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 12월 23일 미국의 굴욕, 북한의 '승리' 선전… 푸에블로호 승무원 송환

입력
2021.12.2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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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2월 23일
"침범한 적 없지만, 승무원 송환 위해 서명한다"
미국 측 '덧쓰기' 방식 제의, 국제 외교상 기이한 형태

편집자주

한국일보 DB 속 그날의 이야기. 1954년 6월 9일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일보 신문과 자료 사진을 통해 '과거의 오늘'을 돌아봅니다.


1968년 12월 24일 자 한국일보 1면. '푸에블로호 승무원 82명 오늘 귀국' 기사가 실렸다.

1968년 12월 24일 자 한국일보 1면. '푸에블로호 승무원 82명 오늘 귀국' 기사가 실렸다.


1968년 12월 24일 자 한국일보 3면. '감격 속 돌아온 82인' 푸에블로호 승무원 귀환 화보.

1968년 12월 24일 자 한국일보 3면. '감격 속 돌아온 82인' 푸에블로호 승무원 귀환 화보.

1968년 12월 23일 오전 11시, 82명의 미군과 시신 1구가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통해 북에서 남으로 건너왔다. 이들은 그해 1월 23일 동해상에서 북한에 나포된 '푸에블로'호 승무원(장교 6명, 사병 74명, 민간인 2명, 나포 도중 총격 사망 1명)으로 억류 336일 만에 판문점을 통해 송환된 것이다.

(※ 1968년 년 12월 24일 자 지면 보러 가기 ☞ www.hankookilbo.com/paoin?SearchDate=19681224 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주소창에 URL을 넣으시면 됩니다.)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 23일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 영해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나포됐다. 북한 측은 푸에블로호가 북한 영해 12해리(약 22㎞) 이내를 침범했다고 주장했고, 미국은 공해상에서 강제 나포된 것이라 각각 주장했다. 원산 해안을 기준으로 하면 12해리가 넘지만 원산 앞바다 섬 여도를 기준으로 하면 12해리 이내이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과 미국 사이에 첨예한 군사적 긴장이 조성됐고,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기도 했다.


미국의 '자백' 서명과 승무원 석방 맞교환… 서명은 하지만, 침범은 아니다

푸에블로호는 북한 영해를 침범한 일이 절대 없다. 그러나 본인은 오직 승무원들을 돌려받기 위해 북한에 의해 작성된 이 문서에 서명하는 것이다.

1968년 12월 23일 길버트 우드워드 소장 성명

북한과 미국의 지리한 주장과 협상은 1968년 12월 23일 판문점에서 합의가 이뤄지며 마침표를 찍는다. 2월 2일 첫 회담을 시작한 후 29번째였다. 하지만 이 합의는 국제외교 관행상 기이한 형식을 취했다. 유엔군 측 정전위원회 수석대표 길버트 우드워드 소장이 서명한 합의문에는 미국의 침범을 인정하는 '자백'과 '사과한다'는 내용이 써있었다. 문서만 보면 미국 측이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 문서의 서명 전과 후에 우드워드 소장이 이 ‘자백’ 등을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1968년 12월 24일 자 한국일보 2면에 실린 푸에블로호 석방 협상 경위.

1968년 12월 24일 자 한국일보 2면에 실린 푸에블로호 석방 협상 경위.

이와 같은 형태의 해결은 그해 10월에 미국 측이 이른바 '덧쓰기' 방식을 제의하면서 진행됐다. '덧쓰기' 방식이란 북한 측이 미국 측에 '자백서'를 제시하면 미국 측 대표는 이 문서 위에다 82명의 포로를 인수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글을 가로질러 쓰고 이 글의 서명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이 문서에 대한 서명이 이루어졌는지의 문제는 애매한 채 남겨두자는 안이었다.

북한 측은 이 제안을 수락도 거부도 하지 않았으나 이 안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12월 17일에 이르러 미국은 '덧쓰기' 방식을 다시 제의하면서 동시에 미국 관리들이 '좀 기이한 방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23일에 취해졌던 최종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에 의하면 미국은 서명 전에 내용을 부인한 자백서에 서명했다는 것을 공무 기록상에 남기게 되며 한편으로 북한은 미국 측이 침범과 간첩행위의 전적인 책임을 진다고 서명한 문서를 얻게 되는 것이었다.


2001년 미국 법원, 북한에 23억 달러 배상 명령… 북한 상대 배상액 중 사상 최고액


평양 대동강변에 전시되어 있는 푸에블로호. 2007.10.4. 평양=청와대사진기자단

평양 대동강변에 전시되어 있는 푸에블로호. 2007.10.4. 평양=청와대사진기자단

나포됐던 푸에블로호는 북한 원산항에 머물러 있다가 1999년 10월 평양 대동강변으로 옮겨졌다. 이후 2013년에 평양 보통강변으로 옮겨져 전승기념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돼 미국에 맞서 싸워 승리한 상징물로 선전되고 있다. 미국은 푸에블로호 반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한편 생존자들과 유가족은 북한에 납치돼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다면서 2018년 2월 북한을 상대로 미 연방법원에 집단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2019년 10월 의견문을 통해 "북한이 원고 측의 모든 청구에 대해 책임이 있다"며 사실상 원고 승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손해 산정이 완료된 뒤 판결문을 내겠다고 밝혔다. 최종 판결문은 2021년 2월 25일에 나왔다. 미 워싱턴 연방법원은 북한이 승조원 및 가족ㆍ유족 171명에게 23억 달러(약 2조5,000억 원)를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미 관영방송 미국의소리(VOA)는 해당 배상 규모가 미 법원이 명령한 북한의 배상액 중 가장 큰 액수였다고 설명했다. 해당 소송에 북한은 공식 대응을 하지 않아 재판부는 원고 쪽의 주장만을 토대로 한 궐석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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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기자
자료조사= 김지오 DB콘텐츠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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