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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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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앙상하고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고 어딘가 구멍이라도 뚫린 듯 스산한 날씨. 그러다가도 빨간 코트를 입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문득 마음이 설레는 계절이다. 코카콜라의 마케팅으로 90년 전 만들어낸 모습이라는 건 알지만, 볼까지 빨개진 채 호탕하게 웃는 산타 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면 추운 겨울이 잠시나마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집집마다 몰래 다녀간다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을 기다리며 요즘 아이들은 어떤 소원을 빌고 있을까?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건 방역수칙 위반이라 올해는 그냥 쉬신다고 짓궂은 농담을 건네는 어른도 있지는 않을는지. 산타가 사는 마을은 왠지 눈이 잔뜩 쌓인 북유럽의 어느 숲속일 것 같은 게 우리 모두의 상상일 텐데, 정작 산타클로스의 기원이 된 성 니콜라스는 이탈리아에서도 햇살이 강렬하기로 유명한 풀리아 지방의 주도 바리(Bari)에 잠들어 있다.
바리 자체보다는 이곳을 스쳐 어딘가로 가기 위해 들르는 여행자가 대부분인 지중해 교통의 중심지. 하지만 2,00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온갖 제국이 호시탐탐 노리던 항구도시의 저력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이 도시만 제대로 공부해도 유럽 왕실의 흥망성쇠를 대충 알 만큼 겹겹의 역사가 쌓인 올드타운과 1900년대 지중해를 풍미하던 바리의 풍요로움을 전하는 신시가지가 모두 항구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성 니콜라스의 유해를 모시는 산 니콜라 성당(Basilica San Nicola)이 생긴 것도 어찌 보면 이 항구 덕분이었다. '산타클로스의 도시'로 워낙 유명한지라 바리가 성인의 고향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는 터키 남부의 파타라에서 태어나 인근 도시의 주교로 생애 대부분을 보낸 1700년 전 사람이었다. 막대한 유산을 모두 자선활동으로 써버린 덕에 그에 얽힌 선행과 전설은 부지기수다. 그렇게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누린 성인의 유해를 바리 출신 선원들이 1098년에 훔쳐왔으니, 터키로서는 좀 억울할 일이다.
오늘날에는 아이들의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세에는 뱃사람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다니 대담한 도둑질을 한 선원들 마음도 좀 이해는 된다. 선원들은 훔쳐 온 유해를 넘기는 대신 제대로 된 성당에다 모시라는 조건을 달았다는데, 그 덕에 먼바다를 건너 온 성인의 유해는 한 세기가 넘어서야 새로 지은 성당지하에 잠들 수 있었다.
중세에는 항구와 성당을 잇는 거리에 순례자의 행렬이 끝이 없었다는 기록을 보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버틸 힘을 찾으려는 간절함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그가 태어난 터키에도 그가 잠든 이탈리아에도, 그와 닿고픈 마음은 미신처럼 남았다. 관에서 흘러나온 향기로운 액체에 손을 대면 병이 낫고 그의 동상을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근거는 없지만 괜히 믿고 싶은 이야기들 말이다. 막막한 순간 어디라도 기대고픈 사람의 마음이다.
종잡을 수 없는 바이러스 때문에 참 힘들었던 1년이었다. 누가 죽고 얼마나 아픈지, 세상 모두가 골몰해야 하는 슬픈 시절이었다. 어쩌면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생명의 흔적들은 모두 숨죽인 계절이기에,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메마른 가지에 작은 전구라도 걸어서 온기를 더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 반짝이는 전구처럼 우리의 지친 삶에 슬며시 손잡아 줄, 서로의 산타가 되어 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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