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안전배달료'

입력
2021.12.15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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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달 청와대 사랑채 앞 도로에서 라이더유니온 회원들이 적정 소득을 보장하는 배달-택배 안전운임제 도입과 라이더보호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청와대 사랑채 앞 도로에서 라이더유니온 회원들이 적정 소득을 보장하는 배달-택배 안전운임제 도입과 라이더보호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식사시간 무렵 도시의 거리를 지배하는 건 라이더들이다. 보행신호가 점등된 것을 보고 횡단보도에 발을 디디려다가 질주하는 오토바이에 뒷걸음친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다.

□ 라이더들의 속도경쟁은 보행자에게는 위협적이고, 라이더들에겐 치명적이다. 2017년 411건이던 퀵서비스업 종사자의 산재 승인건수는 올해 2,084건(상반기 기준)으로 5배나 늘었다. 코로나19가 본격화된 지난해 상반기 이륜차 교통사고 사망자는 265명으로 전년 동기(233명)보다 13.7%가 늘었다. 코로나 장기화로 배달음식 거래량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라이더들은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 라이더들의 무법적인 질주를 개인 인성 탓으로 돌리면 해법이 옹색하다. 플랫폼기업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변경하는 배달료 체계를 손보는 근본해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 쿠팡, 배달의민족 등 대형 플랫폼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더 빠르게 배달하겠다며 지역별로 5, 6개를 묶어서 배송시키는 기존 ‘묶음배송’ 대신 한 건식 배송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시간당 배달할 수 있는 물량은 줄어들고 배달료는 비슷해 라이더들은 주문 하나만 받아도 더 속도를 내 배송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속도경쟁을 부추기는 플랫폼 기업의 역주행을 개별 라이더들은 막아낼 힘이 없다.

□ 노동계 일각에서는 일종의 최저임금 개념인 ‘안전배달료’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플랫폼기업, 음식점주, 정부, 라이더 등 이해당사자들이 합의기구를 만들어 종사자들의 과로ㆍ과속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달료를 매년 정하는 방식이다. 국회에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8월 발의한 안전배달료 도입 법안이 이미 올라가 있다. 15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도 도입에 공감대를 표시한 의견이 많았다. 화물차 기사들에게 2019년부터 적용되고 있는 ‘안전운임제’와 같은 방식인데 도입 후 화물차들의 과적과 연속운행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배달서비스의 수요ㆍ공급ㆍ요금 정보를 독점해 비즈니스 모델로 활용하려는 플랫폼기업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이 정도 해법 없이 라이더와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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