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인도 카슈미르 인권운동가를 탄압하는 악질 테러방지법

입력
2021.12.18 05:30
수정
2022.01.12 10:26
19면

인도령 카슈미르의 저명한 인권운동가 쿠람 파르베즈. 쿠람 트위터 제공

인도령 카슈미르의 저명한 인권운동가 쿠람 파르베즈. 쿠람 트위터 제공

인도령 카슈미르의 저명한 인권운동가 쿠람 파르베즈(44)의 집에 지난달 22일 이른 아침 인도 대(對)테러 기구인 국가수사국(NIA) 요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쿠람의 가족에 따르면 이들은 오전 7시 45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쿠람의 집을 샅샅이 수색했고, 쿠람을 데려가면서 금방 집으로 돌려보내줄 것처럼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후 6시경 쿠람이 ‘공식’ 체포됐다는 사실이 긴급 타전됐다. NIA가 쿠람의 집을 수색하고 있던 그 시간, 쿠람이 활동하고 있는 인권단체 ‘잠무카슈미르시민사회연합(JKCCS)’ 사무실에도 NIA의 또 다른 요원들이 찾아와 압수수색을 벌였다.

NIA는 체포 사유로 △테러 활동 △테러조직 자금 지원 △범죄 공모 △인도 정부를 겨냥한 전쟁 등 여러 혐의를 거론했다. 적용된 법조항만 해도 ‘인도판 테러방지법’으로 악명 높은 ‘불법활동금지법(UAPA)’ 17조, 18조, 18B조, 38조를 비롯해 형법 120B조, 121조, 121A조 등 거의 10개 조항에 달한다. 쿠람이 체포되면서 그러지 않아도 혹독한 카슈미르 겨울에 서슬 퍼런 ‘칼바람’이 불고 있다. 작지만 강직한 카슈미르 인권운동 커뮤니티는 “쿠람이 부당하게 체포됐다”며 국제사회에 “침묵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쿠람은 카슈미르 인권운동의 단순한 ‘아이콘’이 아니다. 카슈미르 분쟁과 인권침해 현실을 온몸과 마음에 새긴 ‘카슈미르 인권의 실체’ 그 자체다. 기자가 2006년 처음 카슈미르를 찾아 쿠람을 만났을 때 그는 불편해 보이는 자신의 한쪽 다리에 대해 “현장 조사 활동 중 폭발물이 터져서 다쳤다”고 말했다. 그의 담담한 어조는 분쟁 지역이 곧 삶의 터전인 인권운동가들에게 죽음이 얼마나 일상화돼 있는지 실감케 했다.

쿠람이 폭발 사고를 당한 건 2004년 4월이었다. 그는 이 사고로 한쪽 다리는 물론 동료 활동가 아시야 질라니와 운전도우미를 잃었다. 앞서 14년 전인 1990년 1월에는 쿠람의 인생 행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이 발생했다. 잠무 카슈미르의 ‘여름 수도’(겨울 수도는 잠무)인 스리나가르에서 인도군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해 최소 52명이 숨진, 이른바 ‘고카달 학살’이다. 쿠람은 그때 할아버지를 잃었다.

인도령 카슈미르 인권운동가인 쿠람 파르베즈(왼쪽)가 지난해 8월 25일 카슈미르주 스리나가르에 있는 '잠무카슈미르시민사회연합' 사무실에서 인권변호사이자 이 단체 대표인 임로즈 파르베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인도령 카슈미르 인권운동가인 쿠람 파르베즈(왼쪽)가 지난해 8월 25일 카슈미르주 스리나가르에 있는 '잠무카슈미르시민사회연합' 사무실에서 인권변호사이자 이 단체 대표인 임로즈 파르베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쿠람이 카슈미르의 인권침해 실태를 생생한 목소리로 세상에 전할 수 있었던 건 20년간 그가 몸담아 온 JKCSS 덕분이기도 하다. JKCCS는 2000년 창립된 카슈미르의 대표적 인권단체로, 카슈미르 참상이 알려지는 과정에서 JKCCS를 거치지 않은 작업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년 12월 중순 현재, JKCCS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마지막 성명서는 ‘카슈미르 실종자 부모협회(APDP)’와 공동 명의로 지난해 8월 12일 발표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카슈미르의 국가폭력과 지속되는 가짜 교전으로 인한 라주리 지역 청년 3인 실종과 살해’에 관한 것이다.

