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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퇴행, 윤석열 무관심... 정치인만 모르는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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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제정이 2007년 처음 시도된 후 이토록 시민의 요구가 높은 적은 없었다. 6월 시민 10만 명이 법 제정을 청원해 국회에 회부했고, 전국 163개 시민단체들이 모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가 연내 제정을 촉구하며 부산~서울 도보행진에 이어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이다. 대선에서도 이슈로 떠올랐다. 13일 만남과 16일 추가 인터뷰를 가진 이종걸 차제연 공동대표는 “시민들은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알고 있다. 이제 국회만 남았다”고 말했다.
-21대 국회에서 장혜영(정의당), 이상민(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법안을 대표발의하고 6월 법 제정 국민청원동의가 10만 명을 넘기는 등 입법 압박이 전에 없이 높다.
“사실상 시민들이 만든 결과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대중 정부에서 설립된 인권위가 차별 현실을 개선·구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공약에 따라 2007년 법무부가 법안을 발의했는데 개신교계와 경총이 반대해 성적 지향, 학력 등 7개 차별금지 사유가 삭제됐었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즉 누군가를 차별하자는 목소리가 공론장에 들어와 정치권이 귀를 기울여 준 것이 이때부터다. 지금은 시민들이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2011년에 설립된 차제연은 2017년 촛불정부 출범을 계기로 재출범해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 왔다. 특히 3월 잇단 성소수자 부고를 보면서 4월 ‘차별금지법은 생존의 요구다’ 시국선언과 연명운동을 벌이며 제정 열의가 끓어올랐다. 지난해 시도했던 국민동의청원은 10만 명을 채우지 못했지만 올해는 준비가 돼 있었다.”
-차별금지법 입법에 적극적인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를 제외하고 다른 후보들의 입장은 논란이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지난달 8일 한국교회총연합을 방문해 “차별금지법 일방통행식 처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가, 이달 10일 “국회에서 논의할 때가 됐다”고 했다. 16일에는 성적 지향·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에서 제외한 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거는 방안을 선대위가 검토한다고 보도됐다.
“이 후보 발언이 교총 방문 후 바뀌고 있다고 봤다. 법에 처벌 조항이 있는 것도 아니니 교인의 오해를 풀겠다는 정도지, 법 제정을 못 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나 14년 전 입법과정에서 성적 지향 등 7개 차별금지 사유를 삭제했던 과오를 반성하기는커녕 다시 퇴행을 검토하는 현실에 기가 찬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 4개 중 특정 차별금지 사유를 제외한 법안은 없다. 이 중 3개는 민주당 소속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인데, 자기들이 낸 법안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건가. 민주당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이 후보가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이 명시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말을 분명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차별금지 사유가 논란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대선 전에 법이 통과되도록 국회를 견인해야 한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법의 내용이나 필요성을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지난달 25일 서울대에서 “차별금지법이 개별 사안마다 형량 결정이 안 돼 일률적으로 가다 보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했고, 이달 14일 관훈토론회에서는 “선진국도 포괄적 기준으로 차별을 방지하지 않는다”며 “법을 강제하기엔 논란의 여지가 많아 더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들이 차별 사안별로 접근한다는 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다. 개별법으로는 실질적 평등사회 실현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윤 후보는 일관되게 평등 앞에 자유를 내거는데 차별할 자유를 약속하는 게 아니라면 ‘검토해야 한다’는 말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윤 후보가 장애인들을 만나 ‘정상인’이라는 말을 하고, 차별금지법이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억압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장애인 등 약자 인권, 차별에 대한 인식의 바닥이 엿보인다. 시민들은 인권·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크게 올라갔는데 권력을 가진 이들은 존재하는 차별에 대한 감각이 너무 떨어진다. 차별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특권을 누리기만 한 것 아닌가 싶다. 결과적으로 차별주의자 같은 발언을 한다. 국민의힘 구성원들이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본 경험 자체가 없는 것 같다. 혐오의 정치, 차별의 정치를 만든 배경일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국민의힘이 극우와 혐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스피커가 될 건가. 이를 끊어내야 하는데 어찌 해야 할지를 잘 모르는 듯하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어이없는 발언을 한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국가를 이끌겠다는 정치인이라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보나.
“대선 후보라면 극렬한 반대 목소리가 과연 들어줄 만한 의견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들의 말은 결국 누군가를 차별하게 해 달라는 것이고 성소수자에게 정체성을 바꾸라는 것인데 이를 합리적 목소리라고 이해해 줘야 하나? 반인권적 목소리를? 대선 후보들은 차별을 개선한다는 선언이 가장 먼저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김부겸 총리도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한다. 이제 대선 후보들이 이야기해 국회를 견인해야 한다. 이제 국회만 남았다, 국회가 고립돼 있다고 말해야 한다.”
-최근 여론조사는 70~80%가 법 제정에 찬성하는데 국회의원들이 근본주의 개신교 반대를 의식해 회피하는 태도는 표심 계산에서도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 80%가 찬성하는 법이면 선거를 떠나 당연히 해결해야 할 과제 아닌가. 의원들도 교회의 낙선 위협을 실질적인 위험으로 보지는 않는 듯한데 대형 교회가 매우 조직적이고 시민을 만나는 가장 빠른 경로이고 사실상 재계 등 기득권세력이 뒷배이다 보니 대놓고 무시하기 어렵다. 그나마 금태섭 전 의원이 이야기한 정도다. 눈치만 보고 합리적 의견조차 말 못 하는 의원들이 너무 비겁하다.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용기 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제정 운동을 벌이며 만난 시민들 반응은 어떤가.
