을 내포한 난제 중의 난제라는 기본 성격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브레이크 풀린 특급열차처럼 시간조차 넉넉지 않다. 이대로면 한국사회를 떠받쳐온 세대부조형 정책 운영은 기능부전·제도무용에 휩싸인다.

팬데믹이 끝난 후 인구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봐야 늦을 수 있다. 2년의 외면은 20년의 고통을 뜻한다. 벌써 시작했어도 이미 늦은 문제다. 인구혁신을 위한 타이밍·대타협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전국 각지의 인구 대응 ‘성과는 왜 없나’

모르면 놔둬도 알면 내버려둘 수 없는 게 인구문제다. 체감도가 클수록 위기감도 비례한다. 그래서인지 인구 대응은 지방정부가 발 빠르다. 평균치를 갉아먹는 인구병이 농산어촌일수록 중증인 탓이다.

절대다수 지자체에 소멸경고장은 이미 전달됐다. 출산 장려·주거 지원·전입 유인 등 정책세트는 총동원된다. 기업 이전·기관 유치 등의 경합전선도 뜨겁다. 재정 투입을 통한 관광·산업거점형 인프라 구축은 일상적이다. 균형뉴딜 등 중앙예산에 의존한 세부사업까지 포괄하면 사실상 없는 게 없다. 한쪽에서 성과가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 따라 하기식 벤치마킹도 잦다.

출산정책은 더 눈물겹다. 액수·대상 등 자녀숫자별 차등지원금을 내세워 출혈경쟁을 반복한다. 자녀를 낳으면 1억 빚을 갚아주거나 임대료를 면제해준다는 곳도 생겨났다. 튈수록 주목받기에 이색·파격적인 아이디어는 계속된다. 윗단에서 뿌려지는 중앙정책과 겹치는 내용은 부지기수다. 경쟁을 넘어 과열이란 혹평이 많은 이유다. 돈으로 보면 가성비가 낮거나 없다. 투입(15년간 200조 원)은 많은데 산출(출산율 세계 꼴찌)은 별로다. 영리조직·개별가계의 살림살이면 진즉 망했을 수준이다. 기획전환·구조개혁이 절실한 이유다.

인구 대응은 문제의 본질부터 목표 설정까지 획기적 재검토와 전반적 재조정이 필수다. 목표가 옳은지, 내용이 맞는지 살펴봐야 실패확률은 낮아진다.

그럼 인구 대응의 목표는 뭘까. 십중팔구 ‘인구 증가’다. 인구 감소가 원인이니 증가로의 방향 전환을 내건다. 출산 장려가 최우선에 놓이는 근거다.

초점은 여기서부터 엇나간다. 인구 증가는 맞다. 간절히 원하는 최종목표다. 관건은 실현 여부인데, 이게 만만찮다. 하락 추세에 접어든 어떤 선행사회도 인구유지선(2.1명)까지 늘린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바닥을 찍고 살짝 반전했거나 저점 다지기가 고작이다. 드라마틱한 반전 성과를 거둔 일본도 1.26명(2005년)에서 1.34명(2020년)까지였다. 한때 좋았지만(2015년 1.45명), 재차 내려앉았다. 프랑스도 1.65명(1993년)에서 1.87명(2019년)까지 늘렸지만, 추가 상승은 쉽잖다.

반짝반등은 있어도 장기추세형 인구 증가를 완성하기란 어렵다는 얘기다. 서구라면 이민 출산·국제 전입의 양수겸장형 이민 확대도 주효했다. 그렇지만 이민 확대를 한국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대부분 선진국은 정책목표로 ‘인구 증가→감소 저지’를 택한다. ‘덜 떨어지기’의 하방경직성 확보다. 목표가 감소 저지면 정책 내용은 달라진다. 최소한 출산 일변도에서 벗어나 생활 전체로 다양화된다. 낳으면 돈 주는 방식만 고집하지 않고 낳을 만한 양육형 직주락(職住樂)의 기반환경을 개선시키는 식이다.

인구 감소 ©게티이미지뱅크

인구 감소 ©게티이미지뱅크


현실 타협의 일본 교훈 ‘인구 증가보다 감소 저지’

인구 증가는 탁상공론이 빚어낸 신기루에 가깝다. 비현실적인 정책목표로 희망고문과 같다.

감소 저지처럼 당면단계를 하나둘 밟아가는 게 옳다. 선진국의 공통 교훈이다. 인구 감소에 돌입한 일본은 1억 인구 유지를 정책목표로 내걸었다. 현행 1억2,600만 명의 추세 하락을 받아들이되, 최대한의 감소 억지로 1억은 지키자는 취지다. 추세에 맞선들 고비용·저성과의 보여주기식 전시행정만 초래했다는 뼈아픈 경험 탓이다.

실제 2008년 인구 정점(1억2,800만 명)을 기록한 후 어떤 노력도 먹혀들지 않았다. 추계대로면 2040년 1억 인구는 깨지고 2110년 4,286만 명까지 축소된다. 따라서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1억 데드라인을 지키는 감소 저지로 방향을 틀었다. 주무부처인 특임장관 설치 배경이다.

