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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옳은지 알 수 없는 세상…대통령은 너무 정치를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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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와 한국사회학회가 연중 공동 기획한 '탈진실시대, 보수-진보를 넘어' 시리즈는 2021년 한해 동안 '불공정 사회(4월 1일)',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6월 1일)', '기본소득의 정답(8월 31일)', '우리 시대의 리더십(11월 22일)' 등 20대 대선을 앞두고 가장 논쟁적인 어젠다들을 심도 있게 다뤘다. 공동 기획의 일환으로 한국사회학회는 지난 18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2021 정기 사회학대회 중 '탈진실시대와 사회학' 특별세션을 통해 앞서 다룬 의제들을 종합적으로 재논의하고 대선 이후 우리 사회가 힘을 기울여야 할 방향을 점검했다. 장원호 서울시립대 교수, 한준 연세대 교수,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자), 신광영 중앙대 명예교수, 신경아 한림대 교수, 권현지 서울대 교수, 신진욱 중앙대 교수, 임동균 서울대 교수 등 '탈진실시대, 보수-진보를 넘어' 기획 좌담에 참여했던 교수들이 함께했다.
장원호 교수 = 탈진실시대는 신념, 감정 중심으로 현실을 이해하는 사람이 증가한 상태를 의미한다. 편파적인 사실의 조각이 종합적인 진실로 파악되는 사회로도 정의한다. 이러한 시대에는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각자 지닌 자신들만의 '사실'만으로 상대를 비판한다. 양극단으로 (여론이) 몰리게 된다. 양쪽으로 편향된 의견들을 그대로 남겨두는 게 아니라 서로 조율하고 소통하는 가능성을 찾아야 했다. 한국일보와 진행한 '탈진실시대, 보수-진보를 넘어' 기획의 의도였다.
임동균 교수 =대안적 사실이라는 말로 트럼프 등장과 함께 '탈진실'이 전 세계적으로 부각됐다. 현재 우리나라 대선 상황을 보면 양당 주자가 내놓는 정책들이 그다지 선명하게 결정적인 부분에 있어 다르지 않다. 사람들 각자가 지닌 '트루스(truth)'를 기반으로 갈등한다기보다는,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여러 심리에 따라 나뉜 힘이 작동하고 있다. 탈진실은 물론 정치적 부족주의도 감안해야 한다. 1차적으로는 유튜브를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영향이 크지 않나 생각한다.
신경아 교수 = 촛불시위 때 보수에 대한 비난이 일었고, 이후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굉장히 비판적인 여론이 (각 진영에서) 나왔다. 조국 사태, 내로남불로 명명되는 사건들과 '진보, 너마저'라는 목소리들이 일었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소위 양대 정당, 진보와 보수를 대변하는 정당들이 지녀야 했던 정치적 올바름, 제도적 가치, 법적인 지향이 무너졌다. 어디가 옳은지 모르게 됐다. 젊은 세대가 어떤 정치세력도 믿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개인에게 필요한 것을 추구하는(실용적 혹은 이기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이런 것이 탈진실시대를 여는 중요한 지점이 됐다.
신진욱 교수 =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정 이슈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는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의· 평등· 공정을 과거 어느 정부보다 더 내세웠던 정부가 고위공직자의 도덕 이슈, 부동산 가격 폭등을 불러오면서 오히려 넓은 의미에서 '진실'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진정성이 더 의심받게 됐기 때문이다. (믿었던 정부에 대한) 이러한 분노와 실망을 다른 정치권에서 도구화하지만 그곳도 마찬가지인 현실을 보면서 국민들은 중요한 가치가 과연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막막한 상황에 이르게 됐다.
한준 교수 =한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경제적 불평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낮았는데, 지금은 중간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다. 불평등이 빠른 속도로 강화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겪는 불평등, 불행에 대해 본인보다 외부 영향에 더 집착하는 편이다. 내가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경우 우연성보다 '보이지 않는 힘'이 작동해 불평등이 강화된다고 믿기 쉽다. 공동체적 가치가 취약해지는 가운데 '공정'은 최후로 남는 가치가 된다. 공동체 가치에 냉소적이 됐고, 한국사회에서 개인화는 굉장히 빠르게 진행된다. 나는 매우 불행하고, 누군가를 문제 삼아야 할 것 같아졌다. 그래서 '공정'이 (사람들을 잡아 끄는) 강한 매력을 발산한다고 보여진다.
