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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난로회 묘사한 희귀작, 미 덴버미술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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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들과 문화재 전문가들이 그동안 잘 몰랐던 국외문화재를 소개하고, 활용 방안과 문화재 환수 과정 등 다양한 국외소재 문화재 관련 이야기를 격주 토요일마다 전합니다.
미국 시카고와 서부 사이에 위치한 최대 규모의 미술관인 덴버미술관은 1893년에 미국 콜로라도주 수도인 덴버 시내 중심부에 설립되었다. 2019년에는 90만 명 이상이, 코로나19로 어려웠던 지난해에도 75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미술관을 방문했다. 350여 명 직원이 근무하는 덴버미술관은 이른바 백과사전류의 미술관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 세계 다양한 지역과 문화를 아우르는 7만 점 이상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덴버미술관의 아시아 미술 수집과 전시의 역사는 19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000여 점의 아시아 미술 컬렉션의 강점은 일본 회화와 도자기, 그리고 중국 복식이다. 마틴빌딩 5층에 신설된 약 1,900㎡ 크기의 아시아 미술 상설 전시실은 현재 소장품의 10분의 1만 전시되고 있다. 전시실은 아시아 문화별 7개의 공간과 4개의 주제별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지역별로는 동아시아 삼국의 전시실, 동남아시아 전시실, 서아시아 전시실, 그리고 중앙아시아 전시실이 있고, 주제면에서는 불교미술 전시실, 힌두미술 전시실, 대나무 예술 전시실과 아시아 주제 미술실로 구분되어 있다.
덴버는 최근 10년간 미국 내 가장 급속도로 발전하는 지역 중 하나로, 지역 내 아시아계 인구는 10% 미만이지만, 도시 성장과 맞물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아시안 커뮤니티의 발전과 더불어 그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으며, 덴버미술관 아시아 미술 소장품과 전시가 주목받고 있다. 상설전시실 재개관 프로젝트를 완료한 덴버미술관은 세계 다양한 미술을 아우르면서 비서구 지역의 컬렉션을 강화하고 증가시키고자 하는 새 목표를 세웠다.
미국 내 미술관, 박물관의 한국미술 컬렉션은 초기에는 주로 개인 소장가들의 기증으로 채워졌다. 덴버미술관의 주요 한국미술 기증자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전후에 한국이나 일본에 거주했던 미국인들이다. 루츠 부부는 일제 강점기와 1970년대에 일본에 거주하며 동아시아 대나무 공예 작품을 수집했다. 1982년에 1,000점 이상의 아시아 죽공예 미술품을 미술관에 기증했는데, 그중 160점이 19세기와 20세기 전반기의 한국 작품이다. 또 다른 주요 한국미술 기증자는 알프레드 프라트이다. 그는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미국 스켈리 석유화학의 한국지사에서 근무했다. 1992년에 프라트가 덴버미술관에 기증한 한국미술품으로 인해 덴버미술관의 한국 미술 소장품이 풍부해졌다.
205㎡ 크기의 한국 미술실은 재개관한 아시아 미술 상설전시실 중 유일하게 이전 전시실의 2배 크기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한국 미술 소장품 수는 중국 미술 소장품이 2,400점, 일본 미술 소장품이 2,500점인 데 비하면 현저히 적고, 작품의 종류도 한국 미술을 개괄적으로 조망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380여 점의 한국 미술 소장품은 죽공예 160점이 주를 이루며, 그 외 서화류, 도자기, 칠기, 금속공예, 복식, 현대미술 작품이 있다. 상설 전시실 재개관을 완료한 올해, 덴버미술관은 한국 미술을 포함한 아시아 미술 소장품 강화라는 새 목표에 따른 세부 계획을 수립하는 중이다.
소장품 수는 적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보배가 여러 점 숨어 있어 덴버미술관의 한국 미술품은 새롭게 주목받을 만하다. 필자는 소장품 중 두 점의 조선시대 풍속화를 보고 그 미술사적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크기의 이 회화 작품 두 점은 다양한 풍속 장면을 그린 여덟 폭 병풍의 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작품을 보면 보름달이 떠 있는 저녁에 유생 다섯 명과 기녀 세 명이 산속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인물들의 복식과 앙상한 나뭇가지로 보아 계절은 겨울임을 알 수 있다. 복건을 쓴 남자는 집어 든 음식을 막 먹으려 하고, 풍차를 쓴 연장자는 음식을 입에 넣으며 그 맛을 한껏 음미하고 있다. 갓을 쓴 이는 불판에서 음식을 집고 있고, 뒤늦게 방금 도착한 남자는 헐레벌떡 뛰어와 자리를 찾고 있다. 뒷모습의 기생은 멀리 앉아 있는 남자에게 음식을 먹여 주는 듯하며, 다른 기생은 불판에 음식을 어디에 놓을까 고민 중이다. 그림 속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는데, 생동감과 현장감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또한 고기를 여러 양념과 함께 구워 먹는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조선시대 후기 서울의 특정 풍습인 난로회(煖爐會)를 묘사했다는 점에서 매우 희귀한 작품이다.
