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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안 받고 일 안 주는 '직장 내 따돌림'... "사용자에게 입증 책임 지워야"

입력
2021.12.19 17:45
10면

대전시청 공무원 고(故) 이우석 주무관의 어머니 김영란씨가 지난 10월 26일 오전 대전시청 앞에서 아들의 죽음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주무관의 유가족은 지난 7월 신규 부서로 발령받고 직장 내 따돌림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뉴스1

대전시청 공무원 고(故) 이우석 주무관의 어머니 김영란씨가 지난 10월 26일 오전 대전시청 앞에서 아들의 죽음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주무관의 유가족은 지난 7월 신규 부서로 발령받고 직장 내 따돌림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뉴스1

"어느 순간부터 '투명인간'이 됐어요. 이대로 회사를 나가야 하는 걸까요?"

중소기업에 다니는 A씨는 최근 부서가 바뀌었다. 전에 하던 업무와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 했는데 동료들이 모두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일을 주지 않아 온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고, 밥도 혼자 먹어야 했다. 그는 "노동청에 신고를 하려 해도 따돌림을 당하는 것을 어떻게 입증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회사에서 상사나 동료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지만 제도의 한계로 인해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피해자가 증거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성희롱 사건처럼 사측에 입증 책임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용부 '따돌림' 신고 826건... 극단적 선택도

19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신고된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1,984건 가운데 562건이 '따돌림·차별·보복' 사건이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 7,507건 중에는 '험담·따돌림'이 826건이었고 '업무 미부여'는 192건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직장 내 왕따 사건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등 피해 정도가 심각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올 들어 직장 내 괴롭힘으로 1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 중 상당수가 집단 따돌림이나 보복을 당한 경우였다.

특히 악덕 사용자들이 해고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정부지원금을 받고 있는 중소기업의 경우 해고나 권고사직을 할 경우 지원금이 끊길 수 있어서 왕따를 시켜 스스로 나가도록 만드는 경우가 꽤 있다"고 설명했다.

"입증 책임 사용자에 부여해야... 근로기준법 개정 필요"

이 같은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돼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도 매뉴얼을 통해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 또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하거나 무시하는 행위 △정당한 이유 없이 상당기간 일을 거의 주지 않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입증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어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폭행이나 폭언 등은 녹음을 통해 증거 확보를 할 수 있으나 따돌림은 신고자의 일기나 진료 기록 등을 통해 상황을 추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는 "남녀고용평등법은 성희롱·성차별 등의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전환시켰고, 국제노동기구(ILO)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대해 사용자에게 입증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며 "노동자가 괴롭힘을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을 제시하면 괴롭힘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용자가 증명하는 식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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