권현지 교수 =모두가 생각하는 공정이 서로 다르다. 이번 정부 초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화 과정에서 잘 보여진다. 도덕적으로 정당성을 갖췄다고 여겨져온 87세대가 믿는 공정은 정형화된 평등 개념이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가 가진 공정의 개념은 이들과 다르다. 이들의 특징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때 잘 드러났다. 당시 논란 속에 목소리를 낸 젊은 세대는 평생 능력과 경쟁 속 승리를 요구받아왔기에 다른 형태의 공정을 원했다. 이들의 정서와 경험을 그렇다고 동일한 세대가 모두 공유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일종의 괴리가 세대·계층 간에 걸쳐 복잡하게 얽혀있다. 공정의 가치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한국적 특수성이다.
임동균=조국 사태 등을 겪으면서 소위 진보세력이 갖고 있던 도덕적 위상이 하락하고 정말로 공정하고 진보적이고 도덕적인 집단은 누구인가를 사람들이 찾을 수 없게 됐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공정 이슈가 뜨거워진 데엔 집권 정치인들의 책임이 있다. 대통령은 광의의 의미로 보면 너무 정치를 안 했다고 생각한다.
신경아=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높은 지지율(80%대)에 너무 환호했다. 이 안에는 굉장히 다양한 목소리와 여론층이 섞여 있는데 성급했다. 시민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끌어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개별화됐다. 진보정치는 시민사회가 같이 가야하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 이들과 얼마나 토론하고 바꾸려 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많은 시민단체가 힘을 잃었고, 국민의 참여 기반이 악화됐다.
권현지=대선후보들의 노동정책은 아직 평가할 만한 단계가 아니다. 담론 구축을 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다소 반노동적이거나 원칙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더불어민주당은 경선 이후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알 수 없다. 유일하게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하고 있는데, 바로 주 4일 근무 논의다. 일단 노동시간 단축은 앞으로 매우 중요한 의제다. 그러나 주 4일 근무제도를 도입할 경우 주로 누구에게 우선 적용될지를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5인 미만 사업장과 초단시간 근로자가 굉장히 많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못 받는 사각지대가 넓다. 주 4일 근무제도 다른 노동 정책처럼 단계적 시행을 당연시할 것이고, 이 경우 혜택은 대기업 정규직에 먼저 닿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잡쉐어링'을 기대하기 힘들다. 주 4일 근무제가 시행되면 (비정규직, 초단기 근로자들은) 오히려 N잡러(줄어드는 소득을 늘리려고 직업을 여러 개 갖는 저소득층)를 크게 양산할 가능성도 높다. 주 4일 근무제 논의와 함께 소득 보전을 어떻게 할지 함께 생각해야 한다.
신광영 명예교수=한국의 노동 문제를 살피려면 우선 '테크놀로지(기술혁신)'와 '스킬(전통적 노동력)'의 관계가 잘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과 함께 일터에서 로봇 사용이 크게 늘고 있는 나라를 꼽자면 스웨덴이 있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노조가 로봇 사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노동자 교육에 힘을 기울인다.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해버리는 한국과 크게 다르다. 기술혁신이 전통적 노동력을 위협하고 잠식하는 것만이 아닐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노동 문제를 들여다볼 때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고용을 통해 소득을 올리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보통 대기업에서 50대 초중반이면 물러난다. 이렇게 고용을 떠나면 재취업은 힘들고 수십 년 쌓아온 노하우가 있음에도 허드레일자리로 가고 만다. 수명연장과 고용체제의 미스매치가 일어난다. 50대 전후 고용기간을 늘리고, 주요 일자리를 떠나는 시기를 연장해 실질적으로 소득하락이 일찍 발생하는 문제를 조율해야 한다.
신경아= 미투 등을 겪으면서 한국의 청년 여성들은 '강을 건넜다'고 말한다. 이들은 더 이상 어머니 세대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추세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참여정부 때 호주제 폐지 등 성평등에 있어 큰 성과가 있었고, 이명박 정부 때 백래시(진보에 대한 반발)가 몰아쳤다.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이 여성이었지만 성평등 지향성이 매우 모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칭 페미니스트 대통령인데, 성과는 잘 안 보였다. 디지털성폭력 대응이 그나마 열매였지만, 이는 정부가 얻어낸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끊임없이 요구하며 받아들여진 것이다. 젠더갈등을 보자면 여성이 점차 사회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경쟁 집단이 되고, 젊은 남성(이른바 이대남)들의 분노가 여성에 투사되고 있다. 사회심리학에선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가 놓치면 박탈감이 더 크다고 한다. 혐오와 불평등으로 몰아가는 정치세력이야말로 젠더갈등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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