“충북 영동군 소도시인 심천역 앞에서 행진 출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한 시민이 ‘지금 뭐 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를 위해 부산에서부터 걷고 있다니까 ‘비정규직 차별과 관련해서도 적용되냐’고 묻는다. 당연하다고 하니 파이팅을 외치며 함께 인증샷을 찍더라. 많은 이들에게 너무나 필요한 법이다. 내용을 설명하면 시민들은 대부분 동의한다. 이를 법으로 규율하면 된다. 국회만 동의하면 된다. 법 제정은 소수의 혐오 목소리를 제어하겠다는 선언이다.”
-어쨌거나 입법이 이렇게 지연된 것은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의 책임이 가장 큰 것 아닌가.
“그렇다. 20대 국회에서도 가능했을 텐데 용기 내는 의원들이 없었다. 그러면 21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밀어붙여야 했다. 이것 하나 못 하고 권력기관 개혁만 집중한 게 지금 어떤 결과를 낳았나.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다양한 인권 과제에 대한 노력은 합격점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586 정치인들은 인권위 같은 조직만 만들어놓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인권의 내용을 채우지 않으면 안 된다.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 증진이 어려울 때 정치인들이 선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은 시민의 요구가 쌓여 다 만들어졌을 때 권한을 행사해 이뤄낸 경험만 있지 싸워서 만들어간 경험이 없다. 과거 구색 맞추려고 입법을 시도했다가 혐오 세력에 된서리를 맞아 물러섰고, 지금은 준비된 상황인데 눈치만 보고 있다. 그때 밀어붙이지도 못했고, 지금 정치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누구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가나.
“지난해 국가인권위 인식조사에서 차별 경험이 가장 많은 것으로 드러난 영역이 고용이었다. 법 제정되면 고용 차별 사례가 가장 먼저 대두되고, 구제 노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이슈가 된 성차별 면접 같은 경우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채용 과정에서 차별이 의심될 때 정보 공개를 청구함으로써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게 돕는다. ‘노 키즈 존’ 역시 재화와 서비스 이용에 대한 차별이니 구제가 가능해진다. 이미 국가인권위가 노키즈존을 차별행위라고 판단했지만 시정 권고가 한계인 반면 차별금지법은 실질적인 구제 조치로 나아갈 수 있다. 장애인에 대해선 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장애인이면서 여성이거나 성소수자이거나 하는 중첩된 차별이 엮여 있을 경우 제대로 판단을 못 받는 문제가 있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도움이 된다.
사실 차별금지법의 혜택은 다 같이 누리는 것이다. 예컨대 장애인들이 싸워서 저상버스가 확충되면 빨리 걸을 수 없는 노인, 유모차 탄 영·유아 등 모든 이동약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도보행진할 때 길 막힌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 역시 싸워서 얻어낸 결과, 누구나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권리가 확장되면 모두가 누린다. 권리는 집단끼리 싸워서 가져가거나 빼앗기는 파이가 아니다. 모두를 위한 평등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모두에게 권리가 열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차별금지법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오해라면.
“마음대로 말도 할 수 없다, 동성애 반대한다고 설교하면 처벌당한다는 일부 목사들 주장이 있다. 차별금지법에는 형사처벌 조항이 없다. 또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게 아니라 어떤 혐오 발언이 문제인지를 판단하는 변화가 생길 것이다. 사실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차별이 바로 없어지지는 않는다. 없애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차별은 말할 수 있어야 드러난다. 진정이 없으면 차별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차별금지법은 드러낼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공공기관에서 받았던 차별의 경험을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 지금까지는 말해봤자 권력자들이 증거가 없다고 하고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게 당연했다면, 차별금지법은 입증 책임을 가해자에게 지도록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문제 제기를 하게 하는 법이다. 이런 게 차별이구나 인식하게 하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사회 변화가 있을 것이다.”
-여러 법안이 발의돼 있는데 입법에서 지켜야 할 핵심 원칙이라면.
“가장 중요한 원칙은 누군가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차별금지 사유에서 누군가를 배제하면 결국 그를 차별하자는 뜻이 된다. 차별금지법은 누구도 혼자 있게 두지 않는 법이다. 차별을 말할 수 있게 돕는 법이고 구제조치를 통해 실효성을 이루게 하는 법이다.”
-왜 꼭 연내 제정을 해야 하나.
“지금도 누군가는 일상에서 계속 차별을 받으며 이를 참고 있기 때문이다. 해결해야 할 가장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회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해 손 놓고 있을 뿐이다. 국회 임기 하반기에 법사위원장직이 야당으로 넘어가면 변수가 될 수 있다. 사실 시간이 없다. 더 이상 공청회나 사회적 합의는 필요 없을 듯하다. 지금부터 법사위 심사를 시작해도 된다고 본다. 국민의힘도 2030 청년층이 요구하는 차별금지법을 언제까지 무시하거나 대놓고 반대 당론을 채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악의 대선 후보들이 혐오감만 불러일으키는 정국인데, 차별금지법 입법을 먼저 추진하는 정당이 시민의 판단을 받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법 내용을 속속들이 알지는 않지만 70~80%가 찬성한다는 것은 사람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차별은 없어야 한다는 것을 시민들이 안다는 뜻이다. 그만큼 차별과 모욕의 경험이 많다는 것이고 차별금지법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많다는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갑질, 성희롱 등 무시와 배제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목소리가 충분히 존재한다.”
-덧붙이고 싶은 말은.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서 성소수자가 두드러져 보이는데, 사실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가장 용기가 필요한 이들이다. 성소수자들이 앞장서서 싸우는 것은 아직도 성소수자를 시민으로 보지 않는 정치권에 ‘우리도 시민이다’라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성소수자는 우리 사회에 평등의 가치를 앞세우기 위해 먼저 싸우는 사람들이다. 시민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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