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조동연 사태' 왜 가세연 말고 여성단체가 비난받아야 하나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왕자와 거지'는 얼굴이 비슷하게 생긴 왕자와 거지 소년이 우연히 바뀐 신분으로 살게 되면서 겪는 일을 그린 동화다. 그런데 왕자는 실존 인물이 모델일까?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은 언제일까? 소설 초반부에서 거지와 만난 왕자가 하는 말을 들어 보자.
"나의 누님 엘리자베스 공주는 열네 살, 또 사촌 누이(5촌 조카딸인데 영어의 cousin을 그냥 사촌으로 번역한 듯) 제인 그레이는 나와 동갑인데,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퍽 다정한 사람이야. 그러나 제일 맏누님인 메리 공주는 언제나 불쾌한 얼굴을 하고 계시지. 너의 누나들도 신하들에게 웃는 건 죄라고 하여 못 웃게 하느냐?"
마크 트웨인 지음·'왕자와 거지'·계몽사
거지인 톰 캔티에게 이 말을 하는 왕자는 바로 에드워드 6세. 헨리 8세의 외아들이다. 에드워드가 누나라고 부르는 엘리자베스, 제인 그레이, 메리 공주 역시 16세기 영국의 실존 인물들이다. 각각 엘리자베스 1세, 9일 여왕 제인 그레이, 메리 1세로 역사에 기록됐다. '웃는 것도 죄라고 하여 못 웃게 하는' 메리 공주는 엄격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 캐서린 왕비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이렇듯 '왕자와 거지'는 영국 튜더 왕조 시대의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는, 고증 잘된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문학 작품의 역사적 배경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등장인물이 활동하던 작품 속 배경과 그 작가가 살던 시대 배경.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 못지않게 작가가 살던 시대도 중요하다. 작가가 그 작품을 쓰던 시대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작품의 주제가 더 쉽게 보이기 때문이다.
'왕자와 거지'의 시간적 배경은 16세기 중반이지만, 작가 마크 트웨인이 쓴 시대는 19세기 말이었다는 점에도 주목해 보자. 19세기 말은 영국과 싸워 독립할 당시 대서양 연안의 몇 주의 연합체에 불과했던 미국이 국가의 외형을 완성한 시기다. 미국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아내고, 프랑스로부터 땅을 매입하고, 멕시코와 전쟁을 하고, 서부로 서부로 영토를 확대해 갔다. 또한 19세기 말은 남북전쟁 이후 세계 1위의 공업국으로 성장한 미국이 유럽에 대한 열등감에 벗어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은 여전히 귀족 등의 구제도가 남아있는 유럽에 비교해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졌다.
이러한 미국의 시대정신을 지닌 마크 트웨인은 '왕자와 거지'에서 '왕자와 시종'이란 중세 북유럽 민담의 모티프를 이용해 유럽 봉건 신분제의 문제점을 비판한다. 거지 소년인 톰은 왕자와 얼굴이 닮았다. 왕자의 옷을 입자 왕자 노릇을 훌륭히 해낸다.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태어난 신분과 상관없이 왕자나 거지나 모두 평등한 인간이라는 주제를 드러낸다.
또한 마크 트웨인은 유럽의 신분제뿐만 아니라 형벌제도도 비판한다. 마녀로 몰려 처형당하거나, 인클로저 운동으로 토지를 빼앗겨서 거지가 된 농민이 구걸하였다고 귀를 잘린다거나, 사소한 죄로 끓는 물이나 기름에 던져지는 가혹한 형벌을 당하는 등 힘없고 가난한 민중의 고통을 거지가 된 에드워드 왕자의 눈으로 목격하게 만든다. 한편, 궁궐에서는 왕자가 된 거지 소년 톰을 통해 부조리한 상층 계급의 풍습과 이로 인한 민중의 고통을 고발한다.
"폐하, 저를 잊으셨습니까? 저는 폐하의 매를 대신 맞는 아이입니다."
(중략)
"내가 틀린 것을 가지고 어째 너를 때린다더냐?"
톰은 놀라며 소리쳤습니다.
"아, 폐하께서는 잊으셨습니까? 그 선생님은 폐하께서 공부를 하시다가 잘못하시면 언제나 저를 때리기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매를 맞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 대신 돈을 받고 있지요."
왕자가 된 톰은 자신 전속 '매 맞는 소년'이 있음을 알고 경악한다. 여기서 왕과 귀족이 없는 나라, 공화국의 시민인 작가는 톰의 목소리를 빌려 봉건 신분제도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에는 왕자가 공부를 게을리했거나 잘못했을 경우에 대신 '매 맞는 소년(Whipping Boy)'을 두는 제도가 있었다. 번역된 동화 속에 '매 맞는 소년'이라 표기되었기에 이렇게 표기한다만, 정확히 번역하면 '채찍질당하는 소년'이다.
당시 유럽의 상류층 집안에서는 가정교사를 두어 자녀를 가르쳤는데, 교사가 학생들을 체벌할 때 채찍질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이 왕자인 경우는 가정교사 등 훈육을 담당하는 어른들이 감히 미래의 국왕을 처벌할 수 없었다. 매든 채찍이든. 경우에 따라 국왕이 자신의 아들을 직접 때리기도 했다.
그래서 동화 속에서 톰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매 맞은 이야기를 하자 에드워드 왕자가 "아버지란 어느 집에서나 엄한 법이다. 나의 아버지도 내가 공부를 게을리할 때에는 매로 때리시기도 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왕이 나서는 것도 한두 번이다. 왕은 국정을 봐야 하는데 왕자가 부왕 외에 어떤 어른도 무서워하지 않아 말을 안 듣는다면 그 왕자를 교육시킬 방법은 없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매 맞는 소년'을 왕자의 짝꿍으로 두는 제도였다.
왕실에서는 귀족 집안의 또래 소년을 데려와 어릴 때부터 왕자와 함께 왕실에서 교육받으며 죽마고우로 자라게 했다. 그래야 왕자의 잘못된 언행 때문에 소년이 매 맞게 되면 왕자가 죄책감을 느끼고 잘못을 고치려고 노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난한 소년으로 묘사된 '왕자와 거지'의 경우와 달리, 왕자의 '매 맞는 소년'은 대개 상류층 출신이었다.
실제 에드워드 왕자의 '매 맞는 소년'이자 친구는 아일랜드 귀족의 아들인 바나비 피츠패트릭이라고 한다. 그는 후에 제2대 어퍼 오소리 남작이 되는데, 1535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537년 생인 에드워드와 비슷한 나이다. 소년과 왕자의 정서적 유대감을 고려해서 '매 맞는 소년'을 선발했기 때문이다.
튜더 왕가는 엘리자베스 1세에서 끝난다. 이어진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왕가는 잉글랜드 왕좌와 함께 '매 맞는 소년' 제도도 계승한다. 스튜어트 왕조의 찰스 1세는 '매 맞는 소년'과 성인이 되어서도 사이가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왕이 된 후 자신의 '매 맞는 소년'이었던 윌리엄 머레이를 초대 다이사르트 백작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출세해서도 어릴 적 친구를 잊지 않은 셈이다. 윌리엄은 찰스와 동갑으로 추정된다.
역사가에 따라 '매 맞는 소년' 제도는 보편적이지 않았다고 보기도 한다. 귀족들이나 왕자보다 앞으로 왕이 될 왕세자의 경우에만 허용되었다고 보는 설이 우세하다. 여하튼, 이 역사적 사실이 'Whipping Boy'를 '남 대신 부당한 비난을 받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게 된 유래다. '희생양',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란 의미도 있다.
여성이 피해자인 사건이 크게 보도될 때마다 "여가부는? 여성 단체들은? 페미니스트들은 뭐하냐? 왜들 잠잠하냐?"는 반응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번 12월 초만 해도 엄청났다. 조동연 교수가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 후보에서 자진 사퇴하는데 왜 가세연의 남성들이 아니라 여성 단체를 비난하는가? 12월 5일자 신문에 실린 어떤 화백의 만평을 공유하며 여성단체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남성들은 왜 저러는가? 놀라웠다. 심지어 12월 7일 계부가 딸을 성폭행한 사건 기사에도 친엄마인 여성 먼저 비난하는 댓글들이 있었다.
왜 가해자가 남성인 경우에도 여성 탓을 할까? 남성인 그들은 워낙 고귀한 신분이어서 대신 매 맞는 여성이 필요한 것일까? 무슨 사건이든 누가 가해자든 여성부터 때리는 이들을 보면, 나는 늘 동화 '왕자와 거지'의 '매 맞는 소년'이 떠오른다. "오월이 네 이년, 뭐하는 게냐! 얼른 주안상을 들이지 않고!"라고 호통치는 조선 시대 양반 나으리도 생각난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짐작해서 여종처럼 미리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은 것이 못마땅한 것일까? 흠,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매 맞는 소년'이든 '오월이'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여성은 남성인 자신과 같은 민주 공화국의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 구시대의 퇴물이라는 것을.
생활의 정보 드립니다. 분노하고 논평하는 여성 단체나 페미니스트의 글이 하나도 안 보이는 이유는 본인의 SNS 친구가 다 그 밥에 그 나물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많이 보이거든요. 역사 오래된 여성 단체, 꾸준히 활동하고 계신 페미니스트 많습니다. 그 단체나 활동가분들 팔로우하셔서 글 받아보시기를 추천해요.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