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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편의는 누군가 싸워서 얻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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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확실히 선진국인가 봐요. 엘리베이터에 휠체어 이용자가 타니까 먼저 탔던 사람이 아예 'after you'라고 말하면서 내리더라고요."
휠체어 타는 딸이 있다고 말하면, 상당수는 외국, 특히 서구권 국가에서 마주쳤던 장애인 편의시설이나 비장애인 시민들이 장애인 시민을 대하는 에티켓을 말한다. 누군가는 "한국은 장애인 권리가 아직 멀었어요. 이민 가는 건 어때요"라고 권하기도 한다.
"한국의 장애인 권리가 멀었다"는 말에 동의할 수도 있을 사진이 한 장 있다. 지난 6일 혜화역 엘리베이터가 일시 폐쇄된 사진이다. 장애인 단체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연내 개정 촉구를 위해 혜화역에서 지하철로 이동하며 시민들에게 홍보한다고 하니 서울교통공사에서 경찰과 협의해 아예 엘리베이터를 막아버렸다. 아이러니한 건 그 엘리베이터조차도 지하철에 휠체어 이동수단이라곤 리프트밖에 없던 시절 리프트에서 자꾸 장애인들이 떨어져 죽고 다쳤기 때문에 시위를 통해 얻어낸 결과란 점이다.
지하철에서 '이동권을 확대해 달라'고 시위하는 장애인들에게 흔히 돌아오는 말은 이렇다. "장애가 벼슬이냐." "호의가 계속되니 권리인 줄 아나."
장애인들에게 권리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호의가 아닌 권리'임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과정이다.
최근 출간된 책 '유언을 만난 세계'에는 장애인권을 위해 싸우다가 그 싸움의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은 장애인들의 유서를 모았다. 책은 이들을 '장애해방열사'라고 부른다.
책의 맨 처음에는 김순석이 등장한다. 그는 1984년 서울시장 염보현에게 "턱을 없애 주세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했다. 액세서리 기술자였던 그는 교통사고로 휠체어를 이용하게 됐다. 도로 턱(연석) 때문에 인도로 못 올라가서 휠체어로 차도를 다니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김순석의 죽음은 장애인 투쟁을 촉발했고, 결국 도로에 경사로들이 생겨났다.
사실 서구권의 그 편리한 시설과 장애인에게 양보하는 시민의식도 궁극적으로는 장애인 투쟁의 결과물이다. 1970년대 미국 장애인권 운동가들은 휠체어를 이끌고 샌프란시스코의 건물을 며칠 동안이나 점거했다.
도시 횡단보도에 만들어진 경사로는 누가 이용하는가. 여행가방, 카트, 유모차, 자전거, 킥보드, 배달 오토바이까지 100%의 시민이 이용한다. 경사로의 탄생은 김순석의 죽음에 50% 빚지고 있다. 그의 유지를 따라 시위하고 연행됐던 장애인들과, 이를 동정하는 대신 응원한 '비장애인'('정상인'이나 '일반인' 아닌)에게 50% 빚지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혜화역 엘리베이터를 막은 것에 사과 공문을 냈다. '보편적 권리를 침해하다니'라며 항의한 시민들 덕분이었다. 시민들의 호의가 응원으로 바뀌면 변화를 이끌어내는 연료 역할을 한다. 짐이나 카트, 유모차,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고 턱 대신 경사로를 다닐 때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와 낮아서 이용하기 편한 저상버스와 경사로가 누군가의 피, 싸움, 죽음의 결과임을 기억하는 게 그 시작이다. 교통공사가 지하철 시위를 한 장애인 단체에 소송을 걸었다고 한다. 비장애인 시민들이 50%의 몫을 담당할 때다. '장애인이 편한 나라가 선진국'이라며 서구 국가들을 부러워하는 대신, 우리 모두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힘을 보태 줄 때다. 그래야 장애인 부모들이 이민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진짜 선진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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