2016년부터 인구정책의 상징문구로 로컬리즘도 제안됐다. ‘감소 저지=로컬리즘’의 논리구조를 완성했다. 출산장려형 자연 증가보다 출산유지형 사회 이동에 방점을 찍은 조치다. 비교적 고출산인 농산어촌의 사회전출을 줄여 균형인구를 유지하는 전략이다. 급격해진 ‘농촌→도시’로의 사회 이동이 인구 감소의 본질로 이해한다.

도시는 농촌보다 출산이 적다.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출산환경은 나빠진다. 이 때문에 향(向)도시형 사회 이동이 많으면 인구 감소는 가팔라진다. 지역에 남으면 출산이 기대되는데, 교육·취업을 위한 사회 이동이 계속되면 급속도로 상황은 악화된다. 따라서 감소 저지는 곧 유출 방지로의 정책 전환을 뜻한다. 더는 도시에 청년을 뺏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역청년의 고향 정주는 도시청년의 시골 유인보다 수월하다. 일본은 감소 저지를 위한 로컬리즘을 위해 지방 고용·지방 이주·청년 직주·지역 부활의 4대안을 도출했다. ‘농촌→도시’로의 사회 전출 저지 전략이다. 매년 ‘농촌→도시’의 이동행렬을 6만 명 줄이는 세부 수치까지 내놨다.

반대로 ‘도시→농촌’의 유입목표는 4만 명이다. 합하면 연 10만 인구의 지방 정주가 목표다. 지자체는 감소 저지를 위한 전출 방지·전입 확대에 맞춰 자원 배분을 수정한다. 뺏고 뺏기는 소모적 인구쟁탈전보다 지역인구가 잔존토록 애향·공동체적 가치 확산에 주목한다. 지역청년의 직주 완성을 위한 고용 창출·사업 기회·순환 경제의 선순환 기반 마련에 적극적이다.

신생아실이 텅 비어 있다. 경기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 모습. 뉴시스

신생아실이 텅 비어 있다. 경기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 모습. 뉴시스


인구 감소 저지 위한 실현 무기는?

인구 증가라는 과욕적 불능목표를 고수할 필요는 없다. ‘고출산지→저출산지’로의 전·출입을 줄여 인구 감소를 통제하는 게 좋다.

문제의 본질은 사회 이동이기 때문이다. 방치와 오판의 대가는 값비싸다. 예산·노력을 물거품처럼 없앤다. 자원 배분에 실패한 인구 갈등은 정부 실패로 귀결된다. 목표 수정을 위한 시선 전환이 시급하다.

더 뺏는 쟁탈전에서 덜 잃는 자구책으로의 무게 이동이다. 인구 하한을 지키고자 선거 시즌이면 얼굴을 붉혔던 주소 이전 유치 경쟁 등 불필요한 소모전을 끝내자는 의미다. 공멸보다는 상생이다. 자치분권을 위한 중앙정부의 권력 하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예산·권한을 내려놓는 게 쉽지 않지만, 지방자치형 도농 균형을 위한 분권행정은 시대 화두다. 차기 정부의 숙명 과제다. 무능력·무대책의 소멸지역까지 챙길 여유는 없다. 줄 세우기 논란에도 불구, 감소 저지의 실효적 인구목표에 다가선 지역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쏟아붓는 게 능사는 아닌 탓이다.

이로써 공은 지역단위로 넘어온다. 인구 유지로 지역 운명을 거듭나게 할 새로운 구조·실행만이 자치단체의 살길이다. 유바리·교토처럼 재정 낭비형 지역 파산은 곤란하다. 하나같이 출혈경쟁에서 비롯된 인구목표가 빚어낸 자충수였다.

인구 쟁탈은 제로섬이다. 지역 희비가 있을 뿐 사회 전체로는 원가장사다. 감소 저지의 우선과제는 지역인구의 유출 방지부터다. 교육·취업을 위해 지역을 떠나는 15~24세 청년인구부터 덜 떠나도록 챙기는 게 좋다.

초점은 자치분권에 힘입어 지역능력을 최대한 발굴·발휘하는 정주 기반의 확립에 있다. 내발적 지역발전론처럼 방치된 지역자원을 회생의 사업보물로 역전시켜 구슬로 꿰는 혁신실험이 요구된다.

인구추계를 봐도 229개 기초단체 중 소멸위기에서 비켜선 곳은 없다. 시간은 없고 자원은 적은데 헛발질이 반복되면 끝은 자명하다. 해봤는데 안 되면 방법을 바꾸는 게 상식이다. 자연 증가(출산-사망=플러스)형 인구 증가를 고수할 여유는 없다. 덜 줄어드는 감소 저지로의 목표 전환이 현실·설득적이다. 본격화될 지방분권과 자치행정은 인구목표의 전환 여부에 맞춰 승패가 엇갈릴 전망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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