다른 그림은 지방 관리가 길가에서 즉흥적으로 판결을 내리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 아래에 엎드려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두 사람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임에 틀림없다. 옆에서 판결을 적는 서리는 이 두 사람이 못마땅한 듯한 표정이고, 포졸 두 명은 이들을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다. 그 당시 유행하는 치마 저고리를 입은 기녀는 긴 담뱃대를 들고 무관심한 듯 도도하게 서 있는 반면, 관리 옆에서 만인산을 들고 있는 젊은이는 그 무게 때문에 끙끙대며 이를 꽉 물고 있다. 이처럼 그림 속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각기 다르고 특징있게 묘사되고 있어서, 어떤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상황과 사람들을 매우 잘 관찰하여 본 것을 섬세한 필치로 사실적으로 표현해내는 수준 높은 화가가 그렸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덴버미술관 소장의 두 그림 모두 인물의 다양한 표정이 정교하게 표현되었고, 필치와 구도가 두드러져 회화사적으로 상당히 의미가 있다. 흥미롭게도 유사한 필치, 구도와 화풍으로 그려진 같은 주제의 작품이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과 프랑스의 기메박물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첫 번째 비교작은 1778년 김홍도가 그린 '행려풍속도' 병풍의 첫 번째 폭이다. 덴버미술관 소장 작품과 '거리의 판결'이라는 주제가 같은 것은 물론, 그림의 구성과 구도가 상당히 유사하다. 또한 탁월한 필치를 구사하고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는 점 등에서 두 작품이 매우 유사하여, 덴버미술관의 그림이 김홍도풍 또는 김홍도의 작품이라고 추정할 수 있겠다. 기메박물관 소장 '사계풍속도' 병풍의 마지막 폭인 '거리의 판결'은 색채가 있는데, 덴버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작품 속 필치와 다르고 생동감과 정교함이 떨어져서 김홍도풍을 따른 후기작인 듯하다. 이렇게 세 미술관에 소장된 '거리의 판결' 작품 세 점을 간략히 비교해보면 덴버미술관 그림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덴버미술관 소장 그림은 김홍도 작품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작품과 필치와 구도, 그리고 장면 표현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또한 기메박물관의 '사계풍속도' 병풍의 첫 번째 폭은 '겨울밤 야외에서의 연회'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같은 주제의 덴버미술관 그림은 기메박물관 소장 작품보다 회화사적으로 의미있다고 볼 수 있다. 더욱 생동감 넘치며 필치가 섬세한 까닭이다. 시기적으로도 앞선다고 볼 수 있겠다. 덴버미술관의 두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행려풍속도'와 필치, 구도, 인물 묘사 등에서 유사하여, 덴버미술관 소장 작품의 시기는 18세기 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10월 상설전시실의 재개관에 맞추어 덴버미술관으로 오게 된 필자는 LA카운티미술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등에서 한국미술 담당 큐레이터로 일하며 다수의 한국미술 특별전을 기획한 바 있다. 대학 시절 국외 박물관에서 동양미술품이 제대로 연구되고 있지 않다고 느끼고선, 한국 미술을 국제적으로 알리고 싶은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덴버미술관을 비롯하여 한국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주요 박물관에도 다양한 미공개 한국 문화재들이 연구자와 큐레이터들의 많은 관심과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덴버미술관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한국문화를 알리고, 한국미술 소장품을 깊이 연구하여 소장품 강화와 발전에 주력할 것이다. 더불어 소장품을 주춧돌 삼아 21세기 미술관에 부합하는 혁신적인 한국미술 전시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기관과의 협력과 여러 제반 사항이 요구된다. 전문 인력의 교류, 체계적 중장기 유물 대여 정책의 확립, 한국 문화 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 그리고 한국미술 전시와 프로그램의 재정 지원이 절실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처럼 한국 내에서 국외 소재 한국 미술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을 기대하며, 덴버미술관이 새로운 한국 미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는 멀지 않은 그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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