온갖 위험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인권 옹호와 진실 찾기에 헌신해 온 JKCCS에게 올해 3월 한국 사단법인 저스피스(구 지학순정의평화기금)는 제23회 지학순정의평화상을 수여했다. 카슈미르 인권변호사인 JKCCS 대표 임로즈 파르베즈는 영상으로 진행된 시상식에서 “지구촌 시민사회는 잠무 카슈미르의 인권침해 실상을 묵과해선 안 되며, 이 시상식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서도 안 된다”는 호소로 소감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특별히 아시아 인권운동가들을 향해 “폭력 정권의 보복 위협에 노출된 활동가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거듭 촉구했다.

13일 인도령 카슈미르 스리나가르 주민들이 반군 용의자 2명을 사살한 인도 정부군을 향해 돌을 던지며 저항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13일 인도령 카슈미르 스리나가르 주민들이 반군 용의자 2명을 사살한 인도 정부군을 향해 돌을 던지며 저항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러나 8개월 남짓 지난 이후 쿠람이 구속되면서 임로즈 대표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비단 카슈미르만이 아니다. 인도 전역에서 수많은 인권운동가들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인도판 테러방지법’ UAPA를 위반한 혐의로 끌려가고 있다. UAPA로 체포되면 보석이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 것도 이 법이 반(反)인권적이고 불법적이라고 비판받는 또 다른 이유다. 일례로 가톨릭 예수회 사제이자 인권운동가인 스탄 스와미 신부는 수감 생활 도중 건강이 급격히 악화했으나, 보석 신청이 기각돼 결국 옥사했다.

스와미 신부는 인도 원주민 아다바시의 토지 주권을 위해 투쟁하다 지난해 10월 체포됐다. 아다바시는 불가촉 천민 달리트와 함께 최하위 카스트에 속하는 계층이다. NIA는 스와미 신부에게 계급주의적 무장투쟁 조직인 ‘마오주의자’ 반군들과 연계했다는 혐의를 씌웠다. 파키슨병까지 앓고 있던 85세 고령의 신부는 법원이 명령한 구금기간 20일이 지났는데도 풀려나지 못했다. 감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건강이 더 나빠진 스와미 신부는 개인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 올해 7월 5일 선종했다. 기소장 분량만 무려 1만 페이지가 넘는다지만, 스와미 신부가 어떤 ‘테러’ 행위를 저질렀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8월 16일 인도 법률시민단체 ‘헌법행동그룹(CCG)’은 은퇴한 판사를 포함해 전직 공직자 108명의 서명을 받아, UAPA 개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CCG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UAPA 위반 사례가 인도 전역에서 현격히 늘고 있다. 2015년에는 897개 사건에 연루된 1128명이 체포됐으나, 2019년에는 1226건, 1948명으로 급증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집권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전 기간을 합치면 UAPA 위반으로 구속된 인원은 총 1만552명에 달한다. 2019년 8월 5일 인도 정부가 카슈미르 자치권을 박탈한 이후 1년 남짓한 기간, 카슈미르에서만 2,300명이 대테러 기구에 끌려갔다. 인도 국가범죄기록처에 따르면 UAPA 위반으로 기소되는 비율은 2% 미만(2015~2019년 기준)으로 매우 낮다. 그럼에도 이 법이 계속 남용된다는 건 그만큼 효과가 확실하다는 걸 말해 준다. 인도 정부에게 UAPA는 저항세력에 재갈을 물리는 수단이다.

같은 날 인도 군인들이 총격이 벌어진 현장 인근을 순찰하며 주민들을 통제ㆍ감시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같은 날 인도 군인들이 총격이 벌어진 현장 인근을 순찰하며 주민들을 통제ㆍ감시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실제로 쿠람이 체포된 이후 카슈미르에는 적막만이 흐르고 있다. 해마다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스리나가르 곳곳에서 울려 퍼지던 외침들도 올해는 전무했다. 쿠람이 인권운동의 길에 들어선 계기가 됐던 APDP조차 모이지 않았다. 그러나 카슈미르의 강요된 침묵은 어쩌면 더 큰 아우성일지도 모른다.

이달 12일 비자발적 실종반대 아시아연합(AFAD)은 트위터를 통해 쿠람과 관련된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1999년 쿠람이 카슈미르 APDP에서 자원 활동을 하면서 “이 문제(강제실종)를 외면하는 건 범죄 행위나 마찬가지라 느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쿠람은 지금 악명 높은 티하르 감옥에 갇혀 있다. ‘행동하는 양심’ 쿠람에 대해 메리 로울러 유엔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은 이렇게 평했다.

“쿠람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그는 인권옹호자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