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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가 실패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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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생존위기에 직면한 소상공인들의 분노가 비등점으로 치닫고 코로나19 백신접종률이 80%를 돌파한 10월 말만 해도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수순으로 여겨졌다. 한국은 코로나19 방역에 비교적 선방한 나라이므로 당시 국민들도 일상 회복과 감염병 통제의 병행이 가능하리라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하지만 위드 코로나 45일 만에 사회적 거리 두기 복귀를 결정한 지금, 그런 낙관이 얼마나 순진했는지를 실감하고 있다. 현실은 믿기 힘들 정도다. 하루 7,000명이 넘는 확진자 숫자는 연일 우상향 중이고 사망자는 하루 100명에 육박하기도 했다. 이제 옆자리 직장 동료나 함께 사는 가족이 덜컥 확진 판정을 받아도 놀랍지 않은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하듯 병상 확보 실패가 치명적이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급성기 병상 기준)는 7.1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7개)의 거의 2배다. ‘병상과잉’이 문제인 나라인데 왜 감염병만 닥치면 병상을 구하지 못해 대기하다 숨지는 환자가 연이어 나오는 걸까. 병상과 의료진 등 의료자원 분배에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와 병원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중이다. 코로나 위중증환자 치료 여력이 있는 대형 민간병원들은 정부의 지원 부족을, 정부와 시민단체들은 민간병원들의 비협조를 탓한다. 오미크론 등 변이 발생, 예상보다 급격한 고령자들의 백신효과 저하 등 예측가능한 변수를 염두에 두지 않은 정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민간병원들이 병상을 내놓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점도 분명하다. 2,000병상 안팎의 서울의 주요 대형 병원들이 코로나 중증환자 병상으로 30~40개만 내놓은 뒤 “여력이 없다”고 하는 볼멘소리에는 공감이 안 간다. 코로나 격리 중환자실 병상 한 개당 정부가 지급하는 손실보상금은 하루 500만 원에 달한다.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는 병원 측 주장에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다.
원활한 병상 순환에 실패한 점도 문제다. 최중증환자로 병원에 배정됐지만 중한 처치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환자도 있고, 더 이상 전파력이 없는데도 환자가 원한다는 이유로 중환자 병상에서 계속 버티는 경우도 상당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마침 정부는 16일 꼭 필요한 환자만 중환자 병상에 머물도록 손실보상금을 재원일수에 따라 차감하고 20일 이상 중환자실 입원 시 환자가 치료비를 부담하는 계획을 내놨다. 합당한 방향이다. ‘병원과 환자 간 갈등만 부추기는 방식’이라고 병원들은 불만만을 표시해서는 안 된다. 환자들 역시 무작정 중환자실 입원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막대한 예산을 쓰고도 도리어 갈등만 키운 의료진 지원방식도 화를 키웠다. 가령 코로나 환자를 간호해 본 경험이 없는 파견 간호사들이 월 900만 원을 받고 그 절반의 임금을 받는 기존 숙련된 간호사들이 중증도가 높은 코로나 환자를 돌보는 상황을 정부는 방치했다. 전체 병상 절반을 코로나 환자를 위한 격리병상(205병상)으로 운용하는 서울의료원의 경우 올해 의사 24명, 간호사 183명이 병원을 떠났다. 파견인력에 대한 충분한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 인력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소외시킨 당국의 무신경한 지원정책이 현장 의료진 이탈을 부추긴 건 명백한 실책이다. 전체 5%밖에 안 되는 공공병원에 코로나 환자 진료의 70%를 맡기면서도 공공병원 확충은 늘 뒷전으로 미뤄놓는 정부와 정치권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두말해 무엇하랴. 정부의 보다 섬세한 의료진 지원정책, 민간병원들의 적극적인 협조, 병상 상황에 대한 환자들의 이해 없이는 이번 겨울도 순탄히 맞이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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