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생명과학Ⅱ 오류 인정... “수능, 출제자 의도 찾는 시험 아냐”

입력
2021.12.15 17:00
수정
2021.12.1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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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결정 취소소송서 수험생들 승소
평가원 "정답 선택 가능" 주장했지만
"과학 원리 무시하고 답 고르란 소리"

법원이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 II 20번 문항에 대해 정답 결정 처분 취소 판결을 내린 15일 소송을 제기한 수험생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법원이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 II 20번 문항에 대해 정답 결정 처분 취소 판결을 내린 15일 소송을 제기한 수험생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법원이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에 “명백한 오류가 있다”며 정답 취소를 판결했다. 기존 정답 유지는 수험생들에게 과학 원리를 무시한 채 답을 고르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해당 문제는 평가지표로서의 유효성을 상실했다”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 이주영)는 15일 수험생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2022학년도 수능 정답결정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해당 문제는 수험생들의 수학능력 측정을 위한 기본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평가원은 항소 포기로 법원 판결을 수용하는 한편, 해당 문제를 ‘정답 없음’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은 동물 종 P의 두 집단에 대한 유전적 특성을 분석, 멘델 집단을 가려내는 문제다. 문제 오류를 주장하는 측에선 계산 과정에서 특정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기 때문에, 보기의 조건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집단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평가원은 지난달 29일 “문항 조건이 완전하진 않지만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며 ‘이상 없음’ 결론을 내렸다. 문제에 하자는 있지만 출제자의 의도대로 풀면 정답 선택에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재판부는 해당 문제가 “대학교육 수학능력 측정을 위한 수능 문제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문제가 제시한 조건을 사용해 개체 수를 계산할 경우 특정 유전자형 개체 수가 음수로 나타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수험생에게 정답 선택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적어도 심각한 장애를 줄 정도에 이르렀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출제자 의도대로 풀면 정답을 고를 수 있다’는 평가원 주장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단순 암기력’이 아닌 ‘추리·분석·탐구 능력’을 측정하는 수능의 목적을 고려할 때 “출제자가 당초 설정한 풀이방법이 아니어도, 수험생들이 논리성·합리성을 갖춘 풀이방법을 수립해 문제해결을 시도할 경우 정답 도출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가원이 제시한 ‘모범 풀이방법’ 외의 다른 논리적인 방법으로 문제 풀이를 시도한 수험생들에게 혼란을 준 건 출제자의 잘못이란 판단이다. 재판부는 “수험생들에게 정답을 5번으로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생명과학 원리를 무시한 채 답을 고르라는 것과 다름없어 부당하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정답을 유지할 경우 수험생들이 겪어야 할 혼란도 우려했다. 재판부는 “정답을 유지할 경우, 수험생들은 앞으로 수능에서 오류를 발견해도 이게 출제자 실수인지 의도인지 불필요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며 “수능을 준비하며 사고력과 창의성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가 아니라 출제자가 의도한 특정 풀이방법을 찾는 데 초점을 둘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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