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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즙파동’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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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금은 치열한 입시경쟁이 대학 진학으로 국한됐지만 예전에는 고교, 심지어 중학교도 입학시험을 치렀다. 초등학생(당시 국민학생)까지 경쟁에 내몰았던 중학 입시는 1964년 시험문제 파동을 계기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른바 ‘무즙파동’이다. ‘엿을 만드는 과정에서 엿기름 대신 넣을 수 있는 물질’을 고르는 자연과목 18번 문제의 중복정답 논란이 발단이었다. 교육당국은 당화 작용을 하는 효소 ‘디아스타제’가 정답이라고 발표했으나 수험생 부모들은 객관식 문항에 나온 ‘무즙’도 정답이라고 반발했다.
□ 그때나 지금이나 교육당국의 어설픈 대응이 사태 악화의 주범이다. 당시 학부모 반발에 교육당국은 정답 발표 다음 날 해당 문제를 아예 무효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디아스타제’를 정답으로 고른 수험생 부모들이 들고 일어났고, 교육당국은 당초 정답으로 후퇴했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중복정답 논란이 일자 “조건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정답을 구하는 데 문제없다”고 발표했던 교육과정평가원의 오판이 그때 교육당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 당시 학부모들이 벌인 무즙 엿 시위는 교육계의 유명한 일화다. “무즙으로 엿이 된다면 탈락한 학생들을 구제하겠다”는 서울시교육감의 발언에 학부모들이 팔을 걷고 나섰다. 무즙으로 쑨 엿을 솥단지 가득 들고 교육감을 찾아가 “무즙 엿이나 먹어보라”며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듬해 법원이 무즙을 정답이라고 판단, 이 문제로 불합격한 학생들을 구제하라고 판결하면서 파동은 마무리됐다. 이때 구제받은 학생들은 경기ㆍ서울ㆍ경복중 등 이른바 명문중학교에 뒤늦게 입학할 수 있었다.
□ 다이아스테이스로도 불리는 디아스타제는 1833년 프랑스 화학자가 엿기름 용액에서 발견한 효소다. 엿기름에 포함된 디아스타제가 탄수화물의 당화(糖化)를 촉진하는 효소였다는 점에서 보면 당시 문제 자체가 엉터리였다. 두 세대 전 교육계를 강타했던 무즙 엿은 요즘 시중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도라지와 함께 갈아 만든 무즙 엿은 기관지 기능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목이 칼칼해질 수 있는 겨울철에 특히 잘